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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30일 08시 50분 등록

Again 10대 풍광

 

2005년 2월 7일 앞으로 10년 후 내 삶의 10개의 꿈을 만들었다. 과연 그 때 꾼 꿈이 정말 내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었는지 혹은 그냥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그때 이후 9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당시 내 마음속(진정성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의 꿈을 다시 점검하고 50대 접어드는 내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피울 10개의 꿈을 다시 그려보고 싶다.

내년이 10년차이긴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이 이것을 다시 고쳐주길 바라고 있으므로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고쳐나가고 싶다.

그전에 9년전에 희망했던 꿈과 지금까지 살아있는 꿈과의 관계를 간략하게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야 다시 내 꿈을 만들어 갈 추동력을 이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9년 전 나는 내 직업을 이렇게 정의했었다.  

 

<나의 직업 Slogan>

1) 1인기업가(전문분야는 올해안에 찾아내기로 함)
2) 단체급식전문가
3) 푸드비즈니스파트너(외식전문가, 소스와 시스템개발 전문가)

사실 지난 번 내꿈 프로그램에서 정한 직업의 비젼을 일주일 내내 고민하며 살았다. 그 분야의 일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 그 분야가 정말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솔직한 고민은 아직도 잘 알 수 없다. 분명히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긴 있을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2-3개 분야에서 나의 직업에 대한 전망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위에 나열한 분야이다.
어쩌면 2005년 한 해는 내 직업을 찾고 브랜드를 붙이는 일이 가장 큰 숙제가 아닌가 한다. 이것이다 하고 정하면 나도 참 좋겠다. 그런데 정하자 하고 정해노면 다음 날 마음이 또 바뀐다. 이게 아닌데...... 그런데 고민은 아주 많은 갈래를 만들지는 않는다. 최근 들어 고민하는 내용은 거의 3가지내에서 돌고 돈다. 1인 기업가, 단체급식, 외식경영. 딱 3가지다. 어쩌면 올 한해 내게 주어지는 상황이 여러 가지 변수들이 많이 있어서 그럴수도 있겠다. 8월 정도에 현재 운영하는 식당을 정리하고, 9월 이후 외식사업부를 만들어 다시 시작하던지 아니면 단체급식파트에 당분간 머물러 있던지 할 것이다. 내 스스로 운신의 폭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자금과 사업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그러난 위의 두 가지 경우 내게는 장점이 단점보다 많다. 외식사업은 기간 3년의 경험을 새롭게 새로운 조직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단체급식은 내가 제일 잘 하는 분야의 일을 다시 하는 것이라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시간여유가 많아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볼 수 있는 덤까지 가질 수 있다. 

 

1인 기업가는 좋은 아이디어이긴 했지만, 내가 꿈꾸는 것을 풀어나가기엔 너무 거리가 먼 꿈이었다. 또 그 당시엔 1인 기업가란 개념자체도 그리 명확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1인 기업가로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중에서야 알았다.

단체급식은 이미 떠나온 전 직업에서 무슨 희망을 찾겠다고 했는지... 결국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었다. 떠난 업으로의 회귀욕구는 새로이 도전한 삶이 어렵고 힘들때마다 유혹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단체급식분야로 눈길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난 10년동안 가장 잘한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푸드비즈니스파트너라는 직업은 "외식경영"이라는 고민속에서 풀어져 나왔고 결국 이것이 지난 10여년의 꼬리표가 되고 말았다. 숱한 고민과 어려움, 아쉬움속에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다행히 외식경영(자)라는 꿈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지깽이의 불길을 타고 꽤 오랫동안 내 삶의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마흔 한살. 그때 난 앞으로 살아갈 10년의 그림을 그렸지만 그것이 실제 이루어질 수 있으리란 확신을 갖진 못했다.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그 당시 난 세상에 힘들어했고 하루하루 밥벌이에 지쳐있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해 화려했던 30대 죽도록 고생해 얻었던 안팎의 명예와 부를 모두 탕진하고 말았다.  

신분과 성리학이라는 제도로 인해 더 이상의 출구를 바라보지 못했던 조선사회에서 홀연히 한줄기 빛으로 찾아온 서학 천주교처럼, 삶의 피곤에 찌든 내 마흔의 출발점에서 만난 구본형선생님의 책과 그속에서 찾고 싶었던 내 맘대로의 삶에 대한 희망이 그를 만난 이후 온전하게 믿고 싶었던 아니 믿지 않으면 더 지탱할 수 없는 지친 몸뚱아리때문에라도 10년 후의 미래를 꿈꾸었던지도 모르겠다.

그 미래는 내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지친 몸이 쉬고 싶었고 탕진한 부를 다시 돌려받고 싶은 욕심이 많음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그것을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만들었다. 어쨌든 폼나는 10개의 미래를 만들었다. 그리곤 앞으로 달려나갔다.

누구보다 절실하게! 무엇보다 간절하게!

 

구선생님을 믿고 또 자신을 믿고 살아온 지난 10여년이 내게 준 선물은 시행착오와 잘못된 판단이 가져다 준 실수나 아픔보다 훨씬 컸으며 누구보다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에 익숙해진 점이 가장 큰 성과다. 경영학과 인문학 그리고 외식업에 대한 공부는 제대로 된 MBA(경영학 전반에 관한 산책)를 마치게 하였고 세 권의 책을 쓰게 하였으며 현장과 이론을 접목하는 '외식경영작가'라는 꿈을 꾸게 만들어 주었다.

공부가 주는 즐거움을 경영현장에서 직접 접목하여 (30대 화려함을 비참하게 만든) 첫 식당에서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한 지금의 마실로 재기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흔들리던 가정은 다시 지켜졌고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선비의 삶을 희망했던 마음이 만든 서재는 또 다른 나의 분신이 되었다. 천권의 책에 둘러쌓여 고요히 책과 글속에 사는 하루하루가 무엇보다 좋다.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서 만났던 한줄기 빛이었던 선생님과의 만남 이후 그의 독실한 신자가 된 나는 무엇을 하든 항상 선생님곁에 있으려 애썼다. 좋아하는 일이든 그렇지 않든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마치 엄마에게 칭찬받는 아이가 되고 싶은 것처럼. 하루 2시간의 자기혁명. 자기다움으로 삶의 모든 것을 채워내는 하루의 변화(경영)를 강제로 받아들였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삶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주었다. 더 이상 남들이 시키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 스스로 인생을 계획하고 그대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비록 부족하지만 남은 생은 온전히 이속에서 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지난 10여년의 삶이 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시작했던 첫 10년의 미래시점에 도착한 지금 또다시 다가올 10년의 미래풍광을 그려보고 싶다.

이번엔 첫번째 스케치보다 좀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꿈을 만들어내는 것은 욕망이다.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지금'이란 늘 그곳에 가는 길 위의 어느 지점이다. 한 현실에서 또 다른 현실로 이어지는 길, 지금의 나에서 미래의 나로 가는 길."

스승께서 말씀하신 미래의 꿈을 현실로 불러내는 주술과도 같은 10년 후의 내 꿈. 이미 만들어진 미래의 현실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따라갈 것이다.

 

<10 Great scenery of 10 years>

 

1. 마실 2.0 시대를 열다.

 

세상이 무서워 도망치면서 시작된 마흔에 먹고 살아야 할 지겨운 밥벌이로서 출발했던 마실은 지난 10여년동안 나의 초라한 자화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선생님을 만나고 제대로 된 공부를 배우고 숨겨진 재능과 결합하면서 마실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 자체로 대박식당이 되었고 이는 현장중심의 정교한 레스토랑경영시스템으로 진화하였다. 공부하는 식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었고 이를 따라한 수많은 음식점들이 춥고 배고픈 음식점에서 벗어나 배움과 나눔의 씨앗을 전파하는 작지만 알찬 식당이 되었다.

마흔을 뒤로 하고 맞이할 마실의 새로운 시대는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사는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배움과 나눔을 통하여 다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하려고 한다. 스승께서 살아생전 내게 베풀어주셨던 삶의 지혜를 외식업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2013년 마실은 메뉴개발실을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외식전문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정식을 메인아이템으로 출발한 (주)마실푸드는 갈비와 냉면전문점 옥류관, 신개념 24시간 족발브랜드, 캐쥬얼레스토랑, 실속한식전문점 등으로의 자매브랜드 확장을 시도하면서 본연의 브랜드아이덴티티를 찾아나섰다. 매 순간 들이닥치는 일에 매몰되다보면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조차 모른채 지치고 말것임을 알기에 초기2년간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주)마실푸드의 비전과 미션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소액대출은행인 그라민은행처럼 되고파 시작한 그라민프로젝트는 마실브랜드의 핵심경영가치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으로 음식점을 시작했든, 누구에게는 로망처럼 살고 싶었던 레스토랑지만 창업자의 80% 이상이 실패하고 마는 외식업에서 춥고 배고픈 이들을 위해 자립과 성공의 능력을 키워주고 오랫동안 번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후불제컨설팅개념이라고 할까?  컨설팅비용도, 지급시기도 우리가 아닌 의뢰인이 결정하는 시스템. 그러나 조건이 있다. 매 월 하루의 날을 정해 그날 매출액의 50%를 사회에 기부하는 해피데이를 운영해야 하고, 자립하고 나면 주변의 다른 어려운 음식점을 도울 수 있어야 하며, 공부하는 외식커뮤니티에 참여해야 한다. 밥을 파는 본연의 자기다움 그리고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에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마실푸드의 그라민프로젝트가 가진 의미이다.

 

2016년 (주)마실푸드는 전수창업점 80호점을 달성했다. 2010년 처음 시작했을 때 시행착오로 인하여 30% 정도의 실패를 바탕으로 <폐점율 0>에 도전하고 있다. 회사도 기획팀, 메뉴개발팀, 오픈운영팀, 디자인팀으로 확대되었고 전체 직원만 10여명이나 된다. 법인 전환과 함께 만든 홈페이지와 블로그, 페이스북도 초기 사이트운영의 미숙함을 벗어나 외식업계내에서는 최고의 퀄리티와 방문자수를 자랑하고 있다.

2019년 12월 100명의 공부하는 외식경영자를 목표로 출발한 마실커뮤니티가 1년의 성과를 마무리하는 총회를 개최하였다. 하루벌어 하루먹고살아야 하는 밥장사에서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매일 조금씩 공부하고 자신의 업장을 개선하고, 안으로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밖으로는 나눔과 공헌에 열정적인 외식경영자들이 100명이나 되는 작지만 강한 커뮤니티가 되었다. 우리들은 한달에 한권씩의 책을 읽고 세미나를 열었으며 워크샵에서는 열뛴 토론도 벌였다. <이론과 현장이 만나는 공간> 인문학과 경영학이 만나 치열하게 섞여 그토록 우리가 꿈꾸던 "외식학"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2022년 드디어우리는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였다. 먼저 전수창업점 200호점이 오픈하였다. "폐점율 0"를 유지하면서 이룩한 성과이기에 기쁨 또한 두 배 아니 그 이상이었다. 함께 고생한 직원들(아니 파트너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겠다)과 협력업체 그리고 냉철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마실커뮤니티 모두의 승리였다. 또한 몇 년전부터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던 신뢰할만한 외국브랜드의 한국내 합작기업으로 선정되는 쾌거도 이뤄냈다. 그리고 한식세계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2년 전에 미국, 작년엔 중국 그리고 올 해 유럽(바르셀로나)에 지사를 설치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마실푸드의 "그라민소프트웨어"를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주)마실푸드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외식전문기업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을 찾아 항해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제부터 나는 언제나 돌아올 고향과도 같은 품(근거지)를 만들어 놓을 것이다. 시행착오도, 경쟁에서의 실패도, 홀로 남겨져 지치고 힘들때 아무 때나 언제든지 찾아와 쉬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간이역>같은 품. 내가 할 마지막 역할이다.       

 

2. 공부하는 삶

 

주로 인문과 철학, 사색과 명상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스승이 걸었던 길을 걷고 싶었다. 나는 스승께서 말씀하신 다음 구절을 기억한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이 내겐 배움이고 공부며 학습이다. 밥을 먹고 살아야 할 목구멍에서부터 시작된 자로됨의 방식으로 그라민적 삶을 창조하는 실천적 혁명의 길로 바뀌게 되었다. 삶과 앎 그리고 이것이 배우고 자란 곳에서 다시 되돌려주는 방식으로의 공부하는 일상을 즐기고 싶다. 아마도 스승께서 내게 선물해 준 자로의 길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지난 10여년 동안 매 년 한권씩의 책을 출간하였다. 외식비전서 '대담'을 비롯하여 '마실로 성공하기' '외식경영학' '외식경영시스템' '외식업과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 과 같은 주제의 책들이 세상에 나와 외식학의 밑바탕을 일구는 거름이 되었다.

이를 위해 매일 조금씩 읽고 쓰는 것이 일상화된 노력을 습관화하는 성실성으로부터 시작된 나만의 창조적인 작업이 그 밑바탕이 되었다. 외식업도 그 자체가 비즈니스다 보니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는 일이 빠질 수 없다. 그러나 그들과의 관계속에서 얻는 경험과 연륜의 넓이가 스승으로부터 배운 인문과 경영의 깊이를 더해 외식학으로 발전해가는 나의 공부여정은 지칠 줄 몰랐다.

마흔의 시대에서는배운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한 번 일을 잡으면 10년은 참고 버티라는 가르침을 따라 배운 불혹의 계절이었다면, 지천명의 시대는 배운 것을 나누고 사람을 키우고 열매를 함께 향휴하는 축복의 시대가 되었다. 공부가 곧 사람이리니... 내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은 스스로에게는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서 돈을 벌고 외식업계의 일가를 이루는 리더됨의 시간이고 함께 했던 이들에게는 개개인의 욕망과 꿈을 이뤄가는 커뮤니티 즉, 10년 수련의 과정을 이겨내 외식전문가로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다.

 

3. 착해도 망하지 않아. 그라민프로젝트

 

마실을 시작하면서 3번의 화재, 즉 불이 났었다. 공교롭게도 3년 동안 해마다 그것도 11월에 화재사고가 났던 것이다. 보험을 들어두지 않았으면 그때쯤 내 인생도 함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마실 터가 도깨비터라서, 이곳의 기운이 음기가 강해 또는 나와 사주가 맞지 않아 마실을 그만두고 떠나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어떤 때는 스님이 또 어떤 때는 점쟁이가 그랬다. 난 떠날 수 없었다. 이곳말고는 내가 살아 숨쉴 곳도 없었고 이곳이 내 밥벌이의 마지막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마실에서 혼자 108배를 올렸다. 창문을 활짝 열고 돗자리를 깔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딱히 누구에게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무엇을 원해서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단지 답답한 마음에.. 두번 다시 실패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에 그 대상이 산신할매든 산신할배든 간에 붙잡고 울고 싶었고 제발 나 망하지 않게 도와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렇게 한 시간인가 시간이 흐르고 나중엔 눈물이 나왔다. 혼자 무슨 주책인가 싶었다. 그때였을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다짐했다.

"제가 돈 벌면 절대로 혼자 쓰지 않겠습니다. 같이 고생한 직원들, 저희 식당을 찾아주신 손님들, 이 자리가 있게 해준 지역사회에 함께 나누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제발 절 좀 살려주세요." 아마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번 달로 매 달 하루 매출액의 50%를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Happy Day 프로그램이 48회차를 맞이했다. 2008년부터 시작했으니 햇수로 벌써 6년차다. 적지 않은 금액이 건강한 지역과 행복한 삶을 위해 쓰여졌다. 8곳의 마실 가맹점들이 매 달 해피데이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있다. 마실프랜차이즈 가맹조건이 해피데이의 의무화일 정도로 이 프로그램은 자체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

그렇게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왕년의 유명한 배우 폴 뉴먼의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비즈니스라고는 해본 적이 없던 그는 친구 하나와 집에서 취미삼아 만들어낸 샐러드 드레상을 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여기는 과정을 거쳐 이 사업은 꽤 훌륭한 성공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금 전액은 그해 12월에 다른 비영리단체에 전부 기부하고 이듬해 다시 은행 대출을 받아 사업을 계속한다는 장난스러운 생각의 발상이 대단히 유익한 공익비즈니스가 되었고 나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라민은행의 사례와 맞물려 나도 이런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 달랑 해피데이 하나로 가진 자의 허울좋은 배불뚝이 사장으로 삶을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 유쾌한 비즈니스와 인생을 즐기는 삶이 하나로 엮어지는 외식기업을 운영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마실그라민프로젝트였다. 좋은 파트너를 만났다. 그는 내가 가지지 못한 빛나는 재능을 가졌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내 그다움으로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주고, 말들만 무성한 지적유희의 공간에서조차도 명료하게 정리해 하나의 문장으로 풀어내는 유능한 친구였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한낱 밥장사로 살다 술에 찌들여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지 못하고 마감할 가엾은 삶이 새로운 희망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라민프로젝트는 뉴먼스오운같은 비즈니스아이템과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아이디어가 결합한 "후불제컨설팅비즈니스"라고 보면 되겠다.

열에 여덟은 망한다는 음식점사업, 창업후 5년 생존율이 10%에 불과한 외식시장에 단순히 생존을 넘어선 공익적관점을 가진 음식점을 만들어내는 비즈니스다. 망하기 직전 또는 춥고 배고픈 외식인들에게 그라민소프트웨어를 도입하여 번성하는 식당으로 전환하여 그들의 자립능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 그렇게 성공한 그들이 다시 어렵고 힘든 식당들을 돕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드는 자발적 선순환적 네트웍. 배우고 성공한만큼 함께 하는 직원들과 고객 그리고 지역에 다시 나눔을 실천하는 외식업소.

바로 이런 것들이 그라민프로젝트의 핵심가치요 진정성이다. 앞서 말한 마실2.0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나눔을 판다>, <자기다움으로 세상에 공헌한다>, <그라민네트웍을 구축한다>

 

4. 그렇게 살아온 지천명의 10년

 

50대 끝자락에쯤 앉아있다.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스승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지난 10년 다시 살아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시절 나와 함께 한 스승의 말씀이 있다. 그 말과 함께 언젠가 나도 스승의 곁으로 가게 되겠지.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늘 가난과 부유함이 같이 있곤 했다. 가난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그저 누가 부유하고 누가 가난한가의 문제에서 내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가 개인적 관심사였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내 시간을 돈벌이에 더 많이 쏟아붓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돈이 많지는 않았지마 가난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주 평범한 진리, 한 달에 3천만 원을 가지고도 못 사는 사람이 있고 300원을 가지고도 잘 사는 사람이 있다.

나는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일을 가지고, 내 일의 특성으로, 다른 사람이 스스로 삶을 불지를 수 있도록 잠시 '쏘시개 불꽃' 역할을 할 수 있다. 1인 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기업은 반드시 먼저 본업으로 고객을 도와야 한다. 돈만 추구하는 기업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번 돈의 일부를 사회기금으로 내놓았다고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 큰 범죄를 위하 사소한 속죄의 형식일 뿐이다. 돈이 면죄부 역할을 하는 것을 타락이라 부른다. 본업으로 사회를 도와야 그 일 자체로 의미와 보람이 된다."

IP *.228.12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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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22:02:00 *.209.210.64

멋져요
말한대로 글써고 글써놓은 대로 행동하는 노진사장님의 경전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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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1 01:53:50 *.227.54.138

꿈도 이렇게 업그레이드 해야함을 알았어요

먼지가 앉은 나의 꿈도 다시 꺼내서 보플 일으켜야 할까 봅니다

자로님께 한수 크게 배웁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2.25 16:17:33 *.220.229.78

자로선생

18기 꿈벗 이수입니다.

선생의 어게인 10대풍광 저는 떨면서 읽었습니다. 저의 10대풍광은

반 조금 넘어 흔적이 희미해져가는 것을 부끄럽고 안타갑게 만드네요.

자로 선생의 눈물겨운 몸부림 사부님도 어딘가에서 즐거워 하실 것입니다.

저의 10대풍광이 어디에 가 있는지 찾아 보아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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