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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일 15시 04분 등록

혹시 <어린왕자> 좋아하세요? 저는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보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궁금한 부분이 달라지는 책입니다. 

아시다시피 어린왕자는 조종사인 화자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하구선 최종적으로는 '양이 담겼있다는 상자'를 받게 됩니다. 저는 그게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그릴 줄 모른다는 사람 졸라서 참 까탈스럽게군다는 생각을 했구요, 그러다가 언젠가는 책 내용을 따라가며 어린왕자가 '염소',' 병에 걸린 양', '늙은 양'이라고 하며 거절했던 것과 삽화가 정말 그런가도 보았구요, 또 언젠가는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양을 받은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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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받는 것을 이해했던 때는 영화를 여러차례 봤을 때 인듯 합니다. 어린왕자를 너무나 좋아해서 되지도 않는 영어를 동원해서 아마존 사이트에서 비디오테잎을 구매했는데, 그걸 밥을 먹을 때마다 틀어보면서 어린왕자가 이야기하고 조종사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어린왕자는 자신의 별은 아주 작다고 이야기를 하고 조종사가 행성을 그릴 때였습니다. 원을 그리자 마자, 어린왕자는 'smaller'라고 말하고 조종사는 스케치북을 넘겨서 더 작은 행성을 그립니다. 그런데, 그때도 어린왕자는 'smaller'라고 말하지요. 그래서 조종사는 더 작게  동전만하게 행성을 스케치북에 그려넣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별을 이야기합니다. 

그 smaller라는 말에는 '우리 별은 당신이 상상하는 그것보다 더 작아요.'라는 말 같습니다. 어린왕자는 조종사가 상상하고 있는 크기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몇 해 전에는 심심해서 어린왕자의 삽화를 몇 장면을 따라그렸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책에 나오는 삽화를 몽땅 베껴 그린 적이 있습니다. 베껴그리면서 삽화를 그린 사람은 그림을 참 잘그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선이 힘의 강약에 따라 굵기가 변화하고 있었고, 옷소매를 입체적으로 그렸고, 여러사람들의 얼굴이 단순하면서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책에 나오는 내용하고 삽화하고 집중적으로 연결해서 보았습니다. 퇴짜를 맞았던 양들을요.

'이 양은 병에 걸려 앍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 그려줘요.'

'잘 봐요, 이건 염소잖아요. 뿔이 나 있잖아요.'

'이건 너무 늙은 양이예요.'

그러다가 결국에는 양이 들어 있다는 상자를.

단순한 양 그림에서 왜 이런 비판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그리고 조종사가 그린 양들이 왜 이런 순서가 되었는지를요?

작가가 그런 의도로 썼는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그냥 오랫동안 <어린왕자>책을 끼고 살았고, 그것을 보면서 그림이란 뭔가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그림을 볼 때, 별 잡스런 생각까지 해가며 봅니다. 때로는 아주 진지하게 보기도 하지요. 나는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나같으면 어떻게 그릴까하구요.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저는 조금 위험스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생텍쥐베리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조종사가 그리며 퇴짜를 맞는 순서를 보면서, 이건 조종사가 그린 양이 퇴짜를 맞는 게 아니라 조종사가 어린왕자에게 퇴짜를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에 걸린듯이 무기력한 조종사, 그리고 그 반대로 힘을 내겠다고 했을 때 강한 것의 상징으로 뿔을 달았지만 그건 양이 아닌 다른 존재.....염소가 되어버린 조종사, 그리고 너무 진부하게 생각하는 늙다리 조종사. 한 남자의 상태나 심경의 변화가 그 양을 그린 순서대로 표현되었다고 하면 너무 억지일까요?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는 그림그리는게 무서워졌습니다. 글쓰는 것도 그렇구요.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 그런 것들이 그 사람 아닌 것일 수가 없을 것 같더라구요. 상대의 마음에 쏙드는 것이 들어있는 상자를 그려줄 수 없는 저는 오래도록 끙긍 될 것 같습니다. 속 마음까지 들킬까봐, 초라한 모습들이 드러날까봐 두려워졌습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사람으로 본다면 저는 허영쟁이 그 남자에다가 바오밥나무가 자라서 별이 깨져버린 게으름뱅이에다가, 해가 지는 것을 마흔번이나 보는 그런 사람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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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02, 2014 *.62.162.38
경기도에 쁘띠프랑스 가보신 적 있으신지요? 처음 방문했을때는 드라마 촬영장 (베토벤바이러스)라고 하여 기대했다가 볼거 참 없구나 했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인가 세번째 방문때 생텍쥐베리 기념관을 천천히 관람했습니다. 생텍쥐베리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모두 겪어낸 사람입니다. 지독한 가난을 늘 가족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이기도 했고요. 그의 인생을 이해하고 나니 어린왕자가 다시 보이더군요. 사막의 고독에서 피어낸 장미꽃 같은 작품, 어린왕자. 감히 서양의 불경이라 해도칭해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왕자의 팬 한사람으로서... 좋은 글과 그림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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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02, 2014 *.62.162.38
분명 '로알드 달'이라는 작가의 작품들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생텍쥐베리처럼 조종사 출신이거든요. 마틸다, 찰리와 초콜렛공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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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04, 2014 *.10.141.190

처음 읽고 한참후에 읽었을때  느낌이 달라서 참 좋았던 책이에요.

 

영어로된 책을 100번을 읽기로 작정했던 책이지요.

아직 백번을 채우지는 못했고

100번을 읽으면 뜻이 절로 통한다고 했으니

그 뜻을 알 수 있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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