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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6일 22시 44분 등록


뮤즈와 팜므파탈

 

    신달자

 


12시에 남자가 전화를 하면

요부같이 꾸미고

여우같이 날쌔게 달려가고 싶다

가서 불꽃 튀는 시선 하나로

남자의 몸을 댕겨서

삐거덕 삐거덕 생의 관절을

꺾게 하고 싶다

데릴라 장 뒤발 장귀비 장희빈

그런 여자처럼 남자의 생의

문고리를 꽈악 잡고 뒤흔들면서

드디어 전 생애를 박살내고

처절한 죽음에 이르게 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뮤즈

해 뜨는 아침의 창가로 다가서서

그의 겨드랑 은밀한 숲으로

입술을 오무려 후후후

예술의 뜨끈한 피를 수혈하고

남자의 온몸에 기어가는 푸른 심줄 속으로

폭풍 같은 활기를 쏟아 붓고

신통력의 화살을 그의 가슴에 겨누어

주저앉은 정신의 지팡이를 벌떡 일으키는

뮤즈

뮤즈

나는 그의 발밑에 도는 숨 쉬는 땅

머리 위에 도는

별 밭 하늘

처진 어깨를 따듯하게 감싸 올리는

부드러운 기적의 두 팔이고 싶다.

 

 

 

-----

때로는 원색적인 가사의 노래가 더 가슴에 들어오고 흥을 돋우듯이 시 또한 그럴때가 있다. 이 시를 읽고 나는 두 번 웃었다. 처음엔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 없는 나의 로망을 어찌 알았지 싶어서였고 또 한번은 시인이 신달자였기 때문이다.


나의 로망은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 때문이다. 남녀는 문을 닫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거침없는 손길로 사랑을 나누었다. 그들에게 시간은 멈춘듯했다. 얼마나 애틋하게 그립고 사랑하면 저럴 수 있을까? 그렇게 불타는 사랑이 부러웠다. 나에게 밤 12시에 전화할 사람도 없겠거니와 12시에 전화가 온다해도 영혼이 통하지 않으면 그 어떤 날쌘 여우도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으니 나의 로망은 로망으로만 남을 듯.

 

영혼이 통하는 한 남자는 멋지지만 어색한 신사. 팜므파탈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나는 폭풍 같은 활기를 쏟아 붓고 별 밭 하늘까지 어깨를 감싸 올리며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되리라.

 

그래, 이 시면 되었다. 로망은 이룬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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