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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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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일 12시 46분 등록

s-꿈그림10-흰꽃.jpg

 

 

화실에 그림을 배우러 가면 초기에 하는 것으로 흰색 물체를 그리는 것을 합니다. 제가 찾아간 화실은 원뿔의 상부에 원기둥이 막힌 석고상이었는데, 형태는 단순한데도 저는 그걸 그리는 게 아주 힘들었습니다. 흰색 물체를 흰색 종이에, 검은색이 나오는 연필로 그걸 그려야 한다는 것.그것도 그 물체처럼 보이게 그럴싸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건 아주 말도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머리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초반부터 작정하고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흰색 물체를 어떻게 검은 색으로 그려?'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림은 엄청난 모순을 포함하고 포함하고 있습니다. 흰색을 물체를 그리겠다고 하면서 검은색으로 그리려고 하고, 입체적인 것을 2차원의 평면인 종이에 옮겨놓겠다고 하고, 흰색보다 더 밝은 빛이란 것을 그리겠다고 하고 또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그것의 한 순간을 그려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그리겠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말도 안되는 것들이 막막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그리겠다고 하면 대체 어떻게 그려야 할지 도통 모르겠거든요. 그런데 화집을 뒤적거리다 보면 제가 말도 안된다고 하는 그 일을 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대에 가겠다고 입시미술을 배우는 학생들은 거뜬히 2절지에 생생한 입체로 줄리앙인가 뭔가를 그려버립니다. 파레트에 물감만으로 실제로 금이란 것을 쓰지 않고도 금 목걸이를 그리기도 합니다.

 

그림을 보다보면 '그걸 어떻게 해?'하며 거부하던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깨버리고 실행해 버린 사람들을 수도없이 보게 됩니다. 이미 눈 앞에 증거가 있는데도 머리 속에는 '검은색으로 흰색 물체를 ...' 하면서 그 말 속에 갇혀버립니다. 단순한 석고상을 그릴 때도 화실의 선생님께서는 '조금 더 진하게', '조금 더', '조금 더'를 연발하십니다. 흰색의 물체를 보면서 조금 더 검게 그리라고 말씀하시죠. 그러면서 일러주시는 말씀이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는 무수한 회색이 있어요.'

'봐요. 저기보다 여기가 좀 더 어둡죠?'

무수한 회색. 그건 뭘까요? 저는 흰색이나 검은색이라는 말 외에는 그 밖의 많은 부분을 표현할 말을 몰랐고, 그것을 잊은채 단순히 둘로 나뉜 말에 갇혀서 말이 없으니 그것이 실제하지 않은 것인양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착각은 이런 겁니다.

'그게 어떤 건지 나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봐.'

이런 말 앞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물론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정확한 언어로 논리적으로 현실에서 가능한 어떤 것들로 엮어서 그것을 그럴 듯하게 상대의 마음 속에 이미지로 심어주며 설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자신이 품고 있는 그것을 전달하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또한,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실행가능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특히나 꿈이란 것이 '설명해봐'라는 말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꿈과 그 꿈을 언어로 표현한 것과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모습사이에는 무수한 표현형이 존재합니다. 그것들을 일직선 상에 늘어선 점들로 표현한다면 어느 쯤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그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인지, 어느 방향에서 접근해 가고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어로 표현한 좌표가 없다고 해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연필소묘에서처럼 무수한 선들이 더해서 종이위에 물체가 서서히 드러내듯이,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겠다는 사람 또한 정확히 언어로 일대일로 매치시키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하나씩 실행해가며 그 형체를 실제의 세상에 이루어갑니다.  꿈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우선 그걸 부르는 이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존재할 조건, 그것을 실행시킬 사람, 그것의 규모, 그것이 실행될 시기, 그것이 실행될 장소를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말로 다 표현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의 그것과 동일한 것도 아닙니다. 꼭 들어 맞을 때도 있지만, 조금 작거나, 더 커져 버리거나, 형태가 바뀌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꿈그림을 그려준다며 누군가를 만났 때, 우선 먼저 메일로 꿈을 적어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합니다.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만나서 다 이야기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저와 만나서도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다가 구체적으로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꿈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데 그것을 다 이야기해 주지 못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저는 그가 이야기해 준 것에 다른 것들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그림과 꿈은 매우 닮았습니다. 우선은 언어와 그림사이에, 언어와 꿈 사이에 표현의 부족으로 매꾸지 못한 엄청난 거리가 닮았습니다. 실제하는 것들과 실제하지 않는 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닮았다고 보는 점은 수많은 모순들을 뚫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서 어디엔가 실제하게 만들어내는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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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03, 2012 *.75.12.25

역시 미술 , 그림의 세계에는 창조적인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

고정관념을 버리고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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