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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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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3일 17시 34분 등록

밥먹을때마다 속썩이는 딸아이

제게는 네살난 딸과 이제 막 돌이 지난 아들이 있습니다. 올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사랑스러운 딸 청빈이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누구보다도 독립심이 강하고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언어구사 능력이 뛰어난 청빈이지만 밥먹을때만 되면 단란한 집안에 먹구름을 몰고 옵니다. 왜 그러냐구요? 밥을 적게 먹고 먹는 속도가 느린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밥과 반찬을 철저하게 분리해서 먹는 습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습관때문인지 청빈이는 밥맛을 제대로 못 느끼고 언제나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표정으로 전쟁을 방불케하는 엄마 아빠와 실랑이를 벌이곤 합니다. 때론 당근으로 때론 약간의 협박까지 동원해가며 겨우겨우 먹여보지만 이 과정에서 저와 아내의 신경전이 자주 벌어집니다. 억지로 먹이지 말고 지가 배고프면 알아서 먹게된다고 주장하는 저의 생각과 가뜩이나 발달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쳐진 아이에게 이렇게라도 먹이지 않으면 어떻하냐는 아내의 걱정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내가 딸아이 밥먹이기에 저처럼 속편하게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청빈이가 태어날 때 체중이 2.1kg로밖에 안됐고 커가면서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는 체중이 덜 나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딸아이가 적은 체중에도 건강한데다 덩치가 큰 아이들에 비해서 훨씬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나 봅니다.

몇년전에 아내와 심하게 다투고 난 후 제 블로그에 남긴 글을 통해서야 저는 아내의 심정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죠. 아내가 청빈이를 임신하고 있을때 여러가지 이유(제 불찰이 많았죠..ㅜㅜ)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그게 아이가 저체중으로 태어난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 마음의 짐때문인지 아내는 초기에 모유를 잘 먹지 않는 청빈이때문에 무던히도 속앓이를 했습니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도 청빈이는 엄마젖을 쉽사리 물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엄마들이라면 포기하고도 남을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청빈이는 모유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모유수유를 사수했던 엄마 덕분에 청빈이는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도 아내의 노력은 계속됐습니다. 아내사전에 사서 먹이는 이유식은 있을 수 없었고 태어날때부터 까다로운 식성을 가진 청빈이 입맛을 맞추기 위해 다양한 이유식을 만드느라 아내는 매일 바빴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고 말하는 아내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더군요.

청빈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을때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얼만큼을 먹던지 자기가 알아서 먹을 수 있도록 습관을 들여야 했는데 아내 입장에서는 청빈이가 한끼만 잘 안 먹어도 걱정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때부터 식사때마다 엄마가 달라붙어서 밥을 먹이기 시작했고 청빈이의 식습관은 지극히 수동적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방관자에서 협력자로 거듭나기

막내 우림이가 태어나기 전에 딸아이 밥먹이기 담당은 언제나 아내였습니다. 저도 가뭄에 콩나듯 아내를 잠깐씩 돕긴했지만 몇분 안가서 짜증이 나서 아이를 울리거나 이런 나쁜습관을 만든 아내한테 화풀이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아내도 가끔씩 딸아이의 밥투정에 지쳐서 짜증을 내긴 했지만 참을성이 없는 저에게 웬만해서는 딸아이 밥먹이기를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도움이 전혀 안되는 방관자였고 감정적으로 화내고 비난하는 못된 남편이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생기고서는 상황이 변했습니다. 이제 아내는 딸아이뿐만 아니라 아들녀석 먹이기에도 손이 부족했거든요. 어쩔 수 없이 딸아이 밥먹이기는 제 몫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아내는 그런 제가 미덥지 못해 멀티플레이어가 되어갑니다. 당연히 아내의 식사는 대충대충이 되었구요. 미안해지더군요. 그때부터 둘째녀석을 웬만하면 제가 안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였고 아들녀석이 아빠품에 안겨 밥을 먹어야 더 얌전을 떨어서이기도 했습니다.

며칠전 일입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딸아이 식사수발을 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작정 재촉하거나 화만내지 말고 아이에게 밥먹는 재미를 느끼게 해줄 좋은 방법을 찾을순 없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전까지는 기껏해야 일명 '밥노래'라는 놀이를 통해 아이의 거부감을 조금 완화시키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정곡법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설득력있는 말로 얘기하면 어린아이답지않게 쉽게 수긍하던 딸아이의 평소 모습에서 힌트를 얻었다고나 할까요?

밥과 반찬을 여전히 같이 먹기 싫어하는 청빈이에게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과 음성으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청빈아. 밥과 반찬을 따로 따로 먹으면 제 맛을 느낄 수가 없는거야. 또 그렇게 먹다 보면 시간도 오래 걸려서 니가 좋아하는 놀이도 금방 할 수가 없거든. 밥하고 반찬을 같이 입에 넣고 씹으면 정말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단다. 아빠말 믿고 한번 먹어보지 않을래?"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는 표정이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아빠의 태도에 살짝 감동받았는지 딸아이는 순순히 협조해 주더군요. 아내는 그런 저의 행동을 미심쩍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짜증만 내고 애만 울리던 못난 남편의 이전모습에 비하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아이의 진짜 속내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연신 오버하며 "어때, 아빠 말대로 먹으니까 진짜 맛있지? 그치?"하는 아빠의 심리전술에 "응, 정말 맛있어. 아빠"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그렇게 딸아이는 오랫만에 실랑이 없이 밥에다 반찬을 얹어 한그릇을 뚝딱 비웠습니다.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딸아이가 고마웠고 진작에 이런 마음과 자세로 대했더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에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아내 역시 내심 기대하지 않았던 비협조적인 아빠가 딸아이와의 밥먹이기 전쟁(?)에서 작은 승리를 거둔 모습에 미소를 짓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약간 다른 형태의 저항은 있었지만 저와 아내의 합동작전으로 밥과 반찬이 입안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도 또 먹어도 된다는 평범한 상식을 딸아이에게 알려주는데 성공하면서 무사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짜증만 내던 철없던 방관자 아빠가 잠시나마 괜찮은 협력자로 대우받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요?

 

세상의 모든 아빠와 남편들에게

아직은 모자란 점이 많은 아빠이자 남편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고 아내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조금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자주 지적하는 것처럼 아이의 얘기를 좀 더 성의있게 듣고 답해 주는 일,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짜증내거나 끌려가지 말고 필요할 때는 단호하고 엄하게 혼낼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등에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아이라고 무조건 못 알아 들을 것이라는 편견, 아이의 시각이 아니라 어른의 시각으로 아이의 행동을 평가하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아내와 엄마로서 짊어져야 할 가정안에서의 무게는 남편들이 쉽게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남편에게 바라는 아내의 소박한 바람이 본인들만큼의 노력이 아니라 아빠로서만 해줄 수 있는 역할과 조금이라도 아내의 힘을 덜어주는 것임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집안일을 도와줌에 있어서 시켜서 억지로 하기보다는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분좋게 자발적으로 나선다면 훨씬 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상 작은 승리에 도취된 불량아빠의 고백이자 다짐이었습니다..^^

IP *.105.2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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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8.09.25 23:10:36 *.132.188.244
아이를 멋지게 코칭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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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50
2009.11.03 05:31:26 *.100.208.41
밥 먹이는 동화책을 이용해 보세요. 동화책 읽어주면서, 시각 청각을 자극하면 재미도 있고 도움이 될 듯...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8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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