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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7일 00시 00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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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운동화를 새로 샀습니다. 

전에 신던 것은 앞부분이 터져서 본드로 붙여 신던 것이었고, 그 전에 신던 것은 바닥이 다 닳아서 비탈에 서 있으면 발부터 미끌어져 내려갔습니다. 


헌 신발을 신었을 때 자꾸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본 '키다리 아저씨'라는 소설인데, 거기에 부잣집 도련님이 용돈을 주시며 '구두나 하나 사 신어.' 합니다. 대학생일 때 처음 한 아르바이트에서 사촌남동생에게 방학동안에 잠깐 수학을 가르쳤는데, 끝나는 날 이모부께서 돈을 주시며 신발을 사 신으라고 말씀하셔서 다시 키다리 아저씨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기억은 아닙니다. 


운동화가 떨어졌는데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새 신을 샀습니다. 미루다가. 신발은 터지는 거니까요. 

엄지발가락 들려서 그 부분이 실밥이 터지거나, 앞부분이 본드가 떨어져 버리더라구요. 그렇지 않으면 뒷굼치 닫는 부분이 너무 달아서 헝겊이 헤지고 헝겊 안쪽 인공가죽이 드러나서 뒷굼치 살을 깍아먹지요.


이번에 새로 산 신발은 또 얼마나 오래 갈려는지 모르겠습니다. 3개월, 6개월, 1년?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안에 신발 깔창이 다 헤어져 구멍이 나고, 새로 깐 깔창에 또 구멍이 날 때쯤이면 신발의 쿠션은 사라지고 없더군요. 제 동생은 제가 싼 신발을 사 신어서 그렇다고 하고, 혹은 다른 신발 없이 그것만 신고 다녀서 그렇다고도 합니다. 동생의 말은 둘 다 맞는 말입니다.  


신발 신은 걸 갑옷 입었다고 여겨 여기저기 마구 돌아다녀 자주 떨어지는 걸까요? 그런 것 같네요. 

발을 보호해 주니까 수풀 속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고, 옹이가 있는 밭에도 마구 들어가고, 물 속에도 들어가고, 깨진 돌이 있는 길도 자유롭게 다닙니다.


닳아서 떨어진 신발을 신었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가끔 제가 키다리아저씨의 그 가난한 여자애가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지금은 새 신발이니까, 신발에 쿠션도 좋고, 발에 갑옷 걸친 것 같기도 하고 , 날아갈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운동할 맛 납니다. 

집 뒤쪽으로 서울 둘레길이 있는데, 봉산 거길 좀 산책하다가 달려보고 싶습니다. 새 신 신은 기념으로 말입니다. 

어쨌든, 좀 날아보고 싶습니다. 날다가 발이 땅에 닿으면 그때 또 그 가난한 여자애가 되겠지만요. 


아참, 신발 선물은 사양입니다. 키다리 아저씨를 연상시키지 않더라도 말이예요.

신발이 제게 보호장비나 자유라 하더라도, 그래도 그건 싫습니다. 자유, 그건 누가 제게 주고 말고 할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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