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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7일 16시 53분 등록


사원의 문 앞에서

 

 

칼릴 지브란

 

 

1

사랑을 말하려고

성스러운 불길에 내 입술을 씻었네.

사랑을 알기 전에는

늘 사랑의 노래를 불렀지만

사랑을 알게 된 후로는

입 속의 말들이 보잘것없게 되어

내 가슴 속의 곡조가 침묵 속에 깊이 잠겼네.

그 옛날

그대가 사랑의 비밀과 신비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었지.

이제 사랑의 예복을 덧입은 후로는

도리어 그대에게 사랑의 모든 길과

그 모든 놀라움에 대하여 묻게 되었다네.

그대들 중 누가 대답해 줄 수 있나?

나 자신과 내 안에 깃든 것들에 대하여

 

그대에게 묻겠네.

그 누가 나의 마음을 나의 마음에게,

나 자신을 나 자신에게 보여줄 수 있나?

이제 말해다오, 나를 지치게 하고

나의 희망과 기대를 녹여버리는

내 가슴에 타오르는 이것은 어떤 불길인지.

외로울 때 나의 영혼을 감싸주고

씁쓸한 기쁨과 달콤한 고통을 탄 포도주를

내 마음의 그릇에 부어주는

이 가볍고 부드러운 매혹적인 손길은 무엇인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며

들리지 않은 것에 귀 기울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응시하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헤아리고

이루지 못한 것을 소유하도록

밤의 긴 침묵 속에서

머리맡에 파닥이는 이것은 어떤 날개인지.

, 나는 잠 못 이루며 탄식하나니

내게는 기쁨의 환호성과 웃음보다도

탄식과 슬픔이 더 좋다네.

나를 쓰러뜨렸다가 다시 일으켜주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의 손길 안에서

날이 밝아와 집 모퉁이가 환해질 때까지

나는 거기 깨어 있다네.

그리고 잠이 든다네, 가라앉은 눈꺼풀 사이로

내 의식의 그림자들이 내내 나부낄 동안에.

또 나의 잠자리 위로

어느 꿈의 영상이 떠도는 동안에.

 


2

사랑이라 부르는 이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말해다오, 삶의 표정 뒤에 숨어 있고

우리의 생활 깊은 곳에 살아있는

이 신비한 비밀은 무엇일까?

모든 결과에 대한 원인과

모든 원인에 대한 결과로서 주어진

이 엄청난 해방은 무엇일까?

삶과 죽음을 끌어안고 거기서 꿈을 꾸게 해주는

삶보다 더 오묘하고

죽음보다 훨씬 더 깊은 이것은 무엇일까?

말해다오, 형제들이여, 말을 해다오.

그대의 영혼이 사랑의 투명한 손길을 느낄 때

그 누가 이 삶의 잠에서 깨어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아가씨가 부르고 있을 때

그 누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고향을 저버리지 않겠는가?

그대의 영혼이 사모하는 이를 찾기 위해서

그 누가 사막을 지나고 산을 오르며

바다를 건너지 않겠는가?

향기롭고 온전한 숨결과 음성과 손길을 가진 이가

기다리고 있다면

실로 세상 끝까지 따라가지 않을 청춘이 어디 있을까?

그의 갈망을 보시고 들어주시는 신 앞에서

영혼의 향불처럼 타오르지 않는 이가 어디 있을까?

 


3

사원의 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사랑의 신비와 미덕에 대하여 묻던 것은

불과 어제의 일이었네.

중년의 한 남자가 지나가며

지치고 찌푸린 얼굴로 말하였네.

사랑이란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섬약함이라오.”

그때 힘이 세고 건장한 체격의 한 젊은이가

노래하면서 걸어왔네.

사랑이란

우리의 삶에 늘 따라다니며

현재의 시간을 과거와 미래에 동여매는

하나의 결단이지요.”

그러자 슬픈 표정의 여인이 지나가며

한숨지으며 말하였네.

사랑이란

지옥의 구렁으로부터 온

어둠과 두려움의 독사들이 토해내는

무서운 독액과 같지요.

그것이 방울져서 목마른 영혼 위에 떨어지면

그 영혼은 거기서 잠시 취하게 되고

일 년 동안 깨었다가 영영 죽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젊은 아가씨가

장미빛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말하였네.

보세요, 사랑이란

새벽의 신부들이 용사들을 위해 떠올리는

감미로운 음료수랍니다.

그들은 일어나 별빛 아래 찬미하며

햇빛 아래 즐거워한답니다.”

잠시 후에, 거무칙칙한 옷을 걸치고

가슴팍에는 털이 듬성듬성한 남자가 와서

엄숙하게 말하였네.

사랑이란

젊음의 새벽에 찾아왔다가 저녁 무렵에 가버리는

일종의 어리석음이지요.”

그를 뒤따라 온 빛나고 평온한 표정의 한 사람이

기쁜 어조로 조용히 말하였네.

사랑이란

우리의 눈과 우리 마음 속의 눈을 밝혀주는

하늘의 지혜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처럼

세상의 어떤 것도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때 낡은 지팡이로 땅을 더듬으며

어느 눈 먼 사람이 지나갔는데

그의 음성에는 어떤 울부짖음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네.

사랑이란

영혼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짙은 안개이며

삶의 모습을 가리우는 베일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은

욕망의 그림자밖에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어

가파른 돌언덕에서 길을 잃고

황폐한 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의 메아리밖에

듣지 못하는 겁니다.”

그때 수금을 켜면서 노래하는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네.

사랑이란

섬세한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반짝여

그 모든 것을 비추어주는 천국의 빛이지요.

그 빛은

세상을 푸른 풀밭 속의 행렬처럼

삶을 깨어 있는 동안의 아름다운 꽃처럼 보여줄 거예요.”

그 젊은이 뒤로 발을 질질 끌며 오던 한 노인이

떨면서 말하였네.

사랑이란

조용한 묘지 속에서 슬픈 육신이 쉬게 되는 것이지.

내세의 보루를 지키며 영혼의 안식을 얻는 것이야.”

마지막으로 다섯 살 밖에 먹지 않은 한 아이가 왔는데

아이는 뛰어다니며 외쳤네.

사랑은 나의 아버지, 사랑은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말고는

아무도 사랑을 알 수가 없어요.”

 


4

이제 하루가 다 지나고

사원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으며

모두가 제각기 사랑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그 말에는 자신들의 동경과 열망이 담겨져 있었고

삶의 은밀한 신비가 드러나 있었네.

 

오가던 군중들도 제 갈 길로 가버린 저녁

모든 것이 고요해진 바로 그때

나는 사원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을 들었네.

모든 삶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얼어붙은 시냇물,

다른 하나는 타오르는 불길

그리고 그 타오르는 불길이 사랑이다.”

 

나는 사원으로 들어가

간구하고자 고개 숙여 무릎을 꿇었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렸네.

나를 빚으소서, 오 신이여

타오르는 불길로 연단하소서.

나를 빚으소서, 오 신이여

성스러운 불길로 나를 태우소서.”

 

 


-----

내 삶에서 사랑이 찾아왔을 때나 떠나갈 때나 내가 의지하고 위로 받았던 시. 깊은 뜻을 몰라 읽고 또 읽고, 읊조리다 위로받는 시.

한때 나의 우주가 오직 한 사람뿐일 때가 있었다. 그 우주가 사라지고 슬픔에 빠졌을 이 시를 읽었다. 부끄러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안다고 노래했던 사랑이 아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하늘을 우러러 말할 수 있는 진실한 한가지, 언제나 진정이었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일까 신비한 이 비밀은 무엇일까? 이 시를 처음 만난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르기는 마찬가지. 일생의 화두

삶이 얼어붙은 시냇물과 타오르는 불길이라면, 타오르는 불길을 선택해야지 않을까? 이제는 성스러운 불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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