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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4일 01시 31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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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는 독특하고 낯선 형식을 띤다. 책장을 펼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면서도 심오한 오프닝과 목차를 접하게 된다.

기하학적 질서로 증명되고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지며
다음의 내용을 다룬다,

1. 신에 대하여
2. 정신의 본성 및 기원에 대하여
3. 감정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4. 인간의 예속에 대하여, 또는 감정의 힘에 대하여
5. 지성의 능력에 대하여,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이 짧은 단락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 책이 얼마나 심오하고 대담한 주제를 그에 적합한 방식으로 다루고자 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결국 ‘인간의 자유’에 대한 책이다. 그러나 그 자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신, 정신, 감정 등을 중심으로 우리를 예속하는 것들을 철저히 살펴보고,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지성의 힘을 발견해야 한다. 때문에 그는 거의 필연적으로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논증을 이 책의 서술 방식으로 택하게 된 것이다.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던 윌 듀란트도 <에티카>의 난해한 형식과 내용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읽는 것이 아니라 연구해야 한다. 유클리드에 다가가듯이 다가가야 하며, 이 200쪽의 짧은 책에 금욕적인 한 사람이 과잉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깍아내고 자기 평생의 생각을 담아놓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쭉 훑어보고 그 핵심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 이 책을 한 번에 다 읽지는 말고, 여러 번 자리에 앉아 조금씩 읽어라. 그렇게 해서 다 읽었으면 이제 비로소 이해의 첫 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라. 그때부터 주해서, 예를 들어 플록의 <스피노자>나 마티노의 <스피노자 연구>를 읽어라. 둘 다 읽으면 더 좋다. 마지막으로 <에티카>를 다시 읽어라. 그러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두 번째로 다 읽으면 철학을 영원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는 - 라틴어가 원문인 탓일까 - 우리나라에 <에티카>의 정본이라고 칭할만한 번역본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에서 윌 듀란트가 말한 참고 서적의 번역본 또한 부재한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3대 해석서로 알려진 마르샬 게루의 <스피노자>는 번역본이 부재하고,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는 절판되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변명거리는 있게 마련이고, 이런 장벽들에도 불구하고 <에티카>는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철학자 강신주는 어딘가에서 이렇게 적었다. 

서양철학자들이 물에 빠졌을 때 한 사람만 구해야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스피노자를 구할 겁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던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가져다주는 관계는 필사적으로 유지하고, 슬픔을 가져다주는 관계는 결단코 단절해야 한다는 스피노자의 절규는 아직도 제 가슴을 흔들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16세기의 젊은 청년 라 보에티가 비분강개한 어조로 열정에 가득차 적어내려갔던 <자발적 복종>과는 또 다른 이유로 우리에게 놀라움을 준다. 이 책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이 차가운 형식으로 정련되어 있다. 인간의 자유를 가로막는 온갖 관습과 무지와 시대에 대한 분노가 차분하고 정밀한 이성의 논리로 단련되어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이 <에티카 = 윤리학>인 이유일 것이다.

모든 것이 바뀔 줄 알았던 21세기도 스피노자가 살았던 17세기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시대에 윤리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자유는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인가. 얼마 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들은 침묵을 지켰던 - 대한항공 사태에서 재벌과 맞선 외로운 한 사람, 박창진 사무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싸움에 나서는 건…,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스피노자는 <에티카>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지금 이러한 목적지에 인도하는 것으로서 내가 제시한 길은 몹시 험준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발견될 수는 있다. 진실로, 이와 같이 드물게 발견되는 것은 곤란한 일임에 틀림없다. 만일 구원이 눈 앞에 있어서 큰 노력 없이도 발견될 수 있다면, 어떻게 거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등한시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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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 듀란트, 철학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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