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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6일 17시 50분 등록

 

사랑의 파문波紋

 

 

 

자만하지 마십시오

이 꽃샘추위가 지나면, 아니면 언젠가는

당신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지금 나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알겠지요

벅차고 부끄러워 거칠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하나

당신이 깨우쳐준 생의 이치가

나를 너무 고통스럽게 합니다

언젠가 지금의 나처럼,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누군가 나를 사랑했습니다

늦은 밤, 마을 어귀 공중전화 옆에서 서성이던 그의

곱지 못한 얼굴에 허술한 옷차림

두 시간이 걸려 버스를 타고 온 그녀를 나는 외면했습니다

변두리의 깊은 밤이 얼마나 낯설고 두려웠을까요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도 그녀의 전화를 건성으로 받아넘기고 마침내

그녀는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지금의 내 형편을 생각하니

그때 모질었던 내 모습이 부끄럽고

거친 비바람에 가지가 찢기듯 가슴이 아픕니다.

조금만 더 부드럽게 보내줄 것을

거짓으로라도 사랑한다 말해 줄 것을

나에게 등을 돌리는 당신도

기러기 나는 가을이오면 사랑을 할 겁니다

아니면 흰 눈이 내린 밤 누군가 그리울 겁니다

그리고 한 번쯤은 사랑에 실패를 하겠지요

그러면 지금의 내 심정을 알겠지요

자만하지 마십시오

진달래 흐드러진 오후나 가을비 촉촉한 저녁

아니면 앞마당에 조용히 눈발이 쌓이는 밤

가슴 아픈 하루가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나를 떠올리며

미안해 할지언정 부끄러워하지는 마십시오

당신으로 하여금 내가 이렇게 많은 것을 깨닫고

잎새 푸르게 쑥쑥 자라나고 있지 않습니까

진정한 사랑도 배워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는 당신처럼 아름답지도 못했습니다

당신처럼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

가을이다. 사랑의 시집을 집어 들었다. 사랑도 수만 가지. 이 가을이 갈 때까지 사랑의 시만 읊조리고 싶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의 시를 그에게 다 속삭이고 싶고 절절한 이별의 시도 아름답게 여겨지리라. 사랑하는 그대를 떠나 보냈다면 사랑의 시는 모두 내 사연이 되고 글귀 하나하나가 가슴에 박히리라.

 

짐 정리하다 나만 알 수 있는 연서를 발견하고는 새벽이 올 때까지 잠 못 이루고.

가을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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