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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8일 00시 44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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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후의 도서관이었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 한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이렇게 희망과 절망의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이구나.’ 때로 진실은 잔인할만큼 단순하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 단순한 진실을 보지 못한 채 인생을 착각하고 낭비한다. 조금 길지만 ‘희망과 절망의 순환’을 설명하고 있는 다음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글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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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지속에 대해 우리가 매우 부적합한 관념만을 가지고 있는 이상, 미래는 그 자체로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리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불확실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과거 역시 대부분은 우리에게 포착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희망과 공포의 쌍이 생겨난다. 그것은 곧 그 결말이 우리에게 의심스러워 보이는 과거나 미래의 사물을 상상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슬픔이다. …

우리가 희망을 품을 때, 정의상 이는 우리 욕망의 실현에 대립되는 어떤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두려워할 때, 이는 꺼려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 정념이 배합되는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도식적으로는 이미 두 가지 가능한 경우가 주어진다. (희망과 공포가 동등해지는 한계-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희망이 공포보다 우세한 경우와 공포가 희망보다 우세한 경우가 그것이다. …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처음 두 쌍의 양자택일의 조합, 곧 순환적 진화의 네 국면이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

처음에, 우리는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차지하기를 욕망하며, 이미 그렇게 되기라도 한 양 미리 앞질러 그것에 대해 기뻐한다. 세계는 우리 성향에 맞게 이미 마련되어 있으며, 우리는 다만 그 열매를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물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도 너끈히 제거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그것에 대해선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지혜롭다, 더구나 신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 그런데,

1. 우리가 처음으로 겪는 실패들이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거기에서 생겨나는 상심으로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지는 않음을, 혹은 사건들이 늘 우리 뜻대로 되지는 않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따라서 불확실성은 희망과 공포를 출현시킨다. … 마침내 공포가 희망과 균형을 이루는 황혼의 순간이 도래한다. 

2. 이 짧은 시기가 지난 후 공포가 우세해진다. 그것도 이중으로 말이다. 우선, 우리가 우리 수단들도 우리의 운세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아무 흥미도 자아내지 못하는 선을 획득하려 하기보다는 목전에 닥친 위험들에 맞서 우리를 방어하려 하기 때문이다. 공포는 증가일로에 있고, 우리는 어떤 해결책을 취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아주 곤란한 상황에 봉착한다. 우리는 심리적 공황에 빠져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제안조차도 따를 참이며, 아무에게나 조언을 구한다. 그저 아무 데나 매달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위로 끝난다. 결국 완전한 절망이 도래한다. 

3. 예측하지 못한 우연한 사건이, 거기에 수반되는 만족으로, 우리의 낙담에 종지부를 찍는 작은 희망을 안겨준다. 물론 아직까지는 희망이 공포보다 우세하지는 않다. 우리는 여전히 무능력하다고 느끼며, 우선은 거의 방어적인 일에 몰두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는 ‘사나운 야만인’처럼 열성을 다해 자신을 지킨다. 애초에 우리는 희망 때문에 힘든 노동을 수행했었지만, 이제 이 노동에서 얻은 성공이 다시 희망을 자극하여, 희망은 완만히 증가한다. 갈수록 우리는 덜 약하다고 느끼며, 장차 도래할 향상의 가능성을 진취적으로 내다보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여명이 도래한다. 희망이 다시 공포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4. 이 문턱을 넘어서면, 희망이 우세해진다. 우리는 기쁜 활동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우리는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한다. 위험은 멀어지며, ‘평화의 시기에 공포에서 놓여나’, 우리는 이제 새로운 선을, 항상 더 새로운 선을 획득할 궁리만을 한다. 동시에 점점 더 우리 수단들의 효력을, 그리고 운명의 가호를 믿는다. 

마침내 완벽한 안심이 도래한다. 공포가 없으므로, 이제 우리는 수고롭게 뭔가를 할 욕구도 느끼지 않는다. 다시 ‘무르고 타성적이게’ 되는 것이다. .... 하지만 착각은 오래가지 못하며, 사이클은 다시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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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르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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