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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2014년 2월 6일 13시 26분 등록
명절에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친척들이 많아서 명절 때마다 먹고 치우는 것이 일입니다. 우리집 뿐만이 아니겠지요, 어느 집이나 명절때는 그게 제일 큰일이지요.

그 먹고 치우는 일도 사람이 많다보니 잘하는 사람이 맡아서 하고, 몇몇은 옆에서 거들고, 어떤 일은 늘 하던 사람이 하곤 합니다. 이때에 저는 저는 단순한 것을 심부름을 하거나 설거지 같은 것을 맡아서 합니다. 반찬을 치우고 버리거나, 개밥으로 주거나, 냉장고에 넣거나 하는 것은 부엌의 주인이 알아서 주도하고, 몇명은 과일이나 커피를 냅니다. 부엌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그만그만할 일이니 별 문제 없을 것 같고 별로 티가 안 날 것 같지만, 익숙한 사람과 부엌일 안한 사람이 사소한 것에서 드러나고, 평소에 부엌일 안한 사람이 끼어 있으면 신경이 쓰입니다. 

제가 설거지를 할 때 신경써서 보는 것은 칼 단속입니다. 사용한 칼이, 씻어야 할 칼이 어디 있는가입니다. 음식을 먹고 치울 때 쯤이면 설거지꺼리가 많습니다. 몇 상에서 나온 밥그릇, 국그릇, 수저, 반찬 그릇뿐 아니라, 국 데운 냄비, 밥솥, 생선 구운 적쇠, 김치 썰은 도마, 칼, 커피 마신 컵까지 모두 씻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걸 개수대에 한꺼번에 집어 넣어버리는 초짜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뒤섞여 있으면 씻기가 불편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합니다. 다른 그릇에 부딪혀 깨지기 쉬운 유리컵, 설거지통 바닥에 깔려 있는 칼은 특히나 위험합니다. 심부름을 하다가, 혹은 그릇들이 많아서 이미 씻은 그릇을 소쿠리에 받치고 뒤돌았는데 구정물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설거지 하다가 그릇을 놓치지 않는다를 것을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구정물 뺀다고 손을 집어 넣었다가 손에 뭐가 걸릴지 또 어떻게 알까요. 그래서 부엌에서 처음으로 같이 일하는 친척에게 제일 먼저 당부하는 것은 칼과 유리컵은 개수대 통에 넣지 말고 따로 놓으라고 일러두는 것입니다. 

저는 개수대 통에 설거지꺼리를 한데 섞어서 넣어주는 사람을 부엌일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당장은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거나, 혹은 위험요소를 계속 만들고 있거든요. 저는 이런 사람을 부엌일을 안해본 사람, 심지어는 부엌일뿐 아니라 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봅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을 자기도 모르는 새에, 무심코, 혹은 아무 생각없이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거들겠다고 나선 것은 좋은데,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본 것 같습니다. 해야 할 것은 봤는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르고 일에 나선 것과 같습니다. 해야 할 주된 일을 잘 못하는 것은 괜찮은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은 저는 좀 신경이 쓰입니다. 제게는 이런 사람이 부엌을 같이 쓸 수 없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이 사람을 부엌에서 무조건 아웃시키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 '내가 할테니 내비둬.'라고 하다보면 동생은 어느 순간에는 다른 일을 찾아서 눈치를 봐야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잔소리가 느나 봅니다. 

자기 일을 하는데, 그것이 옆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 같이 일하는 옆사람 동선은 확보해 주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신경이 쓰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불편하거나 편안하거나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부엌에 있으면 들어다니기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물건들이 제 위치에 있지 않아서 한참 뒤적여 찾아야 하거나, 그릇들이 모퉁이에 언저져 있어서 다른 물건 하나를 놓으려면 옮겨 놓아야 한다거나, 건드려서 엎어버릴 것 같이 보인다거나, 어두운 곳에 물을 흘리고는 닦지 않아서 밟아서 양말을 버리거나 미끄러지거나, 발을 디딜 때마다 냄비나 솥을 이러저리 옮겨 두어야 하거나, 양념통들이 뚜껑이 닫혀 있지 않아서, 소금 꺼내다가 설탕통 엎거나 할 위험이 있어서 입니다. 같이 부엌을 들어다닐 사람의 동선을 염두하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 옆에서는 여러가지 것이 변수이고 불안정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것은 잘 인지를 못하고, 또한 잘 고쳐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인데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네요. 인지하지 못한 것은 인지 후부터는 신경쓰게 되어서 괜찮은 데, 습관으로 되어 버린 것은 고치기 어렵고, 또 어떤 것은 다른 조건들이 변하는 않는 한 변하지 않고, 잠깐만 괜찮았다가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이러는데, 일을 하는 데는 어떨까요? 저는 부엌일은 해봐서 그런다지만, 다른 일에서는 제가 부엌을 '같이 쓰기 불편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일하기 불편하다고 꺼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할 수 있게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기본적인 것을 좀 일러주거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습관이 되어버린 것도 바꿀 수 있게 도와주거나 너그럽게 봐주었으면 합니다. 

같이 할 수 있게 .....


s-설거지통-00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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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07, 2014 *.68.54.121

그렇군요.

한번도 신경써보지 못한 것이군요.

총각때도 그릇이 많지 않아 그랬을 수도 있지만 칼도 함께 넣어서 설걷이를 하고는 했었는데

설걷이 거리가 많다보면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했지만 실제로는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위로해주려는 마음으로 이런 저런 말을 하지만 실제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명절 잘 지내셨기를 그리고 또 새로운 봄을 맞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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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0, 2014 *.131.205.106

가족이 많고, 친척들이 많이다보니 저는 이런 일을 자주 겪습니다. 

설지나고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네요~ 어둠을 품은 밝음님도 환한 새 봄을 맞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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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08, 2014 *.64.231.52

일상 섬세하게 보기와 기록하기, 재미있네요. 그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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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0, 2014 *.131.205.106

단경님은 종갓집이라서 이런 일 흔하실듯 해요. 언제나 일이 많은 게 집안일이죠.

엄마를 도와줄 수 있는 사소한 집안일을 이야기할 때, 공감하셨을 때 저는 놀랬어요. 

쓰레기봉투 내다놓기, 화장실 휴지 떨어졌을 때 새것 갈아넣기도 사소하지만 집에선 중요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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