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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3일 05시 14분 등록

 

 <10기 레이스 4주차 칼럼 조현연>

소통이란 무엇인가


  봄으로 가는 길이다. 늘, 봄이 시작되려면 비가 내렸다. 겨울의 독하고 매서운 기를 뺀 얌전한 물줄기가 마중물처럼 퐁퐁퐁 내려앉는다. 겨우내 경직되었던 내 어깨마냥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숨을 쉰다. 물기를 머금고 올라오는 꽃망울에 생기가 돈다. 흙과 나뭇가지를 전전하는 개미들 위로 빼꼼하는 새싹이 싱그럽다. 봄을 일러주고 물러나는 겨울도, 맞이하는 사물의 움직임도 조화롭고 따스하다. 대지 위에 내리는 축복인 듯 더불어 행복하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허기가 생긴다. 솟구치는 식욕은 결핍인 걸까.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나에게 혼자 파라다이스에서 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 자신 사교계 생활에 지치고 약혼녀와의 갈등이 지속될 때 자연으로 숨어들었다. 취리히 호수와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많은 서정시를 썼으니, 자연과의 소통 속에서 행복했으려니 싶은데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하긴, 괴테는 여든이 넘는 생애 동안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고 무수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즐겼다. 어느 한순간 흔들려본 결과 사람과의 관계맺음에서 더 행복하였던 모양이다.

 봄의 정취, 행복의 감흥 가운데 느껴지는 허기가 괴테가 외친 맥락에 맞닿아 있는 것일까. 살아 있는 인간에게 최고의 파라다이스는 홀로가 아닌 인간과의 부대낌 속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일까. 타인과의 관계맺음에서 행복해질 수 있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필 떠오르는 말이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까뮈의 말이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들과 지나치게 관계하지 말아야 한다.”

 지나침의 정도를 양적으로 삼아야 할지, 농도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람과의 관계맺음이 쉬운 일이 아님은 알겠다. 타인과의 관계맺음을 우리는 소통이라 말한다. 소통이란 곧 다른 것과의 관계다. 소통이란 단순히 언어적 의미를 해석하는 것 이상을 내포한다. 언어에 대한 이해는 적절한 반응으로 이어진다. 언어가 발화된 그 순간, 감탄하거나 동조하거나 반박하거나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한 행동이 100% 이루어진다고 확신할 수 없고 실제 그렇기도 하다. 이때 우리는 ‘의사소통이 안되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는 서로를 배척하고 질타한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찾아 나선다. 반발심에 더욱 더 나와 통하는 이를 찾는데 주력하지만 그런 행운은 쉬이 오지 않는다. 사소한 일들로 틀어지고 거짓과 불신 속에 일회적이고 도구적으로 전락한 관계를 보면 오랜 시간 교류하며 소통한 괴테와 에커만의 이야기는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어쩌면 그들 또한 도구적이고 주종적인 모습일 수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들의 나이, 살아온 환경, 사회적 지위, 그들의 사고와 생각들은 달랐고 성격 또한 많은 차이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이러한 상황을 뛰어넘어 점점 원만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소통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가 지속적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힘이었을까. 그들의 서로 다름에 대한 극복방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1823년 10월 19일 일요일

이날 정오에 처음으로 괴테와 함께 식사를 했다.


1824년 2월 26일 목요일

괴테와 함께 식사를 했다. 


1825년 3월 24일 목요일

괴테와 함께 식사를 했다.


1827년 1월 31일 수요일

괴테와 함께 식사를 했다.


1829년 2월 20일 금요일

괴테와 함께 식사를 했다.


1830년 2월 7일 일요일

괴테와 함께 식사를 했다.


1831년 3월 18일 금요일

괴테와 함께 식사를 했다.


1831년 5월 15일 일요일

괴테와 그의 서재에서 단둘이 식사를 했다.


 이것은 날짜별로 기록하고 있는『괴테와의 대화』중 시작하는 몇 구절을 뽑은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면서’, ‘식사를 하는 동안에’, ‘식사를 하기 전에’, ‘식사를 한 후에’로 대부분의 기록이 시작되고 있다. 에커만은 괴테와 많은 식사를 했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만났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괴테와의 대화』는 식탁위의 대화였다. 그런데, 왜 글의 시작이 그날의 대화 주제가 아니라 ‘식사’에 관한 언급이었을까. 처음 함께 한 식사에 대한 기억은 당연 에커만에게도 감회가 남달랐으리라. 그러나, 왜 무수한 날들마다 ‘괴테와 식사를 했다’로 시작한 걸까.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이러한 날은 더욱 많아진다. 오랜 세월만큼 깊어진 그들의 관계가 잦은 만남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띈 이 구절을 반복해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하, 식탁이 진정 소통의 공간이구나!

 식사가 소통의 시작인 것이다. 식사는 우리에게 에너지와 영양을 준다는 사실 이외에도 사람들의 의사소통이나 유대감을 강화하도록 해준다. 무릇 식사를 한다는 것은 내 음식을 타인과 나눈다는 것이고 또한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음식을 선정하는 일 뿐만 아니라 음식을 함께 하면서 타인과 속도를 맞추고 음식을 권하며 대화의 주제를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해와 배려라는 소통의 강화 요인들이 필요로 되는 것이다.

 이해와 배려는 갇힌 사고를 열어 제끼고 내 무지와 편견을 걷어 버리는 일이다. 사소한 거짓 또한 행하지 않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식사함에 있어 똑같은 음식을 좋아하고, 똑같은 속도로 식사를 하며, 똑같은 주제에 흥미를 느끼는 일은 흔치 않다. 그저 그렇게 되도록 서로가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조차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시는 그 사람과 식사하는 일은 피할 것이다.

 풍성한 식탁을 두고서 냉랭함을 가득 안고 있다면 무엇 때문일까. 하, 아마도 요즘은 스마트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공간에 홀로 앉은 사람들이 제각각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마주 앉아서 그리고 4인용의 식탁에서, 또한 단체로 둘러앉은 식탁에서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어색함을 떠나 씁쓸하다. 어쩌면 각자의 스마트폰을 검색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커피를 마시는지 모른다. 홀로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운 모양이다. 그만큼 인간은 소통을 원하면서도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것 역시 소통방식이라 얘기하고픈 건가!

 어쨌든 냉랭한 식탁은 타인에 대한 이해, 배려, 공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통을 얘기할 때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아니다. 이 말엔 동의하지만 그 선행은 ‘나에 대한 이해’여야 한다. 사춘기를 벗어나서도 인생 전체가 질풍노도의 시기인 요즘의 우리는 지속적으로 방황하고 갈등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나에 대한 이해 없이 종속적인 삶을 강요받아 온 우리는, 참다운 ‘나’를 마주할 기회를 잃고서 세상이 욕망하는 것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타인과 소통할 수 없다. 그런 상태로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종국에는 사라질 거짓의 감정일 뿐이다. 나 자신과 소통하고서야 타인의 요구와 상황에 민감해질 수 있다. 이것이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먼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더불어 소통을 위해서는 공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 적극 추천하는 것이 ‘비를 맞는 이와 함께 비를 맞아라’는 것이다. 비를 함께 맞는 것이 온전히 그를 이해하는 행동이라 얘기한다. 아니다. 비를 함께 맞아줄 수는 있다. 그러나 비를 맞지 않도록 해줄 필요도 있다. 우산을 씌워주거나 비를 맞지 않는 장소로 이끈다거나. 그 모든 소통의 상황은 일면적인 것이 아니다. 여러 상황들이 총체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우리는 한 면만을 가지고 행동해서는 안된다.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면 더욱 좋다. 많이 알면 보인다고 했던가. 우리의 지식이 그 상황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비를 맞고 있는 자는 비를 맞고 싶어서일 수 있다. 그러나 우산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비를 맞게 된 상황과 원인을 내버려 둔 채, 무조건 같은 상황에 빠지려 해서는 안된다.

 식사를 함께 하는 행위가 시작되었고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소통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내 주는 것은 아니다. 식사는 이루어졌고 다음 초대도 이어졌으나 소통되지 못한 안타까운 식탁을 우리는 안다. 스마트폰이 함께 한 식탁을 넘어 그 유명한 여우와 두루미의 식탁이 그것이다.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거짓된 마음으로 이루어진 식탁이다. 영양 많은 음식으로 각자 체력을 비축하였을지는 모르나 그들은 영원한 허기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봄비도 그치고, 허기와 식욕을 느끼는 나는 식탁을 차린다.

 거기 당신, 함께 식사 하실래요?

IP *.177.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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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11:39:19 *.104.9.186

저는 말씀하신 것 처럼 '공감능력'이 낙제수준인 것 같습니다. 

평생이 질풍노도의 시간이고 이기적인데다 냉소적이니 말하는 것도 말 듣는 것도 매우 힘이들더군요.

같이 식사를 하는 것도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종목이 없으니 헐렁하고 썰렁할 따름입니다.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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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2:09:52 *.177.80.32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게다가 이론과 실천이 동일하게 안되는 것이^^:::

노력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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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15:54:42 *.196.54.42
"봄비도 그치고, 허기와 식욕을 느끼는 나는 식탁을 차린다.

 거기 당신, 함께 식사 하실래요?"


물론이죠, 봄나물 꺾어둔 야외식탁이면 금상첨화겠죠?


"왜 글의 시작이 그날의 대화 주제가 아니라 ‘식사’에 관한 언급이었을까?

식탁이 진정 소통의 공간이구나!"


아, 이런 시각도 있구나! 날카로운 통찰의 순간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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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2:15:51 *.177.80.32

요즈음 봄나물이 한창이죠~~정말 맛있어요.

나물 밥상 같이 할 수 있음 정말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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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20:59:15 *.65.152.249
소통되지 못한 안타까운 식탁...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거짓된 마음으로 이루어진 식탁이다. 영양 많은 음식으로 각자 체력을 비축하였을지는 모르나 그들은 영원한 허기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멋진 표현이네요~~ 문단마다 반전이 있어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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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2:24:07 *.177.80.32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전은..저도 모르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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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09:57:44 *.14.90.161

"식사가 소통의 시작인 것이다. 식사는 우리에게 에너지와 영양을 준다는 사실 이외에도

사람들의 의사소통이나 유대감을 강화하도록 해준다."


이제야 알았내요. 왜 싫어하는 사람이랑 밥을 먹으면 체하는지...

소통이 되지 않기에 내 몸의 소통까지도 막아버리는 것을.

식사와 소통의 관계...참신하고 좋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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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2:31:52 *.177.80.32

우리 인생에서 먹는 건 중요한 일이라니까요^^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왕참치님도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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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2:36:00 *.94.41.89

" 봄비도 그치고, 허기와 식욕을 느끼는 나는 식탁을 차린다.

 거기 당신, 함께 식사 하실래요?"

 

그럼요. 제것은 특별히 신경써 주세요!

 

한달 동안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달이 어찌나 짧던지.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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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3:20:04 *.94.41.89

글을 읽고나서 저도 모르게 "예" 라는 대답을 하게 되네요 ^^* 다같이 식사하는 장면을 꿈꿔봅니다~

'비를 맞는 이와 함께 비를 맞아라' 라는 부분이 마음에 콕 박히네요. 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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