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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4일 17시 19분 등록

2011 8 9일 화요일 아침이 밝았다. 아씨시로 떠나기 전 어제 둘러보지 못한 볼로냐 대학을 본격 탐방하기로 했다. 볼로냐 대학은 1088년 설립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 캠퍼스와는 달리 대학 건물들이 도시에 산재되어 있었다. 광물학 박물관 건물 근처에 내려 알렌의 설명을 들었다. 이 때 사부님이 손을 들어 다음과 같이 제안하신다.

 

근처 경찰관에게 물어 볼로냐 대학의 시초였던 법대 건물을 찾아가 보는 모험을 해봅시다.”

 

알렌이 경찰관에게 물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대학 캠퍼스를 걸어서 둘러보는데 만족하기로 했다. 얼마 걷지 않아 물리학과 건물과 고색창연한 도서관 건물이 보였다. 도서관 로비에 들어서니 오래된 책 냄새와 함께 은은한 조명이 정겹다. 이런 곳에서 단테의 <신곡>을 읽으면 아주 잘 읽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의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이제 버스로 돌아갈 시간. 버스에서 인원 파악을 해보니 사부님과 승완이가 없다. 마냥 그 자리에서 기다릴 수가 없다. 이탈리아의 교통 법규는 매우 엄격해 정해진 정차 시간을 넘기면 큰 벌금을 물게 되어 있다고 한다. 드라이버 스테파노가 안절부절 한다. 나와 로이스는 약속된 자리에서 사부님과 승완이를 기다리기로 하고 백산 선배가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스테파노는 버스를 돌려 그 자리로 돌아오기로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도무지 돌아올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백산 선배의 전화기로 사부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부님, 지금 어디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전화기 너머로 사부님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린다.

 

근처다. 다 왔다.”

 

1시간이 넘게 우리의 일정을 늦추어 버린 사부님이 일행의 환호를 받으며 버스에 오른다. 이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내 아내가 이번 여행 떠날 때 약속 시간에 늦지 말고 일행들 잘 따라 다니라 했는데 오늘 사고를 치고 말았네. 허허허. 조금 변명을 하자면 말이야, 나와 승완이가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법대 건물을 물었거든. 그러니까 자기도 잘 모르겠대. 포기하고 돌아갈까 하는데 갑자기 이 청년이 아이폰을 쨘~~하고 꺼내잖아. 그러더니 지도 서비스에 로스쿨 인 볼로냐라고 치는 거야. 그러니까 로스쿨 위치가 딱 떠. 여기서 몇 백 미터 떨어져있대. 그래서 그 곳까지 물어서 찾아갔지. 도착해서 물어보니 이젠 더 이상 법대건물이 아니래. 여러분들에게 법대 건물을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네. 어쨌든 미안해.”

 

이렇게 볼로냐에서의 사부님 실종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이후로도 사부님은 일행 중 가장 늦게 버스에 오르는 사람이 몇 번 더 되셨지만 이 때와 같이 장시간 실종되시지는 않았다. 소중한 물건을 다시 찾았을 때의 안도감(?)을 느끼며 우리는 그렇게 볼로냐를 떠나 성 프란체스코의 도시 아씨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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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17:20:43 *.252.144.139

2011년 7기 현역연구원으로 이탈리아 북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 제가 연구원 칼럼에 <볼로냐, 사부님 실종사건>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지요.

그랬더니 사부님께서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다셨습니다.

 

그 애 이름이 마르코야.   
파란색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잘 생기지는 않았어.  
약간 삐리 같았지만  아주 친절했고 착했지.    

법대 건물이 어딘인지는 알았지만 법대는 옛날 오리지널 빌딩을 쓰고 있지 않고 다른 빌딩으로 이사해 왔다는거야.  원래 가장 오래된 최초의 법대 건물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고 그건 그전 날 밤 찾아갔던 볼로냐 사탑 근처에 있었지.   내친 김에 갈까도 했지만  일행을 다시 이끌고 가기에는 적당치 않다고 여겼어.  그래서 그래도 빨리 온것이야.   내가  거기까지 갔다면  너희들은 버스를 타고 두 번 시내를 돌았을지도 몰라.  

 

사부님도 지금 하늘 나라에서 '그땐 그랬지' 하고 웃고 계실거에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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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5 14:06:09 *.64.231.52

사부님 나름 미안하셔서 길게 변명을 하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 사부님은 참  귀엽습니다.(죄송!)

글을 읽으니 그때 생각이 현실로 줌인됩니다. 

제가 그때 서있던 볼로냐 거리의 코너가 생각납니다.

담 벼락에 흰색 칠이 된 자전거가 한 대 걸려있었습니다.

자전거 손잡이에는 마른 꽃들이 꽃혀있었지요. 

그 자전거는 한 사람이 자전거 사고로  세상과 작별한 사실을 일깨우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떠나고 우리는 기억에 그 사람을 담아둡니다.

물건들을 곁에 두고 기억을 오래 간직합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한 사람과 그가 남겨준 것들을 잊지 않으려는

모든 노력은 아름답습니다. 

우리의 1주년 추모제가 더 많은 이야기들로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사부와의 좋았던 시간을

즐겁게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사부님 1주기가 그런 즐거움과 떠들썩함으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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