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5천만의

여러분의

  • sooke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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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1일 18시 57분 등록

* 나른한 주말

: 오늘도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누워서 음악을 튼다. 잔잔한 클래식으로 할까, 아님 7080 대중가요로 할까, 탱고로 진하게, 라디오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누운 채로 오랫동안 마음 속 원하는 바를 확인해 본다. 나른함과 귀찮음, 편안함의 중첩된 경계를 오가며 기약 없이 꽤 긴 시간을 누워 있다. 출근 하는 날은 알람 듣고 6시에 일어나고, 쉬는 날은 알람 없이 6시에 일어나던 시절이 떠올라 살짝 웃음이 나온다. 엄마로서 두 아이들에게 모범이 돼야 한다는 생각과 마음에 들지 않은 나를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강의며 워크숍을 쫓아다니던 시절의 나는 주말에도 참 분주했다. 지금의 이 모습 그대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나는 늦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누워 있고 싶지 않을 때까지 뒹굴 거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제라도 나에게 늦잠을 허락할 수 있어서 반갑다.

 

* 가족의 축하가 있는 나의 생일

: 오늘은 내 생일이다. 계산동에 있는 한정식 집에서 55번째 생일 파티를 했다. 남편은 나와 함께 차를 타고 약속된 장소에 갔으며 첫째는 올 가을 결혼할 약혼자와 함께 커다란 아이스크림 케잌을 들고 왔다. 직장 다니라 결혼 준비하랴 얼굴이 조금 야윈 첫째가 구두를 벗고 방에 들어오니 안쓰럽기도 하고 살짝 화가 나기도 한다. 양가 부모님과 친척, 가까운 친구들만이 참석한 작은 결혼식을 할 예정이기에 무언가 해 주고 싶어서 도와줄 것없냐고 물으면 늘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하기 때문이다. 신경 쓸 게 없어서 편하고 좋은 반면 엄마의 역할이 이제 끝났다는 허전함과 자기 짝 만났다고 이제 부모는 안중에도 없나 싶어 섭섭하지만 핏덩어리였던 아이가 이렇게 자라, 결혼 준비를 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둘째는 약속 시간이 30분 정도 지난 시간에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선물이라며 건넨 상자 안에는 색이 고은 스카프가 들어 있었다. 생일 축하 노래와 함께 초를 끄고 밥을 먹는데, 남편이 주머니 속에서 주섬주섬 편지를 꺼냈다. 결혼 전에는 여러 번 받았지만 최근엔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조금 당황했다. ‘두 딸 잘 키우고 아내로 살아 줘서 고맙다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으나 애써 참았다. 아이들과 예비 사위를 보내고 아파트 옆 공원을 산책하며 나는 남편의 손을 살짝 잡았다. 그리고 여보, 나이 들어 저녁상 물리면 손잡고 동네 산책 하자던 약속 지켜 줘서 고마워라고 남편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이들 앞이라 애써 참았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주~욱 흘렀다.

 

* 드디어 생긴 나만의 공간

: 7년 전 첫째가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했다. 처음엔 전철을 이용해서 통학했지만 등하교 시간이 길고 체력적으로 딸리는지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빨래와 식사 문제가 여전히 불편하다고 투정 섞인 전화를 받아야 하지만 이제 그곳 생활에 꽤 적응한 듯하다. 오늘 나는 학창 시절 첫째가 이용했던 핑크빛 책상과 침대는 그대로 두고 첫째 동의하에 참고서와 각종 청소년 도서 등이 가득했던 책장을 정리했다. 안방 작은 책장을 가득 메웠던 내 책과 거실 한 구석에 쌓여 있던 남편의 책을 하루 종일 날랐다. 하얀 목장갑이 더러워지고 욱신욱식 어깨며 팔이 아프지만 텅빈 책장에 구본형 선생님의 책을 나란히 꽂힌 걸 보니, 있어야 할 곳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서 흐뭇하다. 방황하던 내 영혼을 위로하고, 힘든 날 연락해서 술 한잔 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은 모두 구본형, 3글자 때문이다. **과 여행하며 사람의 소중함을 알았고 20178월 포항 어느 펜션에서 23일간 진행된 꿈벗 프로그램을 통해 43기 우리 동기 5명을 친구로 얻었으며 그 때부터 고전 읽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읽고 정리한 50여권의 책과 앞으로 읽게 될 50여권의 책들이 드디어 한 곳에 모인 것이다. 전주 *** 미술 선생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린 지 벌써 11년째다. 동선을 고려해서 이젤을 비롯한 각종 미술 도구는 방 베란다에 놓았다. 남에게 보여주거나 전시할 만큼은 아니지만 글로 풀어 낼 수 없는 마음 속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참 좋다. 2017** 언니와 경주 여행을 갔을 때 샀던 다기 세트는 책상 위 한 곳에 놓여졌다. 전기 보트의 버튼을 누르고 물이 끊여지기 기다리는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글렌 메디이로스음악을 켠다. 지난 방학 중국 여행지에서 구입한 차를 우려 마시며 방을 한 번 둘러본다. 책과 그림 도구, CD플레이어, 첫째가 학창 시절 내내 이용했던 분홍 침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어린 시절 자기 방 있는 친구가 너무 부러웠지만 형편상 표현 한 번 하지 못했던 슬픔이 스스로 녹아내린다. 책상에 얼굴을 대고 누워 본다. 가슴이 훈훈해지고 눈이 감긴다. 방이 생겼다. 편안하고 충만하다.

 

* 한 마음으로 준비한 아버지 제사

: 퇴근 후 밤늦게까지 부치느라 애 먹었던 각종 전을 급히 챙겨 오빠 집으로 향했다. 두 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에 들어서자 올 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조카가 이모하며 동생과 함께 나와 맞이해 준다. 동생은 조카가 학교를 마치자마자 방과후도 빼고 오빠 집으로 와서 제사 준비를 도왔다고 한다. 남편과 제부, 오빠까지 모두 퇴근한 10시부터 아버지 제사를 시작했다. 남자들이 아버지 영정에 절을 하는 사이, 거실 한 모퉁이에 앉아 5년 전 아버지를 찾고 서로 왕래하며 지냈던 시간들이 떠올린다. 아버지께 외국 여행 시켜드리려던 계획은 실패 했지만 다시 만난 이후 제주도 가족 여행 다녀온 건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산 일출봉과 송악산 가는 길을 특히 좋아 하셨고 돈 아깝다며 처음엔 안 타시겠다던 말 타기를 하시면 연신 웃으셨다. 거실 TV 위 제주도 가족사진을 올려다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내일 아침엔 엄마 집에 가서 아버지 제사 잘 했다는 소식을 전해야겠다. 엄마는 듣고 싶지 않다고 인상을 찌푸리시겠지만 나는 엄마에게 아버지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 세계인은 이미 내 친구

내년 2월 명예 퇴직을 하면 3달간의 남미 여행을 갈 예정이다.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은 이미 마쳤으며 10여권의 남미 관련 도서를 읽고 각종 블로그를 검색하여 마지막으로 여행 동선을 점검, 수정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도 어느 곳, 어느 사람에 꽂히면 한 곳에 오래 도록 머물 것이 분명하다. 10년 전 다녀온 몽골 여행은 멈춤을 통한 휴식이 내가 추구하는 여행임을 알게 했다. 근육질의 말을 타고 끝도 없는 몽골 들판을 달리며 나는 자유를 느꼈다. 말의 숨소리가 거칠어질 즈음, 호수가 보이는 나무 주변 말뚝에 말을 묶고 목을 축이게 했다. 말이 물과 풀로 지친 몸뚱이를 위로하는 동안 똥이 없는 곳을 골라 앉은 나는 하늘 바다를 흐르는 구름에 마음껏 즐겼다. 지난 10년간 1년에 1회 이상 이집트, 부탄, 쿠바 등의 국가를 여행했다. 도시의 뒷골목, 크고 작은 시장들, 시설은 열악하지만 배움의 열기가 있는 학교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 여서 사람이 없고 그 땅의 주인을 가까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10년 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여행 때문에 설렜지만, 늘 영어 때문에 두려웠다. 학원 갈 시간이 여의치 않아 고민 끝에 시작한 인터넷 영어 공부를 통해 중학교 수준의 어휘를 습득하였고 회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화상 영어를 하고 있다. 매일 저녁 30분간 sally랑 온갖 주제로 수다를 떨다 보니 영어 울렁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번 남미 여행 동행자는 2년 전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만난 태국 친구 이다. 깊은 대화까지 할 수 없는 것이 늘 안타깝지만, 눅과 대화하다 말이 막히며 그녀의 눈을 응시하며 등을 한 번 쓸며 마음을 전하면 그만이다. 남미 여행 동안 눅과 나는 따로 또 같이 여행할 것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 숙소는 같이 이용하고 원하는 것이 다른 날은 각자 다른 일정을 소화할 것이다. 배가 고프더라도 기다렸다가 저녁을 함께 먹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쏟아 내겠지^^ 혼자 다니는 동안 맥주 한 병을 시켜 놓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는 시간이 많을 것 같다. 명퇴를 준비하며 시작했던 영어 공부는 세계인을 친구로 선물해 주었다.

 

* 나를 찾기 위한 인문학 공부

: **선생님과 7년 동안 공부하던 애니어그램 강의를 마쳤다. 다행히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참석하는 비폭력연습 모임이 있어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삶을 나누고자 하는 갈급이 해소 된다. 라이프 코치 일을 하는 **님과 최근 책을 출판한 **, 결혼과 함께 쌍둥이엄마가 된 **님 등의 멤버는 일상의 자잘하고도 반복되는 갈등 상황을 가감 없이 내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제도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직장인으로 느끼는 물리적인 시간 부족과 방대한 양의 책읽기, 과제 부담 등으로 엄감생신도 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누그러지지 않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처음엔 인문학 강좌를 신청해서 듣는 게 어떨까 싶었지만 이번 책읽기는 독학하기로 결심한다. 효율성을 중시하여 다른 사람을 통해 정제된 내용을 받아들이는 기존 학습 방법에 변화를 시도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문학 목록은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제도에 게시된 목록을 한 달에 1권씩 읽고 서평을 쓰고 기록하였다. 마지막 주 일요일 오전에 꿈벗 친구를 만나 책에 대한 궁금증과 소감 등을 나누었다. 장자, 노자,신곡」 「세익스피어 3대 희곡」 「파우스트등의 문학, 역사 철학 관련 책 50권을 읽었으며 그와 관련된 50개의 서평 쓰기를 완성했다. 지루하고 어렵고 지치는 날도 있었지만 고전을 읽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고 문학적 소양이 깊어지는 경험을 하였기에 앞으로도 난중일기,신화의 힘등의 나머지 50권 고전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 드디어 결실 맺은 시집 출간

: 32년 동안 학교에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250편의 시를 썼다. 이번 봄 교보문고에서 지원하는 개인 출판 공모에 당선되어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지난 주 3차 검수와 표지 선정까지 마쳤다. 크기가 작아 핸드백에도 쏘옥 들어갈 정도이며 융프라우의 만년설과 노란 들꽃이 어우러진 스위스 사진이 가운데 소박하게 들어간 디자인이다. ‘시인이 된 선생님이란 제목도 시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듯해서 마음에 든다. 시를 쓰면서 아이들 하나의 행동이 특별해 졌고 사고치고 엉뚱한 행동을 하면 할수록 시 소재 하나 얻는 재미에 폭 빠져 최근 10년을 살았다. 이 시집이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퇴직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르친 아이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가난한 가정 형편과 빨리 경제적 안정을 찾고 싶어 교사가 되었다.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가진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동경이 늘 있었다.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학교와 사랑하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시집이기에 더 가슴 벅차고 감격스럽다.

 

* 즐거운 수업

: 수업을 종료령이 울렸다. 1시간 동안 학생들과 했던 활동을 학습 목표에 맞게 요약하고 수업을 마감했다. 반장이 일어나 감사 인사를 하고 나는 교탁 위 교과서와 교구들을 챙겼다. 물건을 들고 앞문을 나오려는데 4분단 앞쪽에서 수업 시간이 재밌었지? 나는 저 선생님 수업시간이 제일 좋더라~~” 못 들은 척 복도로 나와 걸으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오늘 수업은 교과연구회 분과 선생님들과 지난 일요일 하루 종일 함께 만든 지도안과 학습지를 이용하여 진행한 수업이었다. 7년 전 첫째의 대한 진학과 둘째의 고등학교 입학으로 저녁 시간이 내기 쉬워졌다.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중에서 주관하는 교과연구모임에 가입하여 동 교과 선생님들과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 수업의 전문성을 높이기를 위해 매주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졸린 눈으로 그저 학습 내용을 받아 내기에 급급했던 아이들이 수업 내내 친구들과 의논하고 눈을 반짝이며 손을 든다. 1시간 수업을 위해 일주일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은 몸과 달리 가볍다. 아직도 부족하고 쉽지 않지만 정교한 수업 구상 하에 입이 열리고 몸이 반응하는 수업, 교사를 통해서가 아닌 친구들을 통해 학습이 일어나는 수업을 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 다문화센터 청소년 지원 봉사

: 토요일은 다문화센터 봉사를 가고 있다. 센터 봉사를 시작한 것은 202010월 즈음이다. 7년 전부터 내가 이 센터에서 하는 일은 크게 세 부분이다. 기초와 심화로 나뉜 교재를 이용한 한국어 지도, 용어 설명이나 개념 정리 등을 포함한 교과 학습 지원, 학교생활의 어려움과 고민을 들어 주고 위로와 필요한 지원을 하는 멘토 역할이다. 다문화 가정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이나 공휴일은 학생들이 심심하고 무료하게 방치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휴식과 재미를 잠시 미뤄두고 토요일은 거의 다문화 센타 당번을 자청한다. 다문화 학생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쳐 대학까지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 보람되다. 간절함이 있기에 그들은 작은 도움에도 크게 고마워하고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받아 들여 제 것으로 만든다. 내가 다문화 봉사를 시작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중국 학생을 맡게 되면서 부터다. 20154월 어느 날 중국에서 여학생이 전학 왔다. 아버지는 한국말을 조금 구사할 수 있는 조선족이고 친어머니는 이혼한 상태였다. 갑작스런 한국행으로 인한 충격과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학생을 돕는 것은 망망대해에 혼자 표류하는 것만큼 막막했다. 교육청에 통역을 도와줄 인력을 요청하고 중국어 공부에 관심 있는 친구들을 멘토로 연결했다. 시간이 가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걸 지켜보며 다문화 학생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담임으로서 학생을 지도하는 것은 정말 녹녹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다문화와 인연이 이루어졌으니 이 또한 의미 있었던 만남이다. 학창 시절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문득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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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3 07:29:05 *.79.237.252
봉봉, 오늘 아침 이곳에 와서 읽어요. 
우연에 이끌려서요.
봉봉의 마음이 알알히 맺힌 
10장의 영롱한 엽서를 앞에 둔 기분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꿈, 
축하의 꽃다발을 한 아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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