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Image

일상의

  • 인센토
  • 조회 수 2087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3년 11월 27일 22시 28분 등록

1.jpg


2.jpg


3.jpg


4.jpg



옛날옛날 호숫가에 커다란 인디언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의 외딴 곳에 집 한 채가 있었는데, 거기엔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위대한 사냥꾼으로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을 '볼 수 있는’ 소녀는 누구든지 이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시험은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저녁무렵 '보이지 않는 사람'이 돌아올 무렵, 여동생은 호숫가에 와 있는 소녀와 산보를 시작한다. 그리고 소녀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내 오빠의 모습이 보이나요?” 대부분의 소녀들은 보인다고 대답했다. “보여요”라고 대답한 소녀에게 다시 이렇게 물었다. “오빠는 어떤 어깨띠를 하고 있죠?” 이에 소녀들이 대답하면 여동생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여동생은 소녀와 함께 오두막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기다린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마을에  아내를 잃은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막내딸은 몸집이 작고 약해 두 언니들은 막내를 심하게 대했다. 특히 큰언니는 벌건 숯으로 막내 동생의 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히기도 해서, 온 몸이 학대로 인한 상처투성이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막내를 ‘누덕누덕 기운듯한 피부의 소녀’로 부르고 있었다. 

드디어 두 언니에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집으로 가서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기 위해 언니들은 한껏 아름답게 치장했다. 호숫가에서 여동생을 만난 두 사람은 질문에 거짓말로 대답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막내도 자신의 운명을 점쳐보고 싶었다. 큼직한 가운을 걸치고 무릎을 덮어버릴 만큼 커다란 모카신을 신은 기묘한 옷차림을 한 채 막내는 언니들의 거센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숫가로 향했다. 

여동생이 물었다. “저 사람이 보이나요?” 
“물론 보이고 말고요. 아, 참으로 멋진 분이군요.”
“저 사람의 채찍에 달려 있는 끈은 어떤 거죠?”
“무지개입니다.”
“저 채찍 끝에 묶여 있는 끈은 뭐죠?”
“은하수예요.”

여동생은 막내를 집으로 데려가 정성스럽게 씻어주었다. 그러자 얼굴과 몸을 뒤덮고 있는 상처와 때가 말끔히 사라지고, 머리를 빗겨주자 불에 그을려 타버린 머리카락들은 길게 자라 아름다워졌다. 눈은 마치 별 같았다. 여동생은 소녀를 결혼에 어울릴 만한 차림으로 치장해주었다. 드디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드디어 찾았군.” 막내는 대답했다. “네.”  이렇게 소녀는 ‘보이지 않는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

얼핏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신데렐라의 또 다른 이야기이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미크마크족은 유럽인들에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들은 뒤 위와 같이 변형을 시켰다.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과 천박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판 신데렐라 이야기를 이루는 핵심 축은 아름다운 이성을 찾으려는 욕망과 자신이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의 결합이다. 그러나 미크마크족의 눈에는 이것이 경박한 인생관으로 보였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언어기원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최초의 인간들은 우리가 지금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아니라 시와 음악으로 서로 이야기했다” 나카자와 신이치에 따르면 신화는 이런 시와 음악과 매우 유사한 역할을 담당한다. 신화는 은유와 환유와 같은 ‘비유’를 통해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상징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man+bear.jpg

유라시아의 여러 신화에 따르면 인간과 곰은 친구이다. 때로 곰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곰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이와는 다르다. 인간은 고기와 가죽을 얻기 위해 곰을 죽이고, 곰 또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다. 하지만 현실의 잔혹함은 신화 속에서 하나의 전체로 통합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어느 때인가, 우리의 조상들이 저녁을 먹은 뒤 불가에 둘러앉아 신화와 전설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  삶은 시와 음악과 같은 것이었다. 신화와 함께 낮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둠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 시와 음악을 잃게 되면서 마치 유일신과 국가가 그러하듯, 야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


* 나카자와 신이치, '신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에서 재인용 및 요약

IP *.222.95.202
프로필 이미지
November 30, 2013 *.10.141.190

보는 것 본다는 것 낯설게 본다는 것

 

프로필 이미지
December 04, 2013 *.143.180.161
시와 음악으로 서로 이야기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겔러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