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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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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4일 15시 09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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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륙을 횡단하며(2) - 바람의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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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타고 흐르는 바람은 시원하다. 여명은 곧 어두워질 것이다. 지금 시야에 보이는 것은 내가 발딛고 선 언덕과 비슷해 보이는 언덕들이 계속 이어지는 언덕들의 바다일 뿐이다.

처음 방향감을 상실했을 때 바로 되돌아나갔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굴러야만 앞으로 간다는 것은 전진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야할 방향을 내가 선택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늘 잊곤 한다. 달려온 길에 쏟은 힘이 아까워 나는 조금만 돌아나가면 되는 것을 늘 무시한채 너무 많이 와버렸다.  바람농장을 지나치리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깊숙히 들어오리곤 출발할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해가 지기 전까지도 나는 실감하지 못했다.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달구어진 몸을 어느새 바람은 식혀버렸다. 제법 쌀쌀하다.

해가 지고 있는 붉은 서쪽을 나는 오래도록 서서 보았다. 붉은 색에서 노란색 기운을 조금만 남기고는 검어진다. 그러다 문득 밤을 보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잃은 곳에서 야간 질주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른 바람이 덜한 곳을 찾았다. 밤새 텐트를 흔드는 바람은 요란했다. 피곤함이 귀를 닫게 했다. 나는 곧 잠이 들었다.

환한게 느껴졌다. 아침이다. 텐트는 약간 젖어 있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덮혀 있다. 해는 보이지 않는다. 초코바를 꺼내어 아침 요기를 한다. 
'여기를 어떻게 해야 빨리 빠져나가지?'
짐을 꾸리면서도 한가지 생각 뿐이다. 지금껏 달려온 풍차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둔 길을 따라 계속 달린 것인가? 지금 이 길이 이 농장을 빠려나가는 방향인지, 더 깊숙히 들어가는 길인지 알 수 없다.  나에겐 이 농장을 전체적으로 볼 지도가 없지 않은가. 
'서쪽으로만  계속 갈까?'
그러면 풍차를 사이를 돌고 도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대신 언덕에서 가파른 방향으로 오르거나 내려가게 될 것이다.

지금의 나에겐 훤히 보이는 앞이 있고, 달리 수 있는 하루라는 충분한 시간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몰라서 출발하지 못한다. 짐을 싸두고 한참을 앉아서 생각한다. 여행중에 길을 잃었던 적이 있었지만 헤매던 갈림길에서는 항상 이정표가 있었다.  그때는 항상 길 위에서 길을 잃었었다.  지금은 길 위에 있지만 길 이름은 없고, 이정표는 모두 똑같은 모양의 풍차들 뿐이다. 쿠키를 따라가면 집이 나온다면 좋겠다. 노란길을 따라가면 집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 도로시 일행이 노란길에서 벗어났을 어떻게 다시 그 길을 찾았지?
길을 벗어나 강을 따라 내려와서는 다시 일행과 합류했을때, 그들은 다시 노란길로 되돌아가는 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처음 길을 벗어났던 길로 돌아갔던 것은 아니었다. 노란길과 강을 삼각형을 잇듯이 들판을 가로질러서 노란길이 나올때까지 걸었다.  이곳에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바람 농장의 규모을 점검한다. 동서로 35km , 남북으로 120km. 한쪽방향으로만, 서쪽으로만 계속 간다면 하루정도를 내리막길을 가거나 걸으면 빠져나갈 수 있는 규모다.  현재 내가 가진 물은 하루분, 하루쯤 굶는다고 해도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 시간은 하루를 넘기면 곤란할 것 같다. 계속 서쪽으로 내려가다가 더이상 풍차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쪽에 위치한 풍차들이 있는 그길을 따라 가면 도시가 나올 것이다.  

하루. 한쪽방향으로만 하루. 한쪽방향으로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길을 향하여 출발.

출발한지 5시간 반. 내가 가로질러 왔던 6개의 길과는 다른 길을 만났다. 어제 오전에 가속을 피해 들어선 길 이전의 널찍한 길. 드디어 거인의 농장에서 벗어나 노란길로 돌아왔다. 아래쪽으로 풍차들은 여전히 보인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도달하려면 또 어느 정도 달려야 할 것이다. 
'자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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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렇게 길을 잃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빠져 나와야 할지 막막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 1,2시간 헤매면 빠져나오는 곳에서만 길을 잃어봐서, 이런 일을 경험하면 어떻게 될지 막막합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모르는 길을 가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머리 속에서는 그려지는 지도는 지금 여기 언덕만 넘으면 구불구불한 길들을 따르지 않고도 가로질러서 저쪽 반대편에 다을 거리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막상 그 길에 서면 낭떠러지 길이거나, 사유지 표시로 철책이 있어 옆으로 빙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돌다보면 어느새 길을 자신이 어디쯤 와있는지 알지 못하고 산속에서 헤맵니다.
그때의 불안, 흥분, 그때하는 후회들..... 그리고는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합니다. 그리고는 아는 길을 만났을 때는 행복합니다. 매번 체력이 바닥나기 전에 큰길을 만나서 다행이었습니다.

잘 모르는 길, 혼자 가야하는 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하는지 제가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미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은 아주 긴 여행이 될 것이기에, 이런 상황이 한두번은 닥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때 겪었던 것을 나중에 제게도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여행을 계획했던 것처럼 이 여행이 그 친구의 인생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행에서 얻는 것으로 몇년은 거뜬히 살아갈 정도로 여행이 에너지를 꽉 채워주고, 아주 힘든 일을 만나도 이때를 회상하며 아무일도 아닌듯이 넘어갈 힘도 같이 얻었으면 합니다.
여행하면서 만난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또 그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나 좋았고, 자신은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고, 또 그 힘든 여행을 자신이 해냈다는 자신감을 얻어서는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돌아옵니다.

장기간의 자전거 여행을 해본 이들은 그러더라구요.
'세상에 무서운 게 없어졌어.'
라구요.
IP *.72.1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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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August 24, 2009 *.254.238.171
우와 멋지네!
Dream Pa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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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August 25, 2009 *.72.153.57
고마워,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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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5, 2009 *.96.12.130
아... 바람의 언덕... 좋다.

현실에 갇혀서 미대륙을 횡단하겠다는 그 꿈을 자꾸만 잊는다. 그런데 네가 그려둔 그림을 보니까 기운이 솟는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실감난다. 미대륙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내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고맙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겠다. 이제 가지 않고는 못견디게 되었다.

너 소설을 써도 괜찮겠다. 머리 속으로 이미지를 그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상황을 그리고 연결하면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네. 사랑 이야기 단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지? 나도 하고 싶었는데,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포기(실은 탈락!) 했어. 좋은 이야기 기대할게. 밥 사마~ 날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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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August 25, 2009 *.72.153.57
음. 네 덕에 여행했다.
나는 길을 잃었을 때 되돌아오는 법을 아직은 모른다. 자전거여행을 쓰면서 더 알아보고 생각해보았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우리는 길을 잃어도 결국은 그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며 목표한 곳으로 가게 될거니까... 지금의 길이 미래의 길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동기들의 꿈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계기로 이제는 나도 안하고는 안되는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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