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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1일 22시 19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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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어떤 이야기는 끝에서 시작된다. 모든 것이 끝난 시점, 이상 어찌해볼 수도 없는 지점에서 마치 기지개를 켜듯, 불현듯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령 피터팬처럼 마음껏 하늘을 나는 꿈을 꾸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이 어떤 누구도 아닌 그저 그런 - 자신을 도와주는 요정도 없고 마법 따위는 사용하지 못하는 - 평범한 어른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 그때서야 비로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서해를 향했다바다는 땅의 끝이다. 땅은 바다의 끝이다그런데 그 곳에서는 땅과 바다가 한데 섞여 있었다. 내가 자랄  늘상 보았던 남해와는 달리 서해는 모든 것이 뒤섞여 있고, 경계가 흐릿한 곳이었다. 여기부터는 바다야, 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동해나 남해와는 달리 흙과 , 선과 견고한 것과 질퍽한 것이 한데 뒤섞여 있는 접경 지역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거나, 어딘가 감춰져 있던 상념들을 불러 일으켰다. 그 아득한 접경 지대를 서성이며 일몰과 일출을 보았다. 당연하게도 서해에서 해는 바다로 졌고, 위로 떠올랐다. 일몰과 일출 또한 낮과 밤이 서로 뒤섞여 있는 것일테니 서쪽 바다에 어울렸다문장가 김훈은 대부도의 일몰을 지켜보며생성과 소멸의 종합으로서 함몰하는 것이라 묘사했다


"일몰의 서해에서 소멸하는 것들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하늘과 바다와 개펄에 가득 찬 빛의 미립자들은 제가끔 하나의 단독자로서 반짝이고 스러지지만, 그것들은 그 소멸의 순간순간마다 다른 단독자들과의 경계를 허물어,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빛의 생성을 이루면서 큰 어둠을 향하여 함몰되어간다. 떼지어 소멸하는 빛의 미립자들은 시공(時空) 속에 아무런 근거도 거점도 없이 생멸했고, 다만 앞선 것들의 소멸 위에서만 생성되었고, 앞선 것들의 생성 위에서 소멸되었으며, 생성과 소멸의 종합으로서 함몰하였다." *


우리의 또한 그렇게함몰’하는 어떤 것이리라. 해가 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꽤나 쓸쓸한 일이지만, 한편 변하지 않으면서도 변화하는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위안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삶의 어떤 경계를 지나면서부터 세상에는 이상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온다. 나이가 들어 잇몸 속에서 어찌해볼 요량도 없이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하듯 어릴 그토록 당연하게 여겼던, 선명했던 꿈과 이상과 정의는 기반이 약한 모래 위의 건물처럼 마구 요동친다. 아차방심하는 순간 쌓아올린 모래성은 통째로 무너져 내린다그렇게 청춘은 막을 내리고젊음은 한창 때를 지나고, 중년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여기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건 무엇일까굳이 이름 붙인다면 사랑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남은 인생에 대한 사랑. 그리워했던 누군가에 대한 사랑.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한 사랑. 버려진 것들에 대한 사랑.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에 대한 사랑. 미처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사랑들. 김훈의바다의 기별이라는 에세이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닿을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끝이 난다


모든, 닿을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


김훈은 짐작하고 있으리라.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대부분 가질 없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불러보는 어떤 것이다. 우리에게 들이닥친 일상만이 현실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꿈은 현실이 있다고기어이"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쩔 없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끝끝내 버릴 없는 무언가를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껏 헤매는 까닭은 아직도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끝에서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되뇌일  어떤 삶은 비로소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무엇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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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 저 일몰_서해/대부도, 풍경과 상처

** 김훈, 바다의 기별, 바다의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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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무섭지만

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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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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