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5천만의

여러분의

  • 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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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6일 00시 11분 등록

[꿈의 풍광]

 

이 일이 전망이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많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것인가,

하는 얕은 생각이 아닌,

내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행복한 일인가에 답할 수 있는 것을

나는 꿈이라고 부르고 싶다.

- 이원익의 《비상》중에서-

 

1)  책을 매년 출간하고 작가로 전환하다

 2007년까지 2021년까지 평균 1년에 한 권씩 총 15권의 책을 출간했다.

 

l  2007 2: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

l  2008: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연구원 공저), 내 인생의 첫 책 쓰기(오병곤, 홍승완 공저)

l  2010: 회사가 나를 미치게 할 때(연구원 공저)

l  2011: 프로그래머 그 다음 이야기(공저)

 

 

l  2012: 사표대신 출사표를 던져라, 기업이 진짜 원하는 변화의 기술(Change to great)

l  2013: The Secret of Project

l  2014: 엔지니어 마인드

l  2015: 터닝포인트 경영

l  2016: 직장인 독립만세

l  2017: 마흔, 그 찬란한 유혹(Me Story)

l  2018: 그래 걷자, 발길 닿는 대로(여행 에세이)

l  2019: 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

l  2020: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의 도약

l  2021: 존재의 기쁨

 

 

나의 다 번째 책 사표대신 출사표를 던져라 2012년 봄에 출간되었다. 불안한 미래를 위해 오늘 생존에 내몰린 직장인에게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고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희망의 모멘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경제적 수입이 꽤 늘어 로또 살 생각을 아예 버렸다. 부모님 빚을 갚아주었고, 해외여행을 보내주었다. 내가 그 동안 쓴 책 중에서 가장 운이 좋은 책이었다.

 

여섯 번째 책 기업이 진짜 원하는 변화의 기술은 나만의 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주었고 나를 이 책을 계기로 회사를 나와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0권의 책 중에 한 권은 마흔, 그 찬란한 유혹이라는 자서전이었는데, 사십 대에 경험한 나의 발자취와 블로그를 통해 기록했던 나의 생각, 그리고 내가 만났던 책과 사람들에 관한 자서전적 이야기로서, 10년을 되돌아 볼 수 있어서 무척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환갑을 맞이하는 사부를 위해 구본형 평전을 연구원들과 함께 만든 기억도 아주 오래 남아있다. 나와 승완이, 그리고 몇 명의 연구원이 총괄을 했다. Coreanity Good to great에 대한 인터뷰, 그의 저서, 그의 삶, 그와의 일화, 연구원과 꿈벗 100명의 내가 본 인간 구본형 등을 실었다. 중간 중간에 재동이가 공들여 정리한 사진을 함께 넣었다. 

 

 

2)  창업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2009년부터 나는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회사를 설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누가 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고 이제는 내 인생 내가 맘대로 기획하고 살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기업을 하나 세우고 싶었다. 먼저 아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로 하고 구체적인 인큐베이팅 작업을 진행했다. 이와 별도로 나는 비즈니스 인맥 형성에 주력했다. 2012년에는 비즈니스 모델을 실제 현장에 적용해보는 파일럿을 진행했다. 몇 차례의 파일럿이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변화 프로그램을 포트폴리오 형태로 컨설팅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까지 제시하는 차별화된 서비스가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나만의 블루오션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 유일함에 감격했다. 유일함은 그 자체로 경쟁력일 뿐만 아이라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절감했다.

 

2012년 하반기 마침내 나만의 회사를 설립하였다. 회사 사무실은 가정 주택을 개조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개업식에 구본형 사부님께서 직접 오셔서 축사를 해주셨고 연구원, 꿈벗, 직장동료, 가족, 친구들이 많이 참석해주었고 난도 보내주었다. 돼지머리 올려 놓고 고사를 지내면서 나는 비영리집단 같은 기업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가족 같은 공동체로 회사를 운영하고 싶었다. 그것은 가장 비자본주의적인 것이 자본주의에 오히려 잘 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에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최고의 근무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회사는 창업시절부터 지금까지 철저하게 팀워크와 창의성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인 GE의 잭 웰치 전 회장은 “GE는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고, 벽이 생기는 대기업이 아니라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재미있게 일하는 구멍가게 방식의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매출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는 믿음을 갖고 고객과 직원, 즉 사람에 집중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설립 초기에는 홍보 부족과 중소기업의 한계, 비즈니스 수익모델의 혼선 등으로 인해 어려움도 겪었지만 2013년 몇 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면서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하였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수행하였다. 그것은 고객을 매료시킬 뿐 아니라 우리를 흥분하게 하고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결과도 훌륭했다. 우리는 별도의 영업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영업전략은 고객이 직접 찾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설립 3년 후에는 회사의 매출이 50억으로 성장했고, 2020년에는 100억의 매출을 달성했다. 2021년에는 포춘지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일하기 좋은 회사 500순위 안에 포함되었다.

 

 

3)  남도에서 안나푸르나까지 길을 나서다

매년 추억으로 오랜 간직할만한 여행을 했다. 2006년 제주도 여행을 시작으로 결혼 10주년이 되는 2007년에는 두 가지 의미 있는 여행을 했다. 2007 3, 싱그러운 봄날에 아내와 결혼 10주년을 기념하여 재은이, 재아와 함께 일본에 다녀왔다. 마침 일본에 있는 꿈벗 용균이도 볼 겸해서 꿈벗인 영훈이, 혁재, 아름이와 같이 갔다. 우리 가족은 먼저 출발하여 디즈니랜드도 구경하고 하코네유모토에 가서 멋진 풍광을 감상하고 온천욕도 했다. 3일차에는 꿈벗과 합세하여 시내구경을 하고 쇼핑도 했다. 마지막 날에는 용균이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는 2012년에 삿뽀로에서 다시 만났다. 

 

20078월에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원과 일주일간 다녀온 몽골 여행은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다. 사실 가기 전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다녀온 후에는 한동안의 후유증을 앓을 정도로 아주 오래 가슴에 남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감행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은 원시적인 느낌 그 자체였다. 하늘은 유채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푸르고 푸르렀다.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은 자유의 숨소리였다. 우리는 말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초원을 내달렸다. 산 언덕 아래에 모여서 유목민들과 노래 자랑을 하기도 했다. 초원 한 복판에 천막을 치고 양푼 비빔밥을 게걸스럽게 먹기도 했다. 구름이 걸쳐 있는 듯한 언덕까지 올라가 사방이 트인 전경을 보며 감탄하고 감탄했다. 밤에는 은하수와 별똥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고 새벽녘까지 모닥불을 피워 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수염은 덥수룩해지고 피부는 시커멓게 변하여 어느새 몽골리안이 되었다.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몽골이 너무 좋아졌다

 

2011년 가을에는 가족들과 보성의 녹차밭, 해남의 땅끝마을과 보길도, 여수, 순천, 완도, 남원 등을 두루 둘러보는 남도 여행을 했다. 통일전망대가 있는 고성에서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양양, 삼척, 속초, 강릉, 울진, 영덕, 포항까지 남하하는 일주일간의 동해안의 여행도 기억에 선명하다. 포항에서 지인들과 함께 먹은 과메기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자전거 여행 수필집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문경새재를 자전거를 타고 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친한 형과 함께 몇 굽이인지 가물가물한 새재를 드디어 넘었다. 두릅나물에 초고추장 찍어 막걸리 몇 사발을 비우고 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2009년 동네 근처 수락산에서 시작된 나의 산행은 백두대간과 금강산을 거쳐 마침내 2012년 멀리 네팔로 날아가 안나푸르나 트레킹 도전으로 이어졌다. 출발하기에 앞서 두려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함께 하기로 한 동호회원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안나푸르나의 장관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태고의 신비를 고이 간직한 어머니 같은 모습이었다. 산 앞에서 나는 바로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회사를 독립한 후 2014년도부터는 매년 2번의 여행을 다녔다. 한 번은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들과 함께 하계 연수 프로그램을 다녔고 한 번은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녔다.

 

가족과 함께 한 보름 동안의 몇 번의 유럽일주는 또 다른 자극이 되었다. 터키로 이동하여 시작된 여행은 지중해를 넘어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을 거쳐 영국에 이르렀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유럽의 문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유럽여행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각각 일주일동안 다녀온 것도 기억에 새롭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마, 베니스, 피렌체 등을 돌다 보니 시간이 짧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스위스 체르마트에서 산악열차와 전기자동차를 타고 산악 트레킹을 했던 추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자신의 눈높이가 넓어지고 가족의 정이 돈독해진 것이 큰 기쁨이었다.

 

 

4)  강연가로서 명성을 날리다

2013년 회사를 창업하면서 본격적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컨설팅을 병행하면서 강연을 했기 때문에 첫 해는 많은 강연을 하지 못했지만 이듬해부터 사표대신 출사표를 던져라 책 출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한 달에 평균 5번 정도 강연을 다녔다. 나의 강연은 청중들에게 깊은 영감과 영성을 불러 일으키는 몇 장의 슬라이드와 청중들의 현실을 촌철살인으로 표현한 유머 몇 개, 그리고 나의 진솔한 이야기를 액티브하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강연장에서 진솔한 눈빛을 마주 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진심으로 통하는 기쁨을 자주 느꼈다. 나는 강연 후에도 그들의 고민과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또 다른 강연의 기회를 주었다.

 

2015년 마침내 내 꿈 중의 하나였던 페차쿠차 나이트 프레젠테이션과 TED 강연을 연속으로 하게 되었다. TED 강연은 준비만 하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지만 내 인생 오십년을 정리한 의미도 있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첫 멘트를 했던 그 순간의 떨림과 흥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강연이 끝나자 딸들이 문자를 보냈다. 아빠, ! 너무 멋있었고 감동이었어. 싸랑해~

 

2016년에는 사부님, 연구원들과 함께 한 달에 두 번, 1 2일 일정으로 변화경영을 주제로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다. 각자 자신의 색깔을 자기답게 표현한 레인보우 파티 같은 강연이었다. 제일 먼저 강릉에 갔다. 강릉법원의 강연을 마치고 우리는 우아한 생활상담사 희영이의 집에 갔다. 그녀는 집에서도 머플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박하고 건강한 밥상을 차렸다. 술상은 내오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나마 약간 있던 도도함은 사라졌고 늘 웃음이 가득했다. 집에서 나오려는데 그녀는 최근 출간한 자신의 책을 한지에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선물로 주었다. 이런 깍쟁이 같으니라고, 책이 나왔는데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다니 다음 달에는 경주에 갔다. 강연을 마치고 우리는 춤추는 학예사 혜진을 만났다. 그녀는 나를 닮은 착한 남편과 함께 마중을 나왔다. 키가 더 커진 느낌이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그녀는 우리를 진평왕릉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설명대신 춤을 추었다. 우리는 안동소주를 마시며 밤새 왕릉 주위에서 춤을 추었다. 다음 날 남해로 이동했다. 남해 미조도에서 조그만 팬션을 하고 있는 지은이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차를 타고 남해시장까지 마중을 나왔다. 우리는 털게 몇 마리를 샀다. 그녀는 이년 전에 세무사를 합격한 후 부산에 안착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이 곳 미조도에 팬션을 하나 장만했다. 털게를 쪄서 막걸리를 한잔 했다. 그녀가 별미라고 바다 향기담은 멍게 비빔밥을 내왔다. 변하지 않는 건 그녀는 여전히 말이 많다는 것이다. 다음 달에는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을 마칠 무렵 근배가 9인승 봉고를 몰고 왔다. 이미 수원 인근에서는 명물로 소문난 스포츠 촌놈 횟집으로 데려갔다. 그녀의 이쁜 아내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전용 룸으로 안내한다. 우리는 싱싱한 도다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닭백숙을 함께 먹었다. 술 기운이 한층 오르자 근배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술 마시면 요즘도 가끔 버스타고 당진으로 단식하러 간다고 하네요. 6개월 동안의 전국 강연에는 훈이가 함께 했다. 그는 물 만난듯한 사람처럼 어디를 가던지 팬이 제일 많았다. 몇 년 전 회사를 나왔을 때의 불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첫 책이 그를 구원해주었다. 이어 나온 두 권의 책도 그가 강연을 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주었다. 그는 남양주 집근처에 조그만 작업실을 만들었다. 요즘 나는 그 근처에 집을 새로 지으려고 계획 중이라 그를 자주 만나고 있다. 가끔 그의 작업실에서 밤새 이야기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는 부르는 재미는 너무 좋다.

 

 

5)  책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다 출판사업

언젠가는 책을 쓰는 것을 넘어 책을 만들고 싶었다. 2016년에는 마침내 회사 업종에 출판을 추가하였다. 출판사 첫 책의 작품은 구본형 사부님의 23번째 저서였다. 이 책은 운이 좋게 몇 십만부가 팔려 나가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사부님은 인세 전액을 받지 않고 출판사 리모델링에 투자하셨다. 나는 그 후에도 한 달에 한 권 정도씩 책을 출간했다. 나는 단순하게 책을 만드는 것을 뛰어 넘어 출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인생이 바뀌었던가?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하게 도약할 수 있는 방법과 경험사례 등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책들을 연달아 출간하면서 그들의 도약을 도왔다. 또한 저술여행, 북 콘서트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문화 컨텐츠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대형서점의 독점으로 인해 왜곡된 출판시장을 바로 잡고자 직거래 방식을 도입 추진하였다. 저자들에게 더 많은 몫을 줄 수 있게 되면서 각 분야에 있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우리 출판사와 계약하고 싶어했다. 나는 책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평범한 저자들을 양성하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좋은 책을 만들어 내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 중에 몇 권의 책은 21세기에 기억에 남을만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운명의 떨림이 느껴졌다.

 

 

6)  내 인생의 음악 하나 카페를 열다

2020 마침내 작은 카페를 열었다. 오래 전에 영화 원스즐거운 인생을 보고 크게 자극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삼청동, 가회동, 대학로, 홍대 등의 라이브 카페를 찾아 다니며 분위기를 알게 되었고 구체적인 정보도 얻었다. 카페 이름은 ‘내 인생의 음악 하나’이다. 카페는 내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 건물 1층에 있다. 인테리어는 강릉 하슬라 아트월드처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독특하게 변형하는 실용 컨셉이었다.

 

카페는 오프라인의 간이역 주막 역할을 했다. 내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일부 투자를 했다. 아내와 재동이가 번갈아 음식을 만들었다. 재동이는 노진형에게 전수 받은 특별한 안주 2개를 개발하여 선보였다.

 

카페에서 우리는 책을 출간하는 작가를 초청하여 이들의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도와주었다. 저자 강연회 이외에 우리는 작은 음악회, 전시회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복합문화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나는 가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최우성 등과 함께 변화경영연구소 밴드를 조직했는데 곳에서 정기 공연을 하기도 했다. 정기 공연에서 박수자 누님의 자작시를 내가 작곡해서 불렀는데 호응을 불러 일으켜서 곳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게 되는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7)  휴먼 네트워크를 증식하다

인생 최대의 성공은 좋은 사람을 얻는 것이다. 무릇 세상 일은 혼자 잘나서 되는 법은 거의 없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매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기본적으로 인간관계에서 다다익선보다는 내실 있는 관계가 더 좋다고 본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자기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인생의 동지이다.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나는 전략적으로, 장기적으로, 실력을 기반으로라는 3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그 동안 만났던 사람들은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원들, 내 꿈의 첫페이지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꿈 벗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회사의 팀원들, 개인적으로 그 동안 회사 안에서 만들었던 모임의 회원들, IT 관련 업종에서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내 프로그램 이수자들, 그리고 나의 제자들은 나와의 휴먼 네트워크에 연결되었다. 이들과는 아직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고 서로 배우고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꿈벗들과는 정기적으로 1 2일의 코스로 미래여행을 떠났다. 주로 경기도, 강원도의 풍광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면서 우리들의 눈부신 미래에 대해서 걸쭉하게 이야기했다 

 

8)  우리 쉴 곳을 마련하다

2019년 서울 인근의 단독주택에 입주하였다. 환경친화적으로 개보수하느라 공사만 1년이 걸렸다. 자연이 늘 곁에 있고,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공동의 관심사를 갖고 있는 이웃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다. 둘째가 아직 대학 입학 전이어서 등하교 문제도 고려한 결정이었다. 서울 근교에 이만한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친구 용원이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

 

나를 더욱 기쁘게 한 것은 2층에 넓은 서재와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아담한 작은 바(Bar)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밤하늘의 영롱한 별빛을 바라보며 7080 노래를 들으며 아내와 함께 와인 한잔 마시는 것은 생활의 큰 즐거움이었다. 3층에는 누워서 바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천정이 개방된 작은 다락방이 있는데 아이들은 때때로 이 곳에서 잠을 자는 걸 좋아한다. 우리는 이웃들과 한 달에 한번 집을 순회하면서 저녁 모임을 갖고 있다. 한 달을 되돌아보고 다음 달을 계획하는 모임이다. 아내는 매달 담근 술을 내오고 새로운 음식을 선보였다.

 

 

9)  후학을 양성하다

2017년부터 연구원을 매년 10명씩 모집하여 약 30명의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것은 구본형 소장님의 연구원 양성과정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연구원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연구원 활동은 개인 학습과 실무 프로젝트의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목표로 하는 나의 방침에 근거한 것이었다. 일년간의 연구원 활동을 수료한 연구원들은 각자 설정한 개인과제를 완수하여 책을 발간하거나 과제물로 제출하였다. 연구원들은 각 부문에서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나갔다. 이들은 이 바닥에서 암묵적으로 오병곤 사단으로 불려지고 있다.

 

 

10) 사랑의 가족을 일구다

나의 지난 10년의 꿈에는 가족들의 꿈이 녹아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족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일들이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서 외식을 하다가 문득 이 음식을 내가 해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2015년부터는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신 있는 요리는 내가 직접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내가 잘하는 요리는 순두부 찌개다. 요리는 먹는 맛도 좋지만 정성을 담아 만들어 내는 맛도 좋다.

 

가족들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꼈다. 재은이와 재아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더욱 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자라주었다. 봉사는 오히려 베푸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아원, 보육원, 양로원을 방문하면서 우리 가족은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좀 더 특별한 것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밴드였다. 우리는 4인조 밴드를 구성했다. 밴드 이름은 일석삼조로 지었다. 글자 그대로 한 명의 돌과 세 명의 새라는 뜻이다. 생뚱맞다. 재은이가 키보드와 바이올린을 맡고, 재아가 키보드하고 댄서, 나는 기타, 아내는 탬버린을 맡았다. 보컬은 아내를 제외한 3명이 맡았다. 우리 밴드는 큰 호응을 받았다. 다들 무척 즐거워했다. 처음에는 어설프고 계면쩍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실력도 향상되었다. 우리 가족은 준비과정부터 즐겼다.  몸은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정말 보람이 느껴졌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교과과목을 가르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2011년부터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섰다. 아름다운 가게와 성당 봉사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동화를 썼다. 이윽고 2013년에 첫 동화 하늘이의 아름다운 가게 여행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아내는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하여 매년 한 권의 동화책을 써냈다.

 

 또 아내는 건강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단식을 통해 체질개선에 성공하였다. 처녀시절의 몸매를 회복하여 오히려 내가 기분이 더 좋았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아내는 요리를 잘한다. 금방 뚝딱 음식을 만들어낸다. 진정한 요리사는 재료가 시원찮을 때 진가가 나온다고 한다. 아내가 그런 편이다. 2017년 현재, 아내는 조그만 음식점을 개업하는 걸 준비하고 있다.

 

2016년 대학입학시험에서 재은이가 그토록 바라던 대학에 수석 합격하였다. 인터뷰 소감을 평소 관심이 있었던 아빠의 덕택이라고 말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재아는 평소의 끼를 잘 발휘할 대안학교에 입학하였다. 선물 값 타격이 심했다.

IP *.34.15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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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나무
2011.07.26 11:33:54 *.150.92.36
오라버니의 꿈속에 34기 꿈벗들까지 등장시키다니
그 내공에 놀랐습니다.(깜~짝~)
그리고 감동먹었습니다.
책임감도 생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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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1.07.26 12:24:13 *.42.252.67
옵빠! 삼수를 했으니 이제 꿈을 세배로 빨리 이루세욥!
ㅋㅎㅎㅎ
이번 34기에  대장으로 잘 이끌어가며 너의 꿈을 찾는 모습이
다른 긴장한 꿈벅 새내기들에게 편안함을 주더라.
역쉬~~
어서 너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누나가 빌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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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7.26 12:46:17 *.163.164.177
아따 누님...34기 회장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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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7.26 12:48:04 *.163.164.177
형님 풍광과 나의 풍광을 비교해 보니.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것 같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좀더 계획적으로 생각해서
꿈이 옆길로 새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담에 같이 한번 더 들어가시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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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
2011.07.26 13:15:09 *.178.101.168
오라버니 같은 분 꼭 만날께요.. ^^
생각하시는 모든 일들 멀리서나마 늘 응원할께요. 모두 이루어질겁니다. 그렇게 믿고 있어요.
힘들었던 어린시절이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를 버티게 할수있었던 힘이 아니였을까 생각해 보아요..
더 힘내시구요.. 다시 뵐때까지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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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7 12:42:47 *.98.16.15
와우 선배. 꿈벗에 또 다녀오시다니 그 자체가 내공인듯^^
멋있어요. 선배 꿈말이에요..^^
꿈벗 34기뿐 아니라 변경연을 대표하기도 하는 선배의 꿈들이
하나씩, 둘씩 아름답게 이뤄져나갈 것을 믿고 저도 응원해요.
선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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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2011.10.06 10:59:04 *.217.81.218
병곤형은 ,,기수도 여러개고 연구원도 하고,,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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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7 16:35:14 *.94.155.86

업데이트 된 풍광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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