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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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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7일 14시 25분 등록

술보다는 술자리가 좋다

나는 술을 싫어한다. 체질적으로 술을 잘 못 마시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멀리해 왔다. 주량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렇지만 1년에 소주 2~3잔 정도 마시는 수준이다. 시커먼 얼굴탓인지 나를 처음보는 사람들은 90% 이상 민망한 내 주량을 고백할라치면 '술을 엄청 잘 마실 얼굴(?)'인데 하면서 정말 의외라는 표정을 짓곤 한다. 아직도 난 사람들이 내 얼굴에서 '술고래' 이미지를 떠올리는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자리 경험만큼은 주당들 못지 않은게 또 나다.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수부장관 시절에 인터뷰 도중 골프를 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던 기억이 있다. "골프에는 취미가 없었는데, 정치를 하면서 이런저런 협의를 해야 할 사람들이 모두 골프장에 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됐다"는 요지의 답변이었는데 내가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이유가 비슷하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술을 마신다. 괴로워서, 속상해서, 슬퍼서, 외로워서, 답답해서, 기뻐서, 축하할 일이 생겨서, 그냥 술이 고파서, 취하고 싶어서 등등. 나같은 사람이야 아직도 술맛을 전혀 모르지만 술에 무언가 묘한 기운이 있는건 사실인듯 싶다. 꽤 많은 사람들이 술 한잔 걸치고 나면 수다스러워지고 평소에 쉽게 꺼내지 못했던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가. 무장해제된 사람들의 포장되지 않은 속마음이 그득한 술자리가 그래서 난 좋다.


술자리 풍경 하나 - 정치

정치인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술은 양주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폭탄주다. 정치를 하는데 왜 폭탄주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더 가관인 것은 폭탄주를 돌리는 장소 또한 서민들하고는 거리가 먼 룸살롱, 고급 일식집, 호텔이라는 사실이다. 국회를 놀이터로 만든지 오래인 이들이 폭탄주를 마시며 지금까지 벌인 추태는 거의 기네스북 감이다.

회사다닐 때 룸살롱에서 임원이 주재하는 술자리에서의 일이다. 접대경험이 많았던 그 임원은 부하직원들 앞에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폭탄주를 만들었고 생전 처음보는 폭탄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아직도 그 때 임원의 얼굴에 담겨있던 자신은 뭔가 다른 존재라는 정체모를 우월감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다. 정치인들은 폭탄주를 마시며 자신들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한차원 다른 존재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이 폭탄주를 제조하고 마셔대며 으시대고 있을 때, 또 한편에서는 전혀 다른 술자리 풍경이 있다. 온라인상에서 친구가 된 생활정치인들의 오프모임 술자리 주인공은 당연히 소주다. 소주 한잔을 앞에 두고 수줍게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과의 인연을 얘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정겹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는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든 소박한 공감대를 더 소중히 여긴다.

폭음은 찾아보기 어렵다. 술마시는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과 부대낌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거창한 나랏일도 아니고 혼자만의 행복도 아닌 바로 곁에 앞에 있는 이들이 함께 행복해지기를 소망한다. 술은 그들의 이야기를 더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낯설음의 장벽을 완화시키는 윤활유일 뿐이다. 술속에 정, 신뢰, 사랑이 그득히 담긴 그들의 술자리가 그래서 난 좋다.


술자리 풍경 두울 - 사회경제

술마다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소주에서는 서민과 노동자가 느껴지고 막걸리에서는 농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양주에서는 정치인과 기업인이 보이고 맥주와 와인에서는 젊음과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느껴진다. 마시는 술에 따라 우리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달라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노숙자들과 자살하는 이들 곁에 놓인 소주병을 지켜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정치와 기업의 접대문화를 수놓는 맥주와 양주의 향연도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그런 우울한 그림자들을 이겨내고 더 꿋꿋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흐뭇한 술자리 풍경이 얼마든지 남아 있다. ?

직장생활의 피곤함을 덜어주는 퇴근길 포장마차에서, 생맥주 한잔에 회포를 풀며 건배를 외치는 호프집에서, 무언가를 축하하며 우아하게 와인잔을 들어 올리는 레스토랑에서, 막걸리 한잔에 새참을 즐기며 다시 힘을 내는 어느 논두렁에서, 누군가가 선물한 귀한 양주 한잔을 홀짝거리며 부부의 정담을 나누는 어느 집 식탁에서 우리는 그 어떤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즐기는 술자리를 만날 수 있다.

 

술자리 풍경 세엣 - 문화

영화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 맥주만큼 어울리는 술이 또 있을까. 나같이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한밤중에 집에 혼자 앉아 영화 한편 볼때 새우깡을 안주로 즐기는 캔맥주의 맛을 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누군가라면 와인 한잔을 음미하며 즐기는 고전음악의 향취를 알 것이다. 락밴드의 스탠딩 공연장에서 월드컵을 응원하는 광장에서 한손에 든 병맥주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술과 문화가 만나면 흥청거림과 나른한 즐거움이 더해진다. 음식과의 궁합은 또 어떤가. 치즈와 와인, 삼겹살과 소주, 레몬과 데낄라, 부추전과 막걸리, 빼갈과 짬뽕국물, 오징어땅콩과 맥주, 과일안주와 양주. 모두가 조화가 중요하다. 사람사이의 어울림속에서 피어나는 문화에서 술의 의미는 더욱 조화롭게 그 관계를 발효시키는데 있다.


가슴이 따뜻한 술자리를 만나고 싶다

사람냄새가 나는 술자리, 술이 사람을 먹지 않는 술자리, 진정한 소통이 있고 사랑과 신뢰를 나누는 술자리, 모두가 서로를 격려하고 흥을 돋는 술자리를 나는 계속 만나고 싶다. 그 안에서 나누는 주제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에너지를 나누고 싶다. 그런 술자리라면 소주면 어떻고 맥주면 또 어떤가. 많이 마시면 어떻고 전혀 안 마시면 또 어떤가.

우리 주변에서 이런 술자리 풍경을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는게 아무리 힘들어도 술 한잔에 담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감에서 따뜻한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져라.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쏟아내고 슬픔과 노여움 그리고 절망이 있다면 술잔속에 담아 거침없이 마셔버려라. 당신의 희망과 믿음을 전염시키고 즐거움과 기쁨을 배가시켜라.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기나긴 여정의 동반자가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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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4 18:13:47 *.210.34.134

It is not enough if you buy the most expensive sheer wedding dresses, and you need to carry it off well too. simple wedding dresses may be used for various occasions, and if not used the right way may end up looking a complete w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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