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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6일 14시 06분 등록

10.26과 결혼기념일

 

우리 부부는 2003년 10월 26일 공군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 국민들이라면 다른 의미로 각인된 날짜라서 그런지 결혼기념일을 까먹을 일은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의 생일도 우연히도 모두 26일입니다. (청빈이는 3월 26일, 우림이는 8월 26일에 태어났습니다)

 

 

팍팍한 일상때문인지 세상의 부부들에게 결혼기념일의 의미가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을 처음으로 맞이했던 결혼기념일에 가졌던 설레임은 몇년도 안되어 평소보다 쬐금 더 신경 써야 하는 날 정도로 위상이 추락하기 일쑤죠. 저만 해도 나름 이벤트를 준비하고 어떻게 아내를 기쁘게 해줄까 고민했던 초심을 잊은지 오래군요.

 

아내는 저와 결혼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두 아이의 양육에 올인한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자기답게 살겠다고 생소한 직업을 선택한지 벌써 3년이 흘렀고 아내는 무던히도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주고 있습니다. 최근에야 얼마 안되는 수입을 건네주기 시작한 남편에게 살짝 희망을 드러내는 아내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더해집니다.

 

 

조금 있으면 새로 상담을 신청한 고객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문득 오늘이 우리 부부의 다섯번째 결혼기념일임을 실감합니다. 상담을 끝내고 오는 길에 꽃 한다발과 케익이라도 사들고 와야겠다는 평범한 생각을 하다가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이전의 기억들을 떠올려 보면 아내가 그 어떤 이벤트나 선물보다 제 마음이 담긴 편지에 더 감동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탐미에게

 

오랜만이네. 이렇게 글로 만나는거 말이야. 매번 결혼기념일 챙기지 않는다고 당신을 타박했지만 다른 멋진 남편들처럼 그 흔한 그럴싸한 이벤트 한번 챙겨주지 못한 내 과거를 생각해 보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안그래? 난 말야 아직도 철이 너무 없는 남편인거 같아. 아직도 당신과 아이들보다는 내 입장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내가 직장을 그만둔지도 벌써 3년이 가까워지네. 도저히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나의 협박 아닌 협박때문에 당신이 퇴사를 허락해주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당신을 고생시킬지는 몰랐어. 둘째 우림이까지 태어나고 당신이 아이들 챙기느라 동분서주할 때도 나는 지독한 이기심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보다는 어렵게 주어진 자유를 방임으로 일관하며 당신 속을 까맣게 태워왔지.

 

철없는 못난 남편의 행동에도 당신은 결정적일때마다 지혜로운 충고를 아끼지 않았고 큰 실망감에도 다른 아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인내력으로 나를 지켜주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나에게 위안받고 싶어할 때마다 내 성질에 못이겨 당신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서 당신마음을 여러번 아프게 했지.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내 새로운 직업의 정착이 느려지는 것보다 이런 점들이 당신을 더 힘들게 했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하게 돼.

 

 

요즘 들어서 당신이 얼마나 실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과 가정생활 모두에서 어떤 자세로 임해야할지 깨닫고는 부족하나마 노력하고 있어. 아직도 한참 모자란 수준이지만 이런 작은 노력때문에 당신이 조금이라도 힘을 얻는거 같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앞으로 지금 이 마음 변치않도록 더 노력하는 모습 보여줄께. 당신이 기대하는 바다같이 넓은 마음으로 가족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남편이 될 수 있도록 말이야.

 

청빈이와 우림이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신이 자기만의 시간을 좀 더 가졌으면 좋겠어. 일주일에 하루쯤은 아이들 걱정에서 벗어나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자유롭게 보낼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께. 친구들도 만나고 혼자서 쇼핑도 즐기고 사교댄스도 다시 시작해봐. 당신의 영혼이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할꺼야. 내 책임이 크지만 당신도 욕심을 좀 더 내주었으면 해.

 

 

발산으로 이사가면 양가 어른들께도 아이들에게 쏟는 관심과 노력만큼 신경을 썼으면 해. 나는 어른들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지금의 일을 믿음직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최선을 다할께. 아이들 재롱을 통해 힘을 얻으실 수 있도록 더 자주 찾아 뵙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 보여주도록 같이 노력하자.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니까 잘해 나갈꺼야.

 

당신에게 프로포즈할 때 약속했던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의 최후의 지지자이자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께. 하도 말로만 헛된 약속을 남발했던 기억이 많아서 스스로도 불안한 마음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행동으로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애쓸거야. 지켜봐 줘. 탐미야 사랑해.

 

- 당신과 함께하는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미래를 확신하는 귀염둥이 씨오가 -

 

IP *.100.10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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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6 14:26:06 *.125.226.75
야, 멋지네요...
결혼이라는 게 사실....서로간의 구속이 아닌, 아름다운 동행이어야 하는데...
정말 잘 살고 있는 듯해서 아주 보기 좋습니다.

어느 해 보다 더 멋진 결혼 기념일 선물일 것 같아요....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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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8.10.26 20:02:36 *.129.207.121
멋진 남편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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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2008.10.26 21:51:10 *.33.208.209
좋은 남편이 못된 탓일까요? 질투납니다..^*^
이기찬 님 참 멋진 분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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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10.26 22:49:05 *.220.176.3
기찬형.

요즘 힘빨이 붙는 것 같아요.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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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8.10.27 12:44:46 *.105.212.77
울 탐미가 보면 제가 바깥에서 사람들 속이고 다닌다고 혼내겠네요..^^ 좋게 봐주셔서 그렇지 지지리도 아내 마음고생 자주 시키는 철없는 남편입니다. 유일하게 반성을 잘하긴 하지만요.. 노력해야죠 진짜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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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벗
2008.10.28 15:31:45 *.90.31.75
제가 아내도 아니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남편을 이해하고, 두 아이를 반듯하게 사랑으로 키워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아내시네요.
저 같은 경우도 제 자신을 돌아보고, 더 열심히 살아갈수록 가정에 미안한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기찬님이 본인이 가장으로, 남편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조금씩이나마 노력한다는 점에서 저와 동일성을 느끼다가 마지막에 부모님마저 아내에게 일임(?)한다는 느낌- 아이들에게 쏟는만큼, 나는 내 일을 믿음직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걱정안시킬께...라고 하실때 숨이 가빠짐을 느꼈습니다.
기찬님의 좋은 글을 늘 읽으면서 리플을 달아본적이 없는데, 아내에 대한 글이라 마음이 남달라서 글을 써봅니다. 늦었지만,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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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08.10.28 17:14:37 *.92.16.25
기찬아, 늦었지만 결혼기념일 축하한다.
와이프 뿅갔겠네.
나도 결혼기념일이 3월 1일이라 절대 까먹는 일은 없는데, 별로 해준 게 없는 못된 남편이지.
기찬아, 돈 많이 벌어. 그게 장땡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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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로
2008.10.29 15:10:43 *.243.13.131
기찬님.
늦게나마 결혼기념일을 축하합니다.
남편으로써 넘침보다 조금 부족함이 좋습니다.
부족함이 있어 부부가 될 수 있으니까요.
서로가 늘 그 부족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것이
사랑이고 그 사랑이 행복의 길을 만듭니다.

그럴싸한 이벤트 한번 챙기지 못한것이
마음에 걸릴니다. 저도 곧 있으면 18주년인데
아직 그럴싸한 이벤트 한번 못하고 있으니....

기찬님의 아내 사랑하는 마음이 좋아
그럴싸하진 못해도 작은 기쁨은 될 수 있을것 같아
작은 선물을 하나 보내 드릴까 합니다.

저는 꿈벗18기 이관로이고요 메일 lgr63@naver.com으로 주소 주시면
보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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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8.10.29 17:34:24 *.105.212.77
이렇게 감사할데가.. 이관로님 초면에 이렇게 따뜻한 말씀과 선물을 주신다하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염치불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접수하겠습니다.. 메일로 주소 보내드릴께요.. 곧 뵐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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