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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2일 19시 21분 등록


 


                                  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지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옥상텃밭 가을걷이를 했다. 파랗게 살아있는 식물을 뽑기 싫어서 며칠 동안 옥상에 발길을 끊었다. 나름 정 떼기. 며칠 동안 비도 오지 않아 고추, 가지, 토마토 줄기는 바싹 말라있었다. 삐쩍 마른 대궁들만큼이나 흙도 먼지가 펄펄 날리도록 말라있었다. 다음 주인이 모종만 심으면 되게 흙을 고르고 깨끗이 정리해두니 보기에 좋았다.

 

옥상에서 소꿉놀이 같은 농사를 지으면서 간절히 소망했었다. 좋은 흙, 좋은 땅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식물들이 마음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땅, 땅이 부러웠다. 박스에 갇힌 흙에 식물을 심는다는 건 못할 짓이다. 나의 녹색 손이 근질거려 또 텃밭을 하게 된다면 파도 파도 흙이 나오는 땅에다 하리라.

 

내가 흙을 좋아하는 것은 식물이 좋아하기 때문이고, 흙에게 가장 부러운 것은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품고 있어주는 그 기다려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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