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꿈벗

‘나를

2012년 1월 10일 09시 51분 등록

14년전 오늘 아내와 저는 결혼을 했습니다. 오늘같이 개인적으로 뜻 깊은 날 저의 인생의 키워드중에 가장 처음에 나오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 한 주 가족에 대하여 어떤 부분을 쓸 것인가를 생각했었습니다. 지금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이 나을까? 내가 왜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어릴적 그리고 결혼하고 십 년 정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아버지의 그늘을 이야기 하는 것이 나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부터 내 인생의 키워드인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 이유는 결국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저의 아주 개인적인 고통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 현재 또는 과거의 비슷한 경험을 했던 분들이 위로받는데 조금이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바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

 

그가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 해에 그의 아버지는 하던 일을 그만두시고 집에서 머물렀다. 해질무렵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술 심부름을 시키셨다. “해는 져서 어두운 찾아오는 사람없고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라는 노래를 부르실 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특히 머리만 대면 잠에 들었는데 그것은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기억속에 자다가 깼는데 그의 아버지가 곡갱이를 들고 있다. 장독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무쇠 가마솥두껑이 깨져 나갔다. 이튿날 아침을 일찍 먹고 학교에 갔다. 학교가 끝나고도 한 참을 밖에서 놀다가 들어왔다. 집에 돌아오기 전에 멀리 떨어져 있었던 변소 근처에서 집안이 어떤지 눈치를 살펴본다. 어제의 난리는 온데 간데 없고 고요함이 흐르고 있다. 어제의 전쟁의 흔적들은 부지런한 그의 어머니의 노력으로 말끔히 치워지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어 있다. 잠시만의 평화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는 그것이 좋았다. 그는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그것도 시험 점수를 잘 받아온 날 그의 아버지의 주사가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치료 저런 치료에서 부터 굿까지 안해 본 것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민학교 3학년 때쯤이었던 것으로 그는 기억한다. 집안 사람들이 작당하여 그의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킨다. 그의 기억에는 그도 그곳에 따라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가 그곳을 떠나올 때 창살에서 소리치는 그의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정신 병원에 가둔 사람들에 대하여 악담을 퍼붓는 소리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는 그 기억에 대한 자신이 없어졌다. 실제로 목격한 것인지 아니면 머리속에서 창조한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어쨌든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의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했었고 병원비를 많이 썼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글을 쓰면서 잠시 그의 고향근처에 정신병원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니 30대가 쇠창살을 뚫고 탈출했다는 2010년 기사가 나온다.아직도 감금해서 치료하는 정신병원이 있기는 있나보다.

 

그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그의 고향을 떠났다. 재산이 계속 줄어가던 그의 가족은 농사를 지어서는 더 이상 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그는 그의 집 근처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가 그의 집 앞 경부선 철도위에 있는 육교에서 철도로 뛰어 내린 것이었다. 그렇게 그의 아버지의 자살 시도는 미수로 그치고 만다. 빚이 있던 집 형편에 병원비로 인하여 빚이 더해졌다. 병원에서 그의 아버지 발꿈치 뒤쪽에 못처럼 생긴 쇠를 하나 박고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했다. 그 쇠를 제거할 쯤 그의 아버지는 벤찌를 가져와서 스스로 못처럼 생긴 쇠를 빼냈다.

 

또 세월이 흘러 그가 재수하던 시절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불러 배에 뭐가 만져진다고 했다. 공장에 다니시는 그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그가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가게 되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위장조영검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의사가 진단서에 stomach cancer 라고 쓰는 것도 보았다. 의사가 보호자를 찾아서 갔더니 말은 해주지 않고 어머니를 오시게 하라고만 말하였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울음이 나왔다. 공장에 일하시는 어머니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다. 몇일후 부산의 백병원에 입원하여 위암말기판정을 받았다.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이니 집에가서 쉬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아버지는 퇴원을 하셨다. 그해 여름이 되어 그가 독서실에서 점심을 먹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거의 먹지 못해서 아프리카 어느 지역의 사람들 처럼 가죽이 뼈에 붙어 있는 모습으로 그렇게 혼자 돌아가셨다. 그렇게 외롭게 보내드렸지만 그는 마흔이 다 되도록 그의 아버지를 보내드리지 못하였다.

 

그의 아버지와 그를 알고 있었던 사람은 그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아버지의 모습은 닮고 싶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 말이 정말 싫었다. 흔히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이면 자식도 알코올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이야기 한다. 아버지가 폭력적이면 아들도 폭력적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나는 아니야 아버지와 다를 수 있어라고 강하게 부인하였으나 두려움도 늘 함께 했다.

 

결혼을 하면서 아버지처럼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보다 참으로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거기에 더하여 그때는 아버지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전히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십년을 살고 난 뒤에 뒤를 돌아볼 기회를 그는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내와 함께 산 십년의 세월이 그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십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하여 좋은 인연을 만나고 아내의 격려로 그는 그의 아버지의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 그의 인생의 키워드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았는데 그가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키워드가 가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들은 동기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때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세상에 혼자만 그런 아픔을 겪은 줄 알았는데 모든 벗들이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에게 참으로 큰 힘이 되었다.

 

후일 그는 김 어준이 쓴 건투를 빈다를 읽다가 그의 생각과 일치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당신 같은 고통을 격는 사람, 의외로 많다. 그 수가 많은 만큼 그들이 그리 될 수 밖에 없었던 각자의 사연도 넘쳐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사연만큼은 각별하다 여긴다. 하지만 자신의 사연만은 예외라 여기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흔한 게 바로 그런 스토리다. P.31

 

그는 이제 마흔의 중반에서 조금씩 삶에 눈을 뜨고 있다. 삶은 고통이라는 말이 있는데 살아가면서 상처를 입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것이 아프다면 그 아픔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아프지 않은게 특이한 경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비로소 그는 그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아버지는 그 아픔들을 넘어서지 못하고 술의 힘을 빌렸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는 이제 그러한 이야기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조금은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는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인지 여전히 모른다. 오히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 그가 그의 아내와 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면서 살고 있다.

 

갑자기 그의 머리에 청춘 합창단의 노래가 들려온다…..

 

모든 순간이 의미가 있었으니

IP *.169.188.35

프로필 이미지
2012.01.11 00:50:16 *.178.51.156

가슴 아픈 가족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서서히 치유되어 가시는 모습에 다시 응원의 메세지를 보냅니다. 


'그'는 좋은 아빠와 남편이 되리라 믿고,

그리고 이미 좋은 아빠와 남편이 되어 있으시잖아요? ^^

프로필 이미지
2012.01.11 06:12:21 *.10.140.150

안철준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간이역 곳곳에 님이 남기신 발자취를 봅니다.

 

올 한해도 칭찬의 말로 많은 복을 지으시길 바라고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1.11 22:48:49 *.180.230.159

마흔 중반 이셨군요. 글 속의 아버님 인생이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 같이 파란만장 합니다.
고통이 많으셨던 아버지를 너무 깊이 담아 두지 마시고 자유롭게 보내 드리세요.  행복한 가정을 위해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잖아요?
상처가 많은 사람이 더 향기로울 수 있다고 김홍신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1.14 17:49:02 *.94.155.83

가족에 대한 글.... 잘 보았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3 첫발자욱 첫걸음 첫경험 [2] id: 숲기원숲기원 2011.12.25 3772
292 [월요편지]-도대체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file [12] 새벽산책 2011.12.26 3902
291 [화요편지]이름값을 한다는 것 file [6] 햇빛처럼 2011.12.27 3311
290 [수요편지] 인생3.0 file [6] 탑거인 2011.12.28 3124
289 [목요편지] 깊고맑은눈 이야기 [12] 깊고맑은눈 2011.12.29 3433
288 [금요편지] 맛있는 꿈 [4] 효인 2011.12.30 3504
287 [월요편지] 사표 그 이후의 생활....... [7] 새벽산책 2012.01.02 3261
286 [화요편지]꿈을 알게 된다는 것 [2] 햇빛처럼 2012.01.03 3306
285 그가 산에 오르다. [4] LittleTree 2012.01.03 3113
284 [수요편지] 첫 해외 여행 file [8] 탑거인 2012.01.04 5752
283 [목요편지] 하루 늦은 넋두리 [5] 깊고맑은눈 2012.01.06 2775
282 [금요편지] 2012 나의 10가지 꿈 [4] 효인 2012.01.06 3235
281 [월요편지] 너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뭐야.... file [3] 새벽산책 2012.01.09 3546
» [화요편지]가족이야기 [4] 햇빛처럼 2012.01.10 2806
279 [수요편지]용 모습의 나라 베트남 file [6] 탑거인 2012.01.11 3573
278 [금요편지] 나의 강점 프로필 [2] 효인 2012.01.13 2894
277 [월요편지] 민진홍씨, 그만 두었으면 합니다...... file [13] 새벽산책 2012.01.16 3644
276 [화요편지]가족 그리고 나눔 file [2] 햇빛처럼 2012.01.17 2700
275 [수요편지] 거인 연구실 도우미 file [6] 탑거인 2012.01.18 4115
274 [월요편지-호외 (號外)편] 민진홍 사용 설명서 file [7] 새벽산책 2012.01.19 3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