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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31일 09시 19분 등록


눈이 부시게 빛나는 날 결혼식이 있어 서산에 갔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렇게 함께 인생을 시작하고, 하객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 만난 때가 아주 오래 전이었음을 나무라며, 좀 더 자주 보자는 말을 남기고 헤어집니다. 그러나 가장 빨리 다시 만나는 때는 아마도 누군가의 아이들이 결혼식을 하거나 누군가의 부모가 돌아가신 때가 될 것입니다.

우연이 맺어진 핏줄의 인연은 같이 태어난 동네를 넘어 도시로 농촌으로 또 바다 건너로 삶의 공간들이 확장되면서 겨우 결혼식과 장례식 때나 손을 나누고 얼굴을 보게 합니다.

결혼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산 농장의 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개심사에 잠시 들렀습니다. 낡고 퇴락했으나 그래서 자연스러운 옛 맛이 좋은 절입니다. 대웅보전의 왼쪽으로, 단청을 칠하지 않아 단아한 선비 같은 심검당 앞에 목련 두 그루가 가득 꽃망울을 달고 서있는데, 건물과의 어울림이 절묘하여 겨울 속의 봄 혹은 봄 속에 남은 겨울을 보는 듯 합니다.

절 앞 고목나무 집에서 도토리묵에 동동주 한 잔을 하고 저수지를 끼고 돌아 나왔습니다. 아직도 많이 남은 햇빛이 호수 위에 가득하고 봄은 졸음처럼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주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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