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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2013년 4월 15일 18시 12분 등록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제 오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수많은 추모객들로부터 둘러쌓여 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그저 멍하니 추모화면만을 하염없이 응시하고만 있었다. 누군가는 눈물을 훔치고 누군가는 애써 명랑해지려 하고 누군가는 후회를 한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는다. 승오가 면회갔을 때 찍은 동영상과 영면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그뿐이다. 한없이 마음이 가라 앉아 온다. 그렇게 수다스러운 내가 이런 고요를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해 본 적은 처음이지 싶다.



잠시 내 영원한 친구 신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어깨를 다독이며 말해주었다. 스승님은 이제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순수한 결정체인 영혼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었다고. 저마다의 추억과 사랑으로 마음의 씨앗을 한없이 심어주었던 스승님의 영혼이 우리들 삶의 일부로 아주 공평하게 스며들게 되었다고. 나는 온전히 스승님을 가슴에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생전에 그렇게나 그분의 인정과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스승님의 품에 안겨 '지금까지 참 잘 걸어왔구나'라는 단 한 장면을 꿈꾸며 애써 담담함을 가장해 왔던 나를 이제서야 자유롭게 놔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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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스승님의 영혼을 웃음과 기쁨으로 보낼 자신은 없다. 그러나 슬퍼하거나 후회하지는 않으련다. 나다운 방식으로 스승님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시에 스승님의 영혼이 자유로워진 것을 축복하련다. 그분은 이제 모든 방식으로 모든 순간에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영혼으로 교감하고 공명할 수 있다. 생전에는 쉽게 나눌 수 없었던 그분과의 긴 대화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저마다의 자기다운 삶에 매진하고 있을 때, 그분은 그렇게나 누리고 싶어하던 바닷가의 한적한 평화와 고요속에 당신의 영혼을 누일 수 있을게다.



나는 현세와 영세의 경계선에서 우리와 함께 할 그분과 생전에 미처 나누지 못했던 새로운 추억과 사랑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첫 책을 함께 쓸 것이고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일깨우는 누군가의 붉음을 찾아줄 것이고 창조적 부적응자들의 커뮤니티 변경연이 여전히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간이역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동시에 그분의 영혼과 함께 사모님을 모시고 영화를 볼 것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며,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행복한 수다를 떨 것이다.



존경이라는 색깔의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음을 스승님은 한결같은 자연스러움으로 내게 보여주셨다. 나는 스승님처럼 성공하고 싶다고 말해 왔었고,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그 어떤 이보다 진정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오신 그분을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해 왔다. 우리 모두가 갑작스러운 그분과의 이별을 맞이하며 안타까운 후회 대신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지금 생과의 이별앞에서 스승님의 영혼과의 재회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저마다의 모습으로 아낌없이 행복하게 살아가 보자. 그때 쯤이면 스승님의 품에 안겨 모두가 환하게 웃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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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5 18:18:45 *.30.254.29

하고싶었던 말과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것 같군요.

 

'고맙다' 는 말은

이런 때 하는 것이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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