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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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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26일 10시 39분 등록

다시 일상으로

어제 마실 개업을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고 찾아 주었습니다. 아직도 2% 부족한 부분을 말씀해 주시는 고객 분들이 고마웠습니다. 공부한다더니 공부는 어떡할거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좀 더 쉬었다가 하지 그새 몸이 근질거리냐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웃고 넘기면서 고맙다는 말만 하였습니다. 늦게까지 술을 먹었습니다.

시간이 참 더디게 흐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왜 시작했지 하는 후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냥 편하게 살면 되는데 ······. 잘 될지 걱정도 됩니다.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많습니다. 이 길이 내가 갈 길이 아닌데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한밤중에 잠이 깨어 아침이 올 때까지 멍하니 교차하는 마음속에서 안스러워 합니다. 그랬던 시간들이 지나 개업을 하고 나니 짐 하나를 벗었다는 후련함도 있습니다만 앞날에 대한 걱정 또한 적지 않습니다.

장사가 안 되는 레스토랑도 아니고(그래도 지역에서는 꽤나 된다하는 곳 중의 하나거든요), 직원들이 속 썩이는 것도 아닙니다. 메뉴 개발을 해 줄 요리 선생님도 있습니다. 잘될 수 있는 요건들이 그렇지 않은 요인들보다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왜 불안해하는 걸까요?

저의 가장 큰 장점은 적극성과 실천력입니다. 권투로 보면 문성길 선수 같은 전형적인 인파이터형입니다. 순간적인 집중력은 제가 봐도 인정해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깊이 있게 생각하고 앞뒤 좌우를 살펴 고민해서 결정하는 능력은 부족합니다. 이번 마실 건도 고민한 시간이 1주일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손해 본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이만큼 고민하고 재본 경우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단순무식한 스타일인 셈입니다. 저질러 놓고 걱정하는 셈이죠. 지난 10년 동안 낸 사업자 등록만 이번이 9번째 이니 더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니 마실 때문에 시작하지 못한 (주)하루경영연구소 까지 하면 딱 10개가 되네요. 어쨌던 장점보다 단점이 주는 두려움이 더 불안하게 만드는 느낌입니다.

경영이란 고객을 돕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변덕스러운 나비처럼 잡으려 하면 날아가 버리는 고객의 마음을 알아내는 일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누구나 고객을 따라 가는 것보다 고객을 리드하고 싶은 것이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희망일 겁니다. 수백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서 고객의 요구를 알아내는데 실패했던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업체들처럼 저도 저의 마음에만 맞는 고객의 마음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힘들게, 어렵게 개발해 만든 요리를 별로 먹어보지도 않고 맛이 있네 업네 하면서 툭 던지는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이겨낼 자신이 사실 없습니다. 고객을 돕는 일,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고객을 돕는 일일까요?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려 합니다. 그곳에 매여 있으면 영영 헤어나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느긋하게 레스토랑 경영에 관한 아이디어와 매력을 찾아보고 싶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는 겁니다. 달자는 ‘다시 세상속으로 뜨겁게’라고 블로그를 만들었지만 저는 ‘다시 일상으로 조용히’ 돌아오고 싶은 것이죠. 꿈 벗들을 만나러 서울로, 포항으로, 양평으로 놀러 가는 일, 그리고 선생님께서 어디 좋은데 가시면 떼써서 따라가는 일, 매일 조금씩 못 쓰는 글 연습. 이런게 저한테는 조용한 일상이죠. 아참 하나 더 늘었군요.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실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유일한 욕망이라는 것을 지난 두 달 동안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 아니라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그들 중 그렇게 하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다산초당에 갔을 때 선생님께서 저한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넌 뭐하고 싶은데? 뭐 하면서 살고 싶은데?” 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하고 놀러 다니고 선생님 하시는 일을 뒤에서 돕고 먹고 살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같이 늙어가고 싶습니다.” 돌아와 곰곰이 되새겨 보았습니다. 과연 그렇게 살고 싶은가? 그렇게 사는 것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러다 이런 생각도 들데요. 삶을 사는데 꼭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냥 살고 싶은 데로 살면 안 되는 것인가? 참 풀기 어려운 숙제 같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개업 준비로 다 잊어 먹고 살다가 며칠 전에 다시 떠올라 이런 저런 생각들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는 방식 속으로 고민들을 모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매일 조금씩 읽고 쓰는 일, 고전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 꿈 벗들을 만나고 네트워킹하는 것, 선생님 따라 다니는 즐거움 등등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놀이이자 비즈니스로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더라구요. 또 일을 벌리는 것 아니냐구요?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렇다 하더라도 재미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인데 어떨라구요. 이게 저만의 일상으로의 방식인 것을요.

IP *.118.67.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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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승
2006.04.26 17:24:01 *.109.152.197
자로...자네 정말 대단하군. 10년 동안 9개의 사업자등록증을 냈다니.
세무서에서는 이제 자네의 이름만 봐도 이럴 것 같네.
'또 이 친구군, 정말 대단한 친구야'
근데 그거 아나? 나처럼 몸보다 머리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자네 같은 사람들을 부러워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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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6.04.26 17:32:21 *.7.28.25
멋져요.
일상이 경영이고 이것이 사업이 되는 모습 최고입니다.
원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는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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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국
2006.04.27 09:32:40 *.157.208.151
어~!
벌써 개업을...?
연락도 없이!
축하드립니다.
가장 맛있고, 분위기 좋고, 기분좋은 레스토랑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에 꿈벗들 행사에 통채로 전세 내서 놀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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