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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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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3일 02시 32분 등록

소통이란 무엇인가

10기 김정은

 

이른 아침,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눈부신 햇살은 어둠의 흔적이 남아있는 하늘을 깊숙이 파고들어 나를 비춘다. 여기에 맑은 물 한잔 원샷! 신선한 공기, 눈부신 햇살, 맑은 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날마다 아름다운 아침이다.

 

사실, 이것은 내가 새롭게 연출한 아침맞이법이다. 내 몸 상태를 보다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 아침을 이렇게 맞이하기로 한 지 일년쯤 되었다. 이 습관으로 매일 아침 어제보다 내가 신선해졌음을 느끼고 있다. 자연은 매일 아침 공기와 햇살과 물로 나에게 소통을 시도한다. 마치 내 몸 속으로 들어와 나는 너와 같은 존재야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자연과 소통할 수 있음이 기쁘다.

 

소통이란 막힘이 없이 잘 통하는 상태를 말한다. 자연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소통은 불가피하다. 괴테는 그의 작품 <동화>를 통해 보다 밝은 것은 이며, ‘보다 신선한 것은 대화라고 이야기한다. 괴테에게 대화는 무엇이었길래 보다 밝고, ‘보다 신선한 것이라 했을까?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맑은 물을 마셔 몸을 신선하게 하는 것처럼, 사람의 정신은 대화를 통해 신선해 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15년 전의 일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회사의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했었다. 중국인 과 같이 지낼 때의 일이다. 중국 제조 공장 관련 업무로 꽤 오랜 기간 그녀는 한국에 머물게 되어 나와 함께 기숙사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나는 한글 세대로 아는 한자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중국말을 전혀 못했고, 그녀는 한국말을 못할 뿐 아니라 중국의 반미 세대로서 영어의 알파벳도 잘 몰랐다. 우리는 서로 바디랭귀지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이어서 결국 그림을 그려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부엌을 같이 써야 했던 그녀와 나는, ‘을 그려서 의견이 일치하면 밥을 해 먹고, ‘을 그려서 의견이 일치한 날은 빵을 사먹는 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녀가 가끔 조약돌 비슷한 것을 그려 보이면서 그것이 먹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지만, 나는 도무지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고, 이내 잊어버리곤 했다.

 

의 한국 체류 기간이 길어지자, ‘의 어머니는 소포를 보내었다. ‘이 활짝 웃으며 나에게 먹어보라고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조약돌만한 크기로 금박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나는 곧 그것이 조약돌 그림의 실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것의 맛은 어떤 맛일지 너무나 기대되었다. 정성스레 포장된 금박지를 벗겨내고 입에 넣는 순간, 나는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곰삭은 김치보다 더 시큼하면서도 쓰고, 불쾌하리만치 달콤하고, 기분 나쁘게 물컹물컹하면서 끈적끈적한 그것은 말린 과일이었다.

 

이후, 나는 미국에서 미국인 금발 미녀 크리스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으므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불편함은 없었다. 그녀는 미국 생활이 처음인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을 주었다. 짐 정리가 다 되었을 무렵, 그녀는 나에게 정중히 부탁을 해왔다. 내 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으니 그 냄새 나는 물건을 처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내 짐들을 확인해 봤지만 특별히 냄새 나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방 한구석에 자리 잡은 옷 가방을 수색해 보기로 했다. 냄새의 진원지는 옷 가방 속 고추장’, 바로 엄마가 싸준 고추장이었다. 개봉하지도 않은 고추장 병에서 그렇게 매캐한 냄새가 날지는, 또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두통을 일으킬 만큼 역겨울 수 있는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느끼한 미국 음식을 먹고 난 뒤 속 달래라며 엄마가 싸 주신 고추장! 그 고추장을 버리면서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입맛에 맞지 않았을 한국 음식을 먹으며, ‘말린 과일을 그리워했던 이 떠올랐다.

 

사람과 사람이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 언어만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말린 과일이 나에게 신선한 공기와 다름 없고, 고추장크리스에게 맑은 물 같았다면, 우리는 막힘이 없이 더욱 잘 했을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숨을 쉬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너와 내가 거리낌이 없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 같다.

 

몇 년 전 인도인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몇 차례 시행착오가 있었던 나는, 인도인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기 위해, 인도 음식을 맛있게 먹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 고추씨와 통후추를 갈아 넣은, 토마토와 감자, 아보카도가 주재료인 인도 카레는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국식 카레보다 훨씬 더 맛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이 힌두교도가 대부분일 것이라 예상했고, 그래서 소고기는 일절 먹지 않았다. 소를 신성시 하는 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소를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프로젝트는 성공하였고, 더불어 인도인 친구도 생겼다. 그 친구를 통해 힌두교나 카스트제도 등 인도의 특색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녀와 나는, 감히 비유하자면, 마치 괴테와 에커만처럼 서로의 정신을 열어 놓고, 깊고 깊은 공감이 오고 가는 신선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여인이 안에서 물었다.

"누구요?"

그가 대답했다.

"나요."

안에서 음성이 들렸다.

"가보셔요. 둘이서 쓸 만한 방이 없어요."

가련한 남자는 몇 년 동안 이리저리 방랑하다가 다시 여인 집으로 돌아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당신이오."

문이 열리고 사랑하는 여인이 그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슬람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우화 모음집에 나오는 위의 이야기는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알려준다. “제 마음속 깊숙이 계시는 분은 오직 선생님 한 분 뿐이며 어디에 있던 전 온전히 선생님의 것입니다” <괴테와의 대화 1, 2>의 저자 에커만이 괴테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문장이다. 에커만의 마음 속에 괴테가 있었고, 괴테의 마음 속에 에커만이 있었기에 그들은 서로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와 진정으로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숨을 들이쉬듯, 물을 들이키듯 마음의 문을 열어 상대를 받아들여 보자. 온 마음으로 상대를 품어 보자. 소통이란 내가 곧 너이고, 네가 곧 나일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야 보다 밝고, ‘보다 신선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IP *.65.152.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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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11:49:31 *.104.9.186

빛나는 글입니다.


내가 '당신이길...' 

그렇게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이것을 '수련'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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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21:06:03 *.65.152.249
빛나는 글! 감사합니다~~^^ 내가 당신이길... 아름다운 소통을 위해... 루미의 우화 보고 한참 생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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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14:55:26 *.196.54.42

"냄새의 진원지는 옷 가방 속 고추장’, 바로 엄마가 싸준 고추장이었다개봉하지도 않은 고추장 병에서 그렇게 매캐한 냄새가 날지는또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두통을 일으킬 만큼 역겨울 수 있는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느끼한 미국 음식을 먹고 난 뒤 속 달래라며 엄마가 싸 주신 고추장그 고추장을 버리면서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입맛에 맞지 않았을 한국 음식을 먹으며, ‘말린 과일을 그리워했던 이 떠올랐다."


참 애절한 대목입니다. 이런 가슴아픈 쓰라림의 기억이...


"‘의 말린 과일이 나에게 신선한 공기와 다름 없고,내 고추장이 크리스에게 맑은 물 같았다면우리는 막힘이 없이 더욱 잘 했을 것이다진정한 소통은 숨을 쉬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너와 내가 거리낌이 없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 같다."


소통의 진수를 길어 올리는군요^^ 엘리스님을 에이스님이라 부르고 싶네요. 최고란 뜻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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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21:10:05 *.65.152.249
경험에 의한.... 제대로 감잡은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괴테가 '특수한 경험으로 부터 보편성을 표현' '자기로부터 세계로 확장' 이라 한것을 떠올려 제 글에 담아 보려고 노력해 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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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0:11:26 *.14.90.161

"누구요?"

"당신이오."


참으로 멋진 구절입니다. 이만큼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요.

항상 엘리스님의 글은 기대가 되고 기대이상의 기쁨을

주시는 능력이 있으시네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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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8:22:45 *.65.152.249
아이고 감사드려요~~ 기쁨되셨다니 저도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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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2:14:42 *.94.41.89

"누구요?"

"당신이오."

 

시로 보니 가슴에 팍 와 닿습니다.

한달간 고생많으셨습니다.

좋은 글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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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8:24:39 *.65.152.249
그동안 고생많으셨지요? 저도 희동이님과 함께여서 즐거웠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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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2:53:09 *.177.80.32

루미의 시는 신비주의 답게 신비한 힘을 주네요..

글이 온통 신비한 금빛으로 물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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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8:26:55 *.65.152.249
오우~~ 감사드려요~~ 영혼으로 소통하는 글을 쓰고싶어 신비주의 시인을 끌여들여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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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3:23:02 *.94.41.89

소통이란 내가 곧 너이고, 네가 곧 나일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야 보다 밝고, ‘보다 신선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주옥같은 글 감사합니다. ^^* 한번도 쉬지 않고 푹 빠져 읽었네요.

더불어 바로 옆자리에 있는 외국인친구와 불통하는 경우가 많은 저를 깊숙히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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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8:28:58 *.65.152.249
감사드려요~~ 외국인 친구들과 소통하느라 고생 좀 했는데.... 그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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