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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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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4일 16시 27분 등록

   지금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네요.

나는 도시의 중심에 있는 병원 휴게실에서 한밤중에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창밖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바퀴가 도로의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네요.

 

   폭염이 시작되던 7월 22일에 엄마가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셨어요. 엄마는 <자기를 잃어버리는 병>으로 오랜 시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도시의 큰언니네 집에서부터 침대에 누워 계신지 3년 반이 넘었네요. 그러다가 이번 여름, 우리 집으로 오시게 되었어요.

 

   우리는 엄마의 더위를 물리쳐줄 에어컨을 설치하고, 엄마의 반찬을 따로 넣어둘 김치냉장고도 마련하며 분주했지요. 엄마는 새로 이사 온 낯선 환경에 적응하시며, 우리는 한밤중과 새벽에 깨어 엄마를 돌보아 드려야 하는 생활에 적응하며,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충만했던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작은 언니와 내가 손에 가득 비누를 묻힌 채로 엄마를 목욕시켜드리다가 의자에 앉아계신 엄마를 놓치는 바람에 엄마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지요. 결국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허벅지 뼈가 파열되어, 앞으로 3개월 넘은 시간을 병원에 계셔야 한답니다. 어디가 아프다고 말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참으로 안타깝네요. 노인을 모시는 집에서는 늘 주의하며 보살펴드려야 했는데, 순간의 실수로 엄마를 고통 속에 빠트린 죄인이 되었어요.

 

   엄마가 오신 이후로 한 달 동안 나의 내면에서는 여러 마음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내가 나쁜 딸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 있어서 괴롭네요.

 

   엄마를 돌보는 일은 시간이 매우매우 많이 필요하답니다. 엄마에게 식사도 먹여드려야 하고, 시간 맞춰 기저귀의 상태도 체크해야 하고, 엄마의 반찬을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만들어둔 반찬을 갈아서 드려야 하고, 시장에도 가야하지요.

 

   엄마는 자식들 중에서도 나에게 아낌없는 후원을 해주셨는데도, 나는 엄마가 우리 집에 이사 오신 후부터, ‘이러다가 내년에 내가 지원하고 싶은 어떤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하며 마음속으로 덜컥 겁을 내고 있는 저를 보았어요. 동생은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지요. “언니가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엄마가 갈치의 통통한 몸통 부분은 전부 언니에게 보내고, 꼬리와 머리 부분은 나에게 먹으라고 했다”라고요. 나에게 이렇게 정성을 쏟아 부으신 엄마셨는데, 나는 지금 엄마를 돌보느라 쏟아 붓는 “시간의 흘러감” 때문에,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시간 확보” 때문에 엄마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무섭네요.

 

   내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는데, 지금 나는 '공부를 해야하는 시간 확보' 때문에 ‘사람됨의 도리’도 하지 못하는 ‘나쁜 사람’이 되어가네요. 언어장애로 인해 비록 말씀은 못하시지만, 눈빛으로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의사표현을 하시는 엄마의 눈빛은 이런 저의 마음을 모두 읽고 있으니, 나는 참 ‘나쁜 딸’이네요.

 

   추신: 병원에 와보니, 우리 집이 천국인 것을 알겠어요. 내게 주어진 상황을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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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4 16:41:06 *.220.138.26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달 7월 27일의 <금요편지>에 글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꿈벗 사우들과 제 자신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안에 해야하는 일정을 완수하지 못함으로 인해, 스스로가 하겠다고 한 일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저를 보는 일이  아직도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 부끄러웠지요.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박완서님의 책이 생각나네요. "무언가에 아직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그나마 구원의 여지가 있다"고  했던 것 같네요. 저에게도 아직 구원의 여지가 남아있기를 바래봅니다!

 가을이 다가오네요.

올해도 네 달 밖에 남아있지 않더군요. 올해 안에 하고 싶어했던  일에 조금이라도 매진하는 꿈벗들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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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9 05:56:12 *.116.111.182

생로병사는 누구나 인생의 한 과정에 겪어야 할 일이고, 가가호호 말년의 부보님 부양으로 가슴아픈 사연이 없는 집이 없을 것입니다.

자책하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세요. 당신은 착한 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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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9 19:57:08 *.10.140.31

쇠북님..

그러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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