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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2014년 3월 27일 09시 00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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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말을 적어서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수첩에만 적어두고 보내지 않습니다.

 

*

나는 당신의 누이가 아니라 당신의 딸입니다. 

당신이 내게 부인의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동조하기도 하지만 속이 상했습니다. 

내 피속에서는 당신의 피가 있어 당신처럼 느끼지만,

또한 내 피속에는 당신 부인의 피도 있습니다. 

당신의 누이라면 전적으로 당신의 편을 들어줄 수 있겠지만 

저는 그리할 수가  없네요.

 

**

나는 당신의 남편이 아니라 당신의 딸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지애비를 닮았나'라고 하시는 그 말씀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당신이 미워하는 그 사람이 저의 모습인 것은 맞지만,

저는 저의 반쪽을 미워하는 당신 또한 밉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미워하는 제가 밉습니다.

저는 당신의 남편이 아니고 당신의 딸이랍니다.

 

***

난 당신이 양육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나와 밥을 먹을 때, 당신이 내 음식을 챙겨주고, 흘린 음식을 닦아주느라 여기저기 움직일 때,

저는 밥을 편히 먹지 못합니다. 

식탁에 흘린 음식, 저는 주워먹지 않아요. 그러니 그렇게 열심히 딱아대지 않으셨음 해요.

그게 흘러서 옷을 적시지 않는다면 그대로 두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밥그릇을 들고 먹지 않고 식탁에 놓고 먹는 이유 중에 하나는.....

식탁은 그러라고 있는거니까요.

난 당신의 친구입니다.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

나는 당신의 남자친구가 아닙니다. 

저는 그냥 친구이지요. 전 여자랍니다. 

내게 남성성이 있다해도 당신이 속상해하는 그 이야기를 함께 할 순 있어도

내가 당신의 남자친구를 대신하여 풀어줄 수는 없습니다. 

내게 화를 내고 내게 애교를 부리고 하는 당신의 모습이 예뻐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치만 저는 당신의 남자친구 대신은 아니랍니다. 

 

******

전 당신 강좌의 수강생이 아닙니다. 

당신의 관심사는 그것일지 몰라도 저는 아니랍니다. 

전 당신이 궁금해서, 당신이 얘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그것을 들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수강생으로 참석하지 않은 자리에서는 전 딴 생각을 합니다. 

제 머릿속에는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웃게한 그것이 둥둥 떠다닙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못알아 들었습니다.

머리 속에 딴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그 딴생각과 당신의 말이 충돌해서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요.

미안합니다만, 제가 알아야 하는 거라면 다시 말해줄래요.

 

******

당신의 머리 속에 있는 저는 제가 아닙니다. 

당신 머리속의 그사람과 저는 달라요.

나는 몸이 있어요. 움직이고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즐거우면 웃고, 화나면 욕도하고, 가끔은 화난다고 뭔가를 일부러 부수고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현실의 사람입니다.  당신이 나를 멋지게 생각하더라도

저는 가끔은 그렇고, 가끔은 아니예요. 

당신이 반했던 그 모습 그대로라면 좋겠지만 전 그렇지 않답니다.

이 세상에서 밥먹고 일하고 사는 사람들 중 하나 딱 그런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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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7, 2014 *.20.202.213

한정화 화백님.

제게도 적어만 두고 보내지 못하는 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따금 어떻게든 그렇게 담아둔 마음을 전하려 애쓰고 삽니다.

가끔씩 전해 보세요.

당장은 소란이 일고 상처가 나지만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녹아내리는 무엇이 생겨나기도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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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7, 2014 *.61.23.211

쓰고 전하지 못하는 편지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전하려고 애쓰고 삽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외따로 떨어져서 도망가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결심하지요. 그런데 그 애쓰는 게 아프더라구요. 그것도 몇 번하니 견딜만 것이긴 한데. 헤헤헤. 좀더 살아보지요. 헤헤헤. 밥과 섞어서,웃음과 섞어서 좀 전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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