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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11일 20시 24분 등록
책방에서 서서 대충 한 권을 보는 경우도 있고,
옛날에는 돈이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형편이 되는 대로, 다른 것을 희생하고, 책을 사 보았던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내 책에는 줄을 마음껏 칠 수 있다. 나중에 줄치지 않은 곳에서 훌륭한 문장을 발견하게 되면 과거의 정신적 미숙을 비웃어 줄 수 있다. 좀 더 나아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2. 여름 한 낮에 베고 낮잠 자면 참 좋다. 높이도 조절할 수 있고, 자고 나면 책 속의 모든 내용이 입력되도록 주술을 걸어 두기도 한다. 남의 책은 다른 놈이 먼저 베고 자면서 알맹이를 빼어 갔을 지도 모르니까 ...

3. 가끔,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서가에 아주 오래 동안 꽂혀있던 책을 빼어들고 몇장을 넘기다 색 바란 그녀의 쪽지를 찾아 낸다. 그녀...그때 모든 것이었던 그녀. 그리고 가끔은 내가 쓴 메모도 꽂혀있다. 언제 어떤 연유로 끄적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속에서 젊었을 때의 눈물을 알아채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는 절대 그런 것을 끼워 놓지 않는다.

4. 집에 책이 좀 있으면 멋있어 보인다. 먹물이 좀 들어 보이니까. 가끔 돈을 좀 비웃어 줘도 그 책들을 열심히 읽어서 그런 수양을 쌓았나 보다라고 남이 착각해 줄지도 모른다. 부자가 아닌 것, 부자를 비웃어 줄 수 있는 정신적 풍요가 그 많은 책들 속에서 오지 않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을지도 모르니까 . ( 한번 정도 더 꽈야 읽는 사람들이 헷갈릴텐데) 집에 책은 몇권 없고 TV 세트만 크면, 어쩐지 그 주인이 고아한 내숭조차 떨지 못하는 속물 처럼 보인다. 방귀를 뀌는거야 생리적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대놓고 뀌어댈 필요는 없지않겠는가. 책은 그러니까 숨어서 뀐 방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어쨋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다른 것을 사는 것 보다는 책을 사는 데 훨씬 더 꼼꼼하다. 그리고 책을 사면 흥분된다. 왜 ? 이유가 없을 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데 아무런 이유가 없듯이.

그러니까 이상하지만 진지한 질문을 던진 '책을 좋아하는 학생'도 사고 싶으면 사고, 말고 싶으면 마시라. 그대가 원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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