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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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山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人情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신동엽>
전부터 선생님을 생각하면 민들레 꽃씨가 떠올랐다. 둥글게 허공을 감싸 안고 있던 꽃등이 바람을 타고 흩어져 언덕을 가득 채우며 날아가는 이미지는, 선생님에게서 감화받은 제자들이 저마다 자기 세상을 찾아 땅 끝까지 퍼져가는 모습과 꼭 닮았더랬다.
선생님 장례를 치르면서 불현듯 이 시가 떠올랐다. 선생님은 느닷없이 닥친 ‘운명’ 앞에서도 최후의 한 순간까지 껴안는 의연함을 보여 주셔서 이 시의 애절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를 보내는 내 마음은 이렇게 처연한 데가 있었다.
입관식을 하는데 선생님의 친척들이 많지 않아 보였다. 아차! 이 분이 물리적으로 외로운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람을 찾아 나선 그의 동기 한 쪽이 이해가 되었다. 작가로서나 변화경영에 대한 관심의 연장으로만 보았던 언행의 저변에 뿌리깊은 외로움이 스며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7년 동안이나 선생님 주변에 있으면서 좀처럼 편하게 다가 가지 못했던 것이 죄송스러워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가 그저 한 사람의 외로운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입관식에서 깨닫는 것이 어이가 없고 한스러워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되어 흘러 내렸다.
염하는 분은 사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진중한 분위기를 지녔지만, 손끝이 너무 매서웠다. 나란히 놓인 선생님의 발목을 챙챙 몇 번 감더니 끄트머리를 그 사이로 넣어 올가미를 탁 채워 버렸다. 저렇게 꽁꽁 묶어 놓으면 두 번 다시 걷지도 못하겠네. 너무나 익숙하고 절도있는 동작이 기가 막혔다. 제일 끝으로 얼굴이 막 가리워지려는 찰나, 겨우 끼어들어 선생님 얼굴에 손을 갖다 댔다. 차가웠지만 섬찟하지는 않았다. 그순간 결코 그에게서 정을 뗄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4월 27일, 그가 뽑아만 놓고 병석에서 바라 본 1분이 전부인 9기 연구원의 첫 수업에 모인 사람들 중에 선생님 꿈을 꾸었다는 사람이 너댓 명에 달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그 자리에 오실 것을 알았다니, 정신의 자식, 사람을 남기는 일의 숭엄함에 새로운 눈물이 흘러 넘친다. 봄마다 민들레 꽃씨 날아가는 산에 언덕에, 그의 꽃 피어날지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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