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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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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30일 20시 30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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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로먼’은 늙은 세일즈맨이다. 한 때는 꿈이 많고 잘 나가는 세일즈맨이었다. 그러나 삶은 늘 꿈과는 달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한평생 집세를 치르느라 죽도록 일하고 나니 남은 건 주변의 고층 아파트에 가려 어둡고 좁은, 그나마 월부금도 다 갚지 못한 집 한채 뿐이고, 늘 커다란 두 개의 검은 가방을 들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돌아다녔지만 다 늙어서 돌아오는 건 회사의 푸대접 뿐이다. 


그에겐 린다란 착한 아내가 있었으나 낯선 길 위에서는 너무 쓸쓸해서 잠시 바람을 피기도 했고, 한 때 그에게 큰 기쁨이었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던 두 아들은 언젠가부터 빗나가기 시작해 지금은 허송세월로 젊음을 허비하고 있을 뿐이다. 예순 셋의 그에게 끝없이 떠돌아야 하는 ‘지방 외근직’은 더이상 무리라는 판단에 용기내어 아들 뻘의 사장에게 내근직을 요청해보지만, 돌아온 것은 ‘그저 세상이 그런 겁니다’란 수모의 말과 함께 딸려온 해직 선고이다.


젊은 날 형과 함께 알래스카로 금광을 찾아 떠나고 싶었지만 훌쩍 떠나지 못한 채 직장인의 월급 봉투와 안정적인 가정 생활을 선택했던 세일즈맨 윌리는 인생의 마지막 모험으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죽음을 선택한다. 미국 전역에서 지인들이 몰려들 거란 그의 허무한 공상과는 달리 초라한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유일한 이웃 친구 찰리 뿐이었다. 집을 산 지 이십 오년이 되는 해에 드디어 마지막 월부금을 갚았건만 이제 그 집 주인은 땅 속에 묻혔다.


*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의 짧은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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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생활의 달인’이란 TV 프로그램은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말 그대로 생활 속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그 소개의 글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생활달인? 수십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 삶의 스토리와 리얼리티가 담겨 있는 생활 달인은 그 자체가 다큐멘터리. 비록 소박한 일이지만 평생을 통해 최고가 된 생활 달인의 놀라운 득도의 경지를 만나는 시간.”


결코 우리 주변의 전문가와 장인들을 폄하할 의도는 없습니다만, 과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는 그 ‘생활의 달인’을 진심으로 존경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것일까요? 오히려 지루하고 고된 노동을 평생 해나가려면 저 정도의 작은 즐거움은 필요한 거겠지, 하며 - 자신은 쾌적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으니 저렇게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 일종의 안도감을 내쉬며 호기심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나 ‘생활의 달인’들과 직장인인 우리가 처해있는 작업 환경이 크게 다른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경영’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과학적 관리법’의 테일러의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바뀐 것은 겉포장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령 온 몸을 후려치는 채찍이 없으니 자신이 어딘가에 매여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되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가 보이지 않으니 시지프스처럼 끝없이 돌을 밀어올리고 있는 자신의 소모적인 현실을 자각하지 못할 뿐입니다. 


자본주의는 우리를 ‘경쟁’과 ‘분업’으로 훈육시킵니다. 만약, 그 어떤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해도 업무가 회사가 규정하는 직무 범위의 한도 내에 머물러 있다면 당신은 ‘전문가’가 아닌 조직의 부속품에 불과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아무리 오랜 시간 일했다고 해도 자신이 창조한 것이 아닌, 회사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저당 잡힌 시간에 대한 - 자유를 상실한 대가로 보수를 받고 있다면 당신 또한 저와 같은 노예일 뿐입니다. 


자신의 ‘삶의 정의’를 스스로 창조해내지 못하고, 영혼이 이끄는 가슴 뛰는 일은 하지 못한채 그저 세상이 시키는대로 착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어느 날 “세상이 그저 그런 겁니다”란 말과 함께 당신을 둘러싼 연극 무대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뉴욕의 어느 늙은 세일즈맨에게 세상이 대했듯 그저 쿨하게,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입니다.  


IP *.51.2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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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0, 2012 *.166.205.131

사진에서 주인공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겠지요.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전문가들...

 

인센토님의 일관성있는 사진들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뭔가 흐릿하고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이미지들.

작가 정신이 뚜렷하신듯!

관조적인 글과도 잘 어울리구요~

화이팅!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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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0, 2012 *.10.140.105

매인줄이 있는 줄도 모르고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고 있지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래도 자기일을 하는 사람들은 덜 안타까운데

"월급"을 받고 일을 해 주는 분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정도의 생각과 노력이면 무엇을 하든지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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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01, 2012 *.229.131.221

이 글을 올리는 날, 이사를 했습니다. 2년간 정들었던 곳을 떠나느라 마음이 쓸쓸했던지,

아니면 그냥 바보같아서였는지 - 당연히 후자이겠지만 - 우체국을 잠시 들릴 요량으로 

급히 자전거를 타고 가다 크게 넘어졌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얼굴과 뼈는 다치지 않았습니다만, 

당분간 긴 팔 셔츠를 더 입고 다녀야겠네요.


경험은 때로 편견과 아집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겪어본다는 것은 괜찮은 일인 듯 합니다. 

물론 겪어보지도 않고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게 그런 뛰어난 머리와 통찰력은 없으니, 당분간 소심한 성격과 부족한 체력이 견디는 한에서 

'부딪힘'의 순간들을 조금씩 늘려나가보려 합니다.


그럼에도 이제 자전거를 타다가 땅바닥에 부딪히는 일은 삼가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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