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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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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0일 07시 24분 등록

 s-꿈그림-공간.jpg

 

엊그제 집을 좀 치웠습니다. 저는 어질기는 아주 잘 하는 데 치우는 것은 못합니다. 무언가를 자꾸 더해가는 것은 잘 하는데 빼기는 못하거든요. 밖에 돌아다니다가 '이거  이쁜 데' , '이거 화단 꾸미는 데 쓰면 좋겠다', '오 이거 신기해'라고 하면서 자꾸 주워들고 오는데, 나중에 그것이 쓸모 없다고 해도 버리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조금 있다보면 집안에 무엇인가가 가득차서 발 디딜 틈이 없어집니다. 잠을 자거나 앉으려면 한쪽으로 밀쳐둡니다. 가끔은 상자 하나에 몽땅 담아서 다른 방으로 옮기지요. 그렇게 방을 치우고 나서도 이틀정도 되면 다시 완전히 어질어집니다.

 

고등학생 때 지구과학시간에 퇴적층에 대해서 배울 때, 퇴적층은 가장 아래 쌓인 것은 시간 순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생활에서 비유를 들어 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게 꼭 저의 생활과 비슷합니다. 신문을 보다가 라면을 끓여먹고, 그 후에 만화책도 좀 보고,  과자도 한 봉 뜯어 먹고, 공부도 하고. 그러면 그것이 고스란히 방바닥에 순서대로 남는 것입니다. 제 방에 있는 물건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엊그제는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책을 5단 책꽂이를 하나 얻어다가 모두 거기에 꽂고, 종이들은 종이들대로 모으고, 안 입는 옷은 봉지를 싸서 아름다운 가게에 갖다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방이 훤하네요. 아랫층에 아주머니 불러서 저녁도 같이 먹었습니다. 치우기 전에는 혼자 앉기도 좁은 방이어서 누구와 같이 식사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지요. 이제는 방에서 뒹굴뒹굴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무언가를 하겠다 마음 먹으면 어디로 나갈까를 궁리했습니다. 뭔가를 하려면 방에 있는 것들을 한쪽으로 밀쳐야만 했거든요. 방에 종이 한 장 제대로 펼 자리가 없었습니다. 어제는 깨끗한 방에서 뭔가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여기가 아닌 저기를 꿈꾸었던 것은 여기에 발디딜 자리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발 딛고 선 그 자리를 활개치고 살 공간으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금 여기에서 양팔을 움직일 정도의 여유를 갖지 못하니 늘 다른 곳을 찾아 헤맺던게 아닌가합니다.

 

저의 꿈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일상으로 만들어지고 모아지는 것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옆으로 제쳐두고 어딘가를 찾아 헤매던게 아닌가 하구요. 바라던 '저 곳'이나 '그곳'이라도 막상 도착해서 발 디디면 그때부터는 삶의 깊숙한 '여기'가 되어 버리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집은 또 이틀이면 어질어지겠지만, 어디에 쓸지 모를 무언가를 다시 치워서 빈 곳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지금 여기에서 양팔을 휘저어 가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을, 시간을 만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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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0, 2012 *.229.131.221

저도 계속 쌓아나가는 타입이라.. ^^

그러다 아주 가끔 싹 치우고 나면 속이 시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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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1, 2012 *.72.153.115

응, 시원하다.

다시 절반쯤 어질어졌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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