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5천만의

여러분의

  • 구본형
  • 조회 수 8845
  • 댓글 수 4
  • 추천 수 1
2002년 12월 31일 18시 18분 등록
5천만개의 역사, 5천만개의 꿈

지난 6월은 아름다웠다. 한 나라의 볼거리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이 바로 그 나라의 사람들이다. '그때' 우리는 사람이 참 매혹적인 나라였다. 우리는 그때까지 약점이라고 알려진 것들 속에서 강점을 발견했다. 우리들은 냄비가 아니라 열정이었다. 우리를 모래알 민족이라고 부른 것은 참 억울한 모함과 무고였다. 오해를 받아온 젊은이들의 이기적 개인주의는 얼마나 멋진 분별있는 자율적 공동체주의로 변모하였는가 ?

그때 내 머리 속에 아주 작은 불씨가 켜지는 듯했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사람들의 역사와 꿈을 담아보고 싶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미시적 현세사를 구성해 보고 싶었다. 어떻게 할까 ?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조금 더 내 생각이 자유로운 비행을 하도록 놓아두자. 그래, 우선 이렇게 하자.

나는 대-한민국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려고 한다.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남은 내 인생도 길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언젠가 받게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납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받게된 까닭은 우리가 아주 우연히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인생 중에는 각자에게 소중한 서로 다른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5천 만 명이 체험한 아름다운 순간들을 모아 서로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이 편지를 받으면 아래와 같이 두 가지를 적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즉시 보내주셔도 좋고, 세월이 흐른 후에 보내셔도 좋고, 여러 번 보내셔도 좋고, 물론 한 번도 보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린 마음이 통해 서로 만나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첫째, 당신 생애 중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운 장면 하나를 적어 주세요. 가장 아름다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있어 당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믿게 하는 그런 환한 이야기 하나 들려주세요.

둘째, 앞으로 당신에게 찾아 올 아름다운 장면을 하나만 미리 알려 주세요. 아마 당신의 꿈들 중 하나겠지요. 그래요, 아주 아름다운 꿈 하나 적어 주세요. ''

나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아름다운 개인사 한 장면씩을 사진첩처럼 모아두려고 한다. 그리고 또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 한 장면씩을 역시 모아 두려고 한다. 이 장면들이 모두 모이면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미시적 현세사이고 미시적 비전이 아닐까 ?
우리가 서로와 서로에게 혁명처럼 다가섰던 아름다운 6월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했고 거리는 훨씬 더 기분 좋은 곳이었듯이, 우리가 서로의 아름다운 과거와 꿈 하나씩을 교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늘 6월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 꼬레토피아 ( Corea -Utopia의 합성어) 는 그렇게 찾아 올 수 있지 않을까 ?

세계인들은 사람이 아름다운 한국을 찾아 모여들 것이다. 오기 전에 여행 안내서와 함께 '한국인에 대한 5천만개의 아름다운 과거와 5천 만개의 꿈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세계인들은 월드컵 즐기듯 대-한민국 사람들의 역사와 꿈을 즐기게 될 것이다.

편지를 받으면 누군가 회신을 해올 것이다. 회신이 오는 대로 홈페이지에 올려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일 년에 한번 혹은 이 년에 한번 그 동안 모인 것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보자. 내가 지금 시작하면 이 작업은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것 또한 역사처럼 끝없는 흐름일 것이다. 오늘은 내가 시작하고, 내일은 나의 생각에 동조하는 젊은이가 계속할 것이다.

자, 그럼 나부터 시작해 볼까 ? 나는 '내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어 보았다. '가장'이라는 단어가 생각의 흐름을 막았다. 그래서 '가장'이라는 단어를 빼 내었다. 그러자 여러 순간들이 서서히 그러나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말하자면 '내 인생의 역사 101 장면'이 줄줄이 기억난 셈이다. 추억 속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들어있다. 두개만 소개해 볼까 ?

# 내가 좋아하는 장면 1

'그녀는 그날 오후 햇빛이 가득한 면회실에 모르는 여자로 달랑 혼자 앉아있었다. 누굴까 , 이곳까지 날 찾아 온 이 낯선 여자는 ? 그녀는 내게 찾아 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제서야 나는 모르는 여자가 모르는 남자를 찾아온 이유를 수긍했다. 우리는 거리로 나와 함께 걸었다. 봄바람이 일찍 핀 꽃잎들 사이로 흙먼지와 한기를 품고 지나다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겨울은 바람 속에 녹아 있었다. 겨울을 녹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람이다. 그래서 봄엔 그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이다. 분홍 투피스를 입은 그녀의 어깨가 자꾸 부딪혀 왔다. 이 여자가 첫 눈에 나에게 반한 것일까 ? 우리는 그때 '사랑을 사랑하는 그런 나이'(when love loves love) 였다. 바로 그 나이에 우리는 그렇게 처음 만났었다.'

# 내가 좋아하는 장면 2

아마 그때 나는 내 인생 중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학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나는 책을 끌어안고 좁고 차가운 다락방 안으로 숨었다, 집은 가난했고, 그래서 학원을 다닐 수도 없었다. 남은 일년은 새카만 터널 같았다. 나는 재수를 원하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공부는 진척이 없었다. 재미도 없었고, 열의도 없었다. 침울한 가운데 봄은 왔다. 나는 그때 서울 교외(지금은 서울의 한 가운데가 되어 있지만)에 텃밭이 있는 작은 집에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봄이 되자 할머니는 내게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밭을 파엎어 달라고 했다. 아침부터 삽질을 했다. 점심이 되자 밭은 다 뒤집어엎어졌다. 점심은 맛있었다. 오후에 나는 흙덩어리를 깨 콩고물처럼 만든 다음 이랑을 만들어 두었다. 저녁이 다되어 나는 아름다운 밭 한가운데 서있었다. 하루의 노동은 정직하게 보상받았다. 딱딱하고 완강하게 움추리고 있던 겨울 땅은 풍성하고 부드러운 밭이랑으로 변해있었다. 책상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어도 나아진 것 하나 없는 그런 공부에 비해 너무도 아름다운 보상이었다. 할머니는 그 밭에 구획을 정해 여러 가지 씨앗을 뿌려두셨다. 밭은 이내 푸른 잎들로 뒤덮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렇게 내 암울한 재수 생활도 지나갔다.

이제 나는 앞으로 내게 다가올 내 개인사의 101 가지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나를 기다리는 장면들. 그리고 내가 기다리는 장면들 중 두개를 펼쳐 보았다.

앞으로 나를 기다리는 장면 # 1

나는 바닷가에 작은 집을 한 채 빌린다. 초라하지만 넒은 바다가 곧 정원인 집이다. 나는 하루 종일 바다와 함께 있다. 걷고 뛰고 바라본다. 태양과 함께 일어나고, 달빛 속에서 잔다. 내 짐은 조금 커다란 검은 색 가방 하나다. 그 속엔 반바지 2개, 긴바지 2개, 속옷 두벌, 양말 2개, 남방 2개, 그리고 자켓 하나, 노트 한 권, 필통 하나.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가 하나 들어있다. 나는 작은 종이 박스에 만원자리 지폐를 300개 넣어 둔다. 그리고 7번째마다 천 원 짜리 하나씩을 끼워 넣어 둔다. 그리고 하루에 한 장씩 꺼내 쓴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하루에 천 원 짜리 하나로 산다. 하루에 1달러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니 일주일에 한 번은 나도 그들이 된다. 나는 지갑도 없고 카드도 없고 명함도 없다. 그 돈 통이 다 빌 때까지 나는 그 바닷가에 있다. 파도로 물빛으로 바람으로 그리고 명멸하는 햇빛으로.

앞으로 나를 기다리는 장면 # 2

언젠가 나는 내 홈페이지에서 만나 알게된 10명의 젊은이들에게 e-메일로 초청장을 보낼 것이다. 그들은 나처럼 경영 컨설턴트가 되고 싶어한다. 그들은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멋진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신을 사랑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은 젊은이들이다. 나는 이들을 일주일에 두 번 연구소로 초대한다. 연구소에는 아주 아름다운 커다란 방이 있다. 그들은 그 곳에서 논의하고 토론하고 연구한다. 나는 그들을 지옥에 온 것처럼 괴롭힐 것이다. 밤을 새우게 할 것이고, 수 백권의 책을 읽으라고 할 것이고, 읽은 것을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라고 할 것이다.

우리에겐 하나의 원칙이 있다. 가라사대, '우리는 어제의 고뇌가 오늘의 고뇌가 되지 않게 한다. 고뇌의 깊이를 달리함으로 어제의 고뇌의 반복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그들의 논의는 실시간으로 정리되어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에 등재된다. 그러면 다른 젊은이들이 온라인으로 참여한다. 이 사이트는 격전의 장이고, 공감의 장이고, 연대의 장이고, 전환과 혁명의 장이 된다. 진부한 관행을 허용치 않는 무례함, 반복을 허용하지 않는 의외성, 통렬한 반전,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위한 모색의 공간이 된다. 대-한민국을 목놓아 부른 6월의 붉은 광화문처럼 신나는 공간이다. 10명의 젊은이들은 그렇게 자라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볼까 ? 당신이 이 글을 보면 지금 bhgoo@bhgoo.com 으로 '당신의 역사 한 장면과 당신의 꿈 한 조각'을 보내 주셔요.
( 상상은 늘 이렇게 실제 상황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상의 힘입니다. 모든 역사는 늘 이렇게 만들어졌지요. )

상상에 대하여

상상은 또 하나의 현실이다. 현실 속의 꿈이고 꿈속의 현실이다. 하나의 현실세계 밖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현실에 갇히게 된다. 과거가 만든 현재의 조건 속으로 위축된다. 그리하여 미래 역시 지금에 의해 조건지어진다. 도약할 수 없는 갑갑한 평면적 삶만이 매일 그들을 기다리는 일상일 뿐이다. 상상은 무수한 또 다른 삶의 평면을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도약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팍팍한 평면적 현실을 넘어 아름다운 별처럼 미래로 확장된다.

IP *.229.146.18

프로필 이미지
아름다운꿈
2004.12.19 01:09:07 *.190.172.45
과거의 꿈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의 현실이 되었다면 지금 현제 더 좋은 아름다운 꿈을 찾고 만들어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수 있을 것같아요.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위하여...()...
프로필 이미지
이종민winmin
2005.10.26 15:58:30 *.41.123.71
이글을 읽으며 사고계에 있는 나의 생각을 아주 구체적으로 언어계로 내리는 일을 그것도 소설의 한장면 처럼 아주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속에 잠들어 있는 "무한능력"을 깨우는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구본형소장님 늘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어린왕자
2006.03.15 04:19:04 *.218.232.18
글을 퍼가도 되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현운
2007.09.06 06:01:03 *.134.133.157
아..! 선생님, 제 꿈을 상상하기 위해 이렇게 선생님이 걸어오신 흔적을 더듬어 봅니다. 오늘도 이 더듬거림이 힘찬 발걸음이 되도록 도와주시는군요. 감사드립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