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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1일 09시 40분 등록
 

번지 점프를 하다


난 정말 무심코 손을 들었다.


“내일 번지점프 할 사람!” 누가 물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해언이가 수줍게 손을 들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설마 저 연약해 보이는 해언이가 번지점프를....... 소녀라고 해야 어울릴 3년 째 대학생이다. 쌍꺼풀이 짙게 드리운 눈은 꼭 사슴을 닮았다. 약간은 까무잡잡한 얼굴색이 그나마 나약하게만 보이는 그녀를 얇게 가려주었다. 빨간 스웨터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은 보라색 소처럼 주변 사람들과 달라 보이기에 충분했다. 다섯 손가락이 조금 보일 정도의 수줍은 미소를 띠며 어깨 높이에 손가락 다섯 개가 보일랑 말랑하게 옷소매를 잡고 고개를 들었다.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니 나 혼자~~~” 해언이가 좀 당황한 기색을 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해언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눈에 안경을 쓴 희석이가 손을 들었다. 희석이는 그때부터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손을 드는 순간부터 그는 진정되지 않는 짜릿한 흥분상태로 모드가 전환된 것이다. 마치 곧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오버 액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번지점프 정말 해보고 싶었어....... 으으아~~악........”

그는 번지점프를 하기로 작정한지 불과 일주일 전 첫 책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로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린 내게는 너무나 부러운 존재였다. 한참 아래의 동생이지만 왠지 친구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하는 희석이의 미소는 그야말로 백 만 불짜리 미소다.


희석이의 가세에 나도 손을 번쩍 들었다. 순간 한숨을 깊숙이 들이쉬더니 써니누나가 비장한 각오라도 한양 떨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든다. “나도 할꺼야~~”

대한민국 중년 아줌마의 저력을 한 몸에 짊어진 것처럼 그녀의 번지점프 처녀출전은 의미심장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가슴속에 꽉 매인 표현하기 힘든 뭔가를 번지 점프 계곡에 내리 꽂고 싶은 눈치였다. 이놈을 이번에는 내 몸속에서 떨구어 버리리라는 의지가 얼굴에 나타났다. 넓고 큰 검은색 선글라스에 가려 그녀의 눈빛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눈가에 어쩔 수 없이 빠르게 떨려오는 근육경련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스펙터클함을 넘어 정말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그런 코스를 지목했다. 코스를 설명하는 사진을 본 우리 일행은 이건 아니다싶었다. 그녀를 진정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이도 나보다 훨 많은데다 고집은 어찌나 센지....... 아마 그래서 써니가 됐을 꺼다.......ㅋㅋ


어쨌든 134m Nevis Highwire Bungy 로 결정하고 예약을 했다.


역시 생사고락을 같이한 사람들은 뭔가 다른 애정이 느껴진다. 괜히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고 그냥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났다. “우리가 제정신이 아니지........”

희석이 가슴떨림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이상한건지 희석이가 오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난 정말 별 느낌이 없었다. 그렇게 무서울 것 같지도 않았다. 어차피 번지 줄에 매달릴 것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허공을 뛰어내릴 상상만으로 즐거웠다.

설악산 대청봉 옆의 절벽이나 북한산의 수직 절벽 같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볼 때가 생각났다. 내 몸은 절벽 위에 있지만 마음은 그곳을 뛰어내려 한없는 아래로 향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내 몸도 함께 뛰어 내릴 수 있겠구나. 그때 어떤 기분일 들까 난 그것이 알고 싶었다.


내 계산이 맞다면 나는 134미터 높이에서 1초에 51미터를 떨어지게 된다.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배운 운동에너지=위치에너지 이 식을 이용하면 51m/s라는 답이 나온다. 이 속도는 자동차가 180km/h의 속도로 달리는 것에 맘먹는다. 공기의 저항과 바람의 영향, 수없이 많은 가느다란 고무줄을 꼬아 만든 번지 줄의 탄성효과를 감안하면 가로 40cm 세로 40cm 의 좁디좁은 번지 대에서 추락한 후 대략 4초정도면 공중에 매달린 채로 지면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도달하게 된다.


아침이 되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8시까지 버스 타는 곳으로 가기위해 우리 일행은 서둘렀다. 평소에는 내가 깨우러 다녔는데 써니 누나와 희석이가 잠을 잔건지 만 건지 밥을 해놓고 나를 깨웠다.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며 함께 밥을 먹고 있는데 해언이도 눈을 비비며 들어왔다. 해언인 먹지 않았다. 꽤나 긴장되어 보였다. 어제의 그 당당함에서 약간 뒷걸음 친 모습이다. 아침 공기가 꽤 차가웠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고 붉게 땅을 드러낸 길바닥에 발자국 모양의 얕은 웅덩이 물은 얼어있었다. 이정도 기온이라면 그곳은 꽤 높은 곳이어서 살이 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아이들 몇 명과 우리 일행은 차에 올랐다. 희석이가 점점 주체하기 힘든 기운이 자꾸만 올라오는 듯하다. 오른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꽉 누리며 왼손바닥을 90도로 젖히고는 앞으로 내민다. 이렇게 긴장될 줄 몰랐단다. 그 모습이 참 재미있다. 해언이 모습은 정말 의외였다. 너무나 담담했다. 음악을 들으며 눈까지 지그시 감고 오늘을 즐겨보려는 듯 그녀는 별 말이 없었다. 써니 누나가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뛰어내릴 수 있을까” 그러는 사이 버스는 산꼭대기에 다다랐다.


번지점프를 하는 곳까지 가는 데는 의뢰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군대의 추억을 떠올렸다. 사고방지와 긴장감 유지를 위한 유격훈련 전의 PT체조 같은 것을 시킬 줄 알았더니 여기 얘들은 유격훈련을 구경하지 못한 것 같다. 안전벨트를 매게 하더니 바로 곤도라로 우리 일행을 밀어 넣더니 안전벨트 구명줄에 매달린 카라비나를 곤도라 위쪽 와이어로프에 걸었다. 곤도라는 밑 그러니까 우리가 서있는 두 다리 아래로 계곡이 훤히 보일 정도로 뚫려 있었다. 계곡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 와이어로프를 메어 그 가운데 번지점프를 할 수 있도록 집을 매달아 놓았다. 곤도라는 산꼭대기에서 그 집으로 꽤 빠른 속도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긴장된 미소로 애써 두려움을 외면해 보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굳어지기 시작한 얼굴은 쉽게 연해지질 않는다.


덜컹 소리가 났다. 곤도라가 번지대에 도착한 것이다. 번지대에 기다리고 있던 조교가 문을 열어 주었다. 여기서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번지점프대의 바닥은 여러 부분을 투명하게 해놓았다. 곤도라에서 본 아래 계곡 모습과 좀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


첫 번째 선수가 뛰어내린 것은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의자에 앉아 양다리를 걸치는 거치대 위에 발을 올려놓게 하더니 번지로프를 발목에 묶는다. 발목에 묶은 장치는 꼭 패트병처럼 생겨가지고는 가운데가 텅 비었다. 가운데가 텅 빈 이유가 있었다. 점프를 한 후 사람을 끌어올릴 때 번지로프로 올리는 것이 아니고 번지점프대 지붕 위에 설치된 윈치(기중기)에서 밧줄이 내려오게 되는데 그 밧줄 끝에 텅 빈 통속으로 들어가서 고정시키는 장치가 되어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통속에 넣고는 다 넣은 다음 꼭 쥐었던 주먹을 펴면 손을 빼지 못하는 원리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 낚시 같은 것이다. 이것을 이용해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람을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첫 주자로 나선 아주 좋은 덩치를 가진 호주에서 왔을 것 같은 친구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45 X 45 크기의 끝에 섰다. 잠시 아래를 내려 보더니 이내 짧은 한숨을 쉬고는 주저 없이 뛰어 내렸다. 그 친구는 별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마치 “우린 이런 거 자주해”하며 어깨를 으쓱 하는 듯 했다. 그 뒤로 외국인 친구 4명이 차래대로 뛰어내렸다. 남자건 여자건 할 것 없이 아주 담담하게 뛰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난 순간 “강적이다”란 말이 튀어 나올 뻔 했다. 다음은 내 차례다.


먼저 뛴 다섯 명의 외국친구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유심히 보아온 터라 준비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거치대에서 번지로프를 묶고 기우뚱 거리며 섰다. 이제 45 X 45의 끝으로 옮겨가는 것과 그리고 거기서 뛰어내리는 일만 남았다. 외국인 친구에게 디카를 빌린 희석이를 보면 긴장된 포즈를 취해 주었다. 조교가 나를 점프대 끝으로 밀려고 하는 순간 잠시 기다려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똑바로 서서 담담한 모습을 디카에 담고 싶었다. 승리의 브이가 어쩌면 소심한 브이로 손가락이 구부려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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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점프대 끝에 섰다.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오금이 저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내 시선은 정면에 보이는 바위산으로 재빠르게 옮겨졌다. 더 이상 아래를 계속 내려다보고 있다가는 주저앉을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애라 모르겠다. 그냥 던져 버리자.” 이렇게 마음먹고 그동안 생각해 놓았던 독수리 오형제가 하늘을 날아오를 때 취하는 포즈를 하고 무릎에 약간의 힘을 주었다. 허공에 내 몸이 날아가고 있었다. 순식간의 일이지만 뛰어내린 처음은 생각보다 공기의 저항이 꽤 쎄게 느껴졌다. 그리고 난 4초 동안 새가 되었다. 비록 발목에 줄이 묶인 어정쩡한 상태였지만 내게는 중력의 위력을 확실히 느낀 첫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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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뛰어내리고 난 후에는 함성이 절로 나왔다. 번지로프가 다 풀리고 다시 몸이 뛰어 올랐다.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그런 여유가 생겼는지 주위를 다 돌아보며 연신 소리를 질렀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 소리는 안타깝게도 내 글재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이미 야~~~호~~ 수준은 훨씬 넘어버린 초 절정 비명에 가까웠다. 속이 다 시원했다. 출렁거림이 없어졌다. 거꾸로 매달린 몸을 누운 자세로 바꿔주는 줄을 힘껏 당겼다. 발목을 잡고 있던 부분이 풀리고 어깨걸이 안전벨트의 가운데 부분으로 힘이 전달되었다. 그렇게 번지점프가 끝났다. 점프대 위쪽에 설치된 윈치에서 로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까 그 빈 통 속으로 주먹같이 생긴 놈이 들어갔다. 아마 올리면 자동으로 펴지면서 통에 걸리게 될 것이다. 내 몸은 대롱대롱 매달린 체 위로 위로 올라갔다. 이제 끝났다. 참 희한하게도 줄에 매달린 채 내려다보는 계곡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평화롭기까지 하다면 너무 오버하는 걸까. 아무튼 뭔가 해냈다는 은근한 자부심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다시 점프대까지 올라왔다. 마지막 안전 고리를 풀고 우리 팀과 하이파이브를 연신 해댔다.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과 환희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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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희석이 차례가 돌아왔다. 그동안의 정황으로 봐서 좀 걱정이 되었다. 왜냐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번지점프 이야기만 나오면 바로 뛰어내리고 올라온 사람처럼 그렇게 숨을 헐떡거리기까지 했던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오면서 한 번도 번지를 해보지 않은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바위를 탈 때 로프를 묶고 하는 것과 묶지 않고 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로프가 내 몸에 묶여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내 자세는 더욱더 유연해지는 반면 로프가 내 몸에 묶여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똑같은 자세가 나오질 않고 몸이 자꾸만 경직되었던 내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번지점프도 마찬가지로 번지로프가 나를 지탱해 줄 것이기 때문에 절대 안전하다. 그냥 번지로프를 믿고 뛰어내리면 된다.” 희한하게도 희석이는 나에 구라를 믿어줬다. 그 후로 그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희석이는 찬스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러나 그도 45 x 45 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순간 멈칫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을 어려워했다. 역시 희석이였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멈칫 하다가는 이내 공중을 갈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그 심정이 이해간다. 그 발판위에 서있는 것이 더 못할 짓이라는 것을....... 희석이 폼 정말 작살이다.


다음은 써니 누나다. 천신만고 끝에 이곳까지 왔다. 번지점프에 대한 여러 가지 악성 루머에도 굴하지 않은 그녀다. 허리에 충격이 간다느니, 다 떨어질 때 꽤 큰 충격이 온다느니 하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었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모든 준비를 하고 그곳으로 발을 조금씩 옮겨 나갔다.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누나의 발은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는데 허리 위로는 그 자리를 떠나기 싫어하는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누나는 자꾸 뒤에서 누가 잡아당긴다고 했는데 사실 조교가 넘어지는 것을 거의 떠받치고 있었다. 그러더니 앞으로 나가던 발마저 다시 제자리로 오고 말았다. 그때 누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할 정도로 흥분한 상태로 보였다. 이러다 사람 잡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조교의 도움으로 흥분을 가라앉힌 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1차시도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났는지 머리를 잡고 몸이 뒤로 휘었다.  순간 정말 못 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게 흘러갔다. 2차 시도도 실패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아줌마의 저력을 우리는 보고야 말았다. 아마 3차 시도에서도 뛰지 못했다면 정말 이 글을 쓰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몇 번의 심호흡 끝에 누나는 고목나무가 쓰러지듯이 45 x 45 발판에서 앞으로 과감하고 멋지게 뛰어내렸다. 우리 팀과 그곳의 스텝 모두 환호했다. 번지를 끝낸 누나는 지구의 모든 사람을 사랑해줄 것 같이 모든 사람과 포옹하며 그 순간을 즐겼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이제 마지막 차례는 해언이 몫이다. 그녀의 그동안 모습에서 담담한 자신감을 보아왔다. 그때까지 그녀는 강심장 자체였다. 어제부터 해언이는 어여쁜 소녀라기보다 잔다르크를 연상시키는 당당함이 넘치는 장수였다. 그러나 번지로프를 묶은 후 서서히 얼굴빛이 변해가는 것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포카혼타스를 연상하며 뛰겠다던 그녀의 사전 지명을 의식해서인지 해언이의 뛰어내리기 직전 폼은 역시 남달랐다. 난 사실 포카혼타스의 어떤 자세를 취하려는지 잘 몰랐다. 그러나 해언이 포즈는 수영선수 박태환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마치 앞에 물이 가득 고여있기라도 한 듯 그녀는 무릎을 굽히고는 입수자세를 취했다. 꽤 기대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해언이는 그 자세에서 로댕의 작품을 연상할 만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씩 다리를 떨고 있었다. 다시 기운을 냈다. 이제 뛰어내릴 수 있을꺼야 하며 다시 다리에 힘을 준다. 안타까운 순간이 다시 연출된다.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이건 아까 써니 누나와는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우린 응원을 시작했다. 그런데 조교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내며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자기가 뭐라고 조용조용 해언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황당한 내 영어실력에 그 말뜻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직관적으로 뭐라 말했는지 알수 있을 것 같았다.

“야~~~ 걱정 하지 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 알았지....... 절대 아래를 쳐다 보지마. 저기 멀리 보이는 나무를 보고 몸을 앞으로 쓰러뜨리는 거야. 넌 잘할 수 있어.”

뭐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해언이는 자유롭게 뛰어 내렸다. 줄에 매달려 올라오는 그녀의 눈가엔 감동의 눈물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우리 사총사의 번지점프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번지시간은 8초였지만 우리가 나눈 시간은 1박 2일이었다. 우린 서로 급 친해졌고 앞으로 영원히 기억될 추억을 만들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풋풋한 미소를 머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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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9.11 10:11:17 *.240.107.137
햐,멋지다. 나도 그걸 해봤어야 하는건데...글과 사진을 함께 보니 그날의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네요. 가슴이 마구 떨립니다. 다들 대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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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9.11 13:18:46 *.169.188.48
얼굴표정이 얼었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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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9.11 13:38:52 *.36.210.123
그게 8초였니? 겨우 8초에 그케 비쌌단 말야? 뒈지게 비싸네. 80분은 족히 된 것 같아. 강현 말처럼 30분은 족히 타야 뭘 했다고 할 수 있는 건데 말이지. 그는 계속 30분 동안 살을 에이는 듯한 물방울 세례를 받았다며 베트남 운전사 특유의 너스래를 떨어댔지.

그러게 내가 어쩌자고 겁도 없이 욕심만 많아 가지고 선 이왕 뛰어내리는 거 43미터나 134미터나 마찬가지라고 우겨댔는지 몰라~

아우들아, 여자가 아이 하나 낳을 때마다 얼마나 감수하는 줄 알아? 진이 다 빠져나가서 그래. 내가 말야, 소실적에는 나도 안 그랬어. 하하하.(우리가 이렇게 오래 여러 번에 걸쳐 우려먹을 수 있는 건 사부님이 못하셨기 때문이기도 하지~ 흥흥)
한 때는 남자 코치들도 두려워 하며 회피하는 군대의 유격훈련도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 앞에서조차 시범을 보여가며 서슴없이 다 해치웠었는데, 어느덧 세월 흘러 중년의 졸아든 가슴으로 난간에 서는 순간 마치 다리가 금방이라도 스르르 주저앉을 것만 같더라. 게다가 진행요원이 고리부분을 잡고 정말 나를 잡아당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니까. 뛰어 내리려면 난간에 잘 서야 하는데 밑을 내려다 보게되어 현기증이 일고 정신도 의지도 차릴 겨를 없이 몸이 저절로 뒤로 나자빠지는 거 였지. 나름대로의 뜸을 드리며 쉼 호흡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긴장하니 더 말도 안 통하고 사색이 되었던 것이지. 뛰고 나서는 예전 같지 않은 내 졸아든 가슴을 느끼며 아쉬움엔지 솔직히 다시 한 번 더 뛰어 내리고 싶기도 하더라. ㅋㅋㅋ

그대들이 있어 좋은 추억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댔지. 특히 옥균이 형 멀찍이 내빼던 걸. 덕분에 못 말리는 사총사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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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9.11 18:33:52 *.247.80.52
엄청 부럽게도 열심히 울거 먹는군.

나도 패러글라이딩 했다구. 했다구. 그런데... 과학을 너무 믿어서 그러는지 하나도 안무서웠어. 그게 내 몸에는 낙하산이 묶여져 있으니까. (살짝 거만한 모드로) 고무줄 묶고 뛴 사람들도 그런 거 아니겠어.
사실 곤돌라가 제일 무섭지.그거 문 열려서 쏟아져 버릴까봐. 크크큭.

나는 이말이 마음에 들어.

"바위를 탈 때 로프를 묶고 하는 것과 묶지 않고 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로프가 내 몸에 묶여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내 자세는 더욱더 유연해지는 반면 로프가 내 몸에 묶여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똑같은 자세가 나오질 않고 몸이 자꾸만 경직되었던 내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번지점프도 마찬가지로 번지로프가 나를 지탱해 줄 것이기 때문에 절대 안전하다. 그냥 번지로프를 믿고 뛰어내리면 된다.”

올해 초에 희석이에게는 다른 끈을 묶어 주었어. 북페어 할 때.
두려움없이 세상을 향해서 훨훨 날으라고. 그 끈의 끝은 희석이의 어머니와 희석이가 믿는 신과... 그리고 희석이가 사랑하는 사람들, 희석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걸꺼야.

홍스. 홍스도 끈이 묶여 있을 걸. 거침없이 번지를 해도 좋아. (내가 왜 자꾸 홍스에게 말을 놓지? 흐흐흐 미안해요 홍스.. 이상하게 그렇게 되네요.)

"준비 됐는가 오바. 자 그럼, 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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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누나
2008.09.22 00:17:30 *.38.102.209
홍스 마치 우주 비행사의 달 탐험기와 사진 같아.

그 뚝심의 밀어 붙이기와 한판 굳히기,
한판이 아니라 열판이라도 홍스는 해낼거야 라는 표정.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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