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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4일 11시 34분 등록

( 뭘 잘못 눌렀는지 편지가 이상한 꼴로 나갔어요)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납니다. 우리 집에서 제일 일찍 일어나지요. 새벽에 일어났더니 내 책상 위에 이번에 고딩이 된 둘째 아이의 책 세 권이 놓여 있습니다. 어제 새로 받은 국어, 영어, 사회 교과서로군요. 그 옆에 책싸는 비닐과 테이프와 칼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새학기가 되면 나는 아이들의 교과서를 비닐로 싸 주곤 했습니다. 책을 싸주면서 속으로 공부 잘 하라고 빌어 줍니다. 주술과 마법을 불어 넣어주지요. 공부는 제가 하는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옆에서 조금 도와주는 것 밖에는 없지요. 고딩이 되었다고 나머지는 제가 싸고 내겐 세 권만 싸라고 내 책상 위에 놓고 잔 모양입니다. (친구들과 술 퍼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내가 그 애 보다 늘 일찍 자거든요)

오래 전 읽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에는 늘 딸 아이 이야기가 나와요. 컵에 물이 넘치듯 철철 넘치는 애정을 느끼곤 했었지요. 실례지만 그 땐 선생이 좀 푼수고 주책인 줄 알았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느끼고 있답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도 푼수와 주책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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