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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3일 11시 53분 등록

10기 레이스 3주차_인문학이란 무엇인가?

2014. 2. 23 정수일


“대학의 길은 본래 ‘밝은 덕을 다시 밝히는데 있고, 백성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잘 돌보는데 있고, ’최고의 선‘에 머무르는데 있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新)民 在止於至善” _ 대학


지난 며칠간 날씨가 험상궂었다가 밝았다가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장구름이 칼바람을 몰아 왔다가 봄 머금은 해에게 밀렸다 하는 것이 종잡을 수 없다. 하루의 변화가 이렇게도 무쌍한데 일생동안의 변화는 또 얼마나 무쌍할 것인가. 지난 몇 주간 나는 풍성했다. 삶이란 주제를 두고 읽고 찾고 생각하고 다듬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닿지 않으면 잠시 밀쳐 두고 다른 길을 뚫어보려 했다. 머리 쓰는 훈련은 이미 되어있다고 생각했었건만 ‘본질’을 묻는 새로운 질문형식에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질문의 차원이 바뀌면 사고의 틀과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표피적이고 현상적인 것들에 대한 고민들과 그런 것들에 관해 단련되어 있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를 때와 내릴 때, 그리고 평지를 걸을 때 사용되는 근육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등산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생각의 근육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좀 더 나다운 삶, 참 나로 살고자 한다면 ‘내가 누구인지’부터 물어야한다. 밖으로 향해 있던 화살표의 방향을 안쪽으로 돌려야 하는 것이다. 


‘풍요 속에 빈곤’이란 말은 오늘은 사는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으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화려하지만 초라하고, 더 많이 먹지만 허기진다. 수많은 관계 속에 있지만 외롭고 더 많이 알지만 정작 아는 것이 없다. 배만 부르면 다 해결 될 줄 알았지만 세상은 오히려 더 허약하고 난폭하다. 우리는 따뜻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 물질은 배를 채우고 살을 찌웠지만 다른 ‘그 무엇’들은 오히려 황폐해졌다. 물질만으로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 무엇’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것을 찾으려 했다. ‘다시 인문학’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세기에 걸쳐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의 영어 어원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되었다. 한자로도 ‘사람’과 ‘법도’와 ‘배움’을 아우르고 있으니 ‘사람의 법을 배운다.’ 정도로 해석해 낼 수 있겠다. 즉, 인문학이란 ‘인간다움’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으로 이해하면 본연의 뜻에 닿지 않겠는가. 이른바 문사철로 대별되는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인문학을 온전히 설명하기에 빈약하다. 또한 과학과 같이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들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인식되는 것도 불가하다. 인문학은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의 바탕을 이룬다. 본질에 근거하지 않는 현상이 존재할 수 있는가. 따라서 인문학은 다른 모든 백가지 학문들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통찰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이 왜 필요한 것인가. 인간에게 ‘인간다움’이 없었더라면 인간의 역사는 ‘매일 먹고 싸다가 죽었다’는 단 한 줄의 역사였을 것이다. 인문학은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한 우리의 고뇌와 경험들이며 그 결과물들이 기록으로 남아 ‘고전’으로 전해져 오는 것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은 우리 모두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누구도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서 ‘이거다’라고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것은 ‘삶의 유일성’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중구난방이고 말하는 사람마다 넓이도 깊이도 다르다. 스마트 폰이나 텔레비전 매뉴얼처럼 삶에 대해서도 그대로 따라만 하면 되는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인간은 똑똑하다. 그래서 비교적 신뢰할만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인류역사를 통틀어 가장 ‘인간답게’ 사신 분들의 삶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이분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년동안 명멸한 인간사에서 가장 인간답게 살다 가신 분으로 공인된 분들이다. 이를테면 공자님, 예수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등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분들의 삶을 말하는 것인데 바로 고전, 경전들이 그것이다. 이 분들의 삶과 가르침은 이렇게 기록으로 남아 수천 년을 건너왔다. 이런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참나(이성, 로고스, 양심)를 통하여 인․의․예․지․신(or 사랑 or 자비) 발현하는 자명한 삶, 즉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이 후 다른 모든 인문학적 담론과 저작들은 이분들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러한 담론과 저작들의 가치가 폄하되거나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살을 붙이고 시대정신에 맞는 언어로 각색하거나 재해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지혜는 그 시대의 사고와 언어로 읽혀야 온당하기 때문이다. 기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인문학적 통찰들은 이렇게 한번쯤은 씹어서 부드러워진 것들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난 몇 세기동안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먹고 싸고 노는 것에 몰두해 왔다. 효율은 모든 가치에 우선했으며 여기에 배치된다면 인간마저도 최적화의 대상이 되는 황망하고 삭막한 세월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에게서 소외되고 물질에 예속되어 스스로를 돌보고 다독이지 못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성현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매뉴얼 어디에도 돈 많이 버는 것이 인간이 사는 목적이라고 적시해 놓거나 가르치거나 그러한 의미로 말씀하신 대목은 없다. 이제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꺼져가던 인문학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염려스러운 것은 ‘인간다움의 탐구’라는 인문학 본연의 목적과 기능을 망각하고 다시 상업적 논리나 유행성 패션상품, 치유 등의 부가적 기능(효능)으로 치우쳐 왜곡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차제에 인문학의 중흥과 융성을 이루어 지구촌 전체에 인․의․예․지․신이 넘쳐 발현되었으면 좋겠다.


IP *.104.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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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3 16:51:03 *.217.6.115

인문학에 대한 애정을 설파하는 훈장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려 지네요 ^^

레이스도 이제 종반전으로 접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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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4 10:25:41 *.94.41.89

"좀 더 나다운 삶, 참 나로 살고자 한다면 ‘내가 누구인지’부터 물어야한다. 밖으로 향해 있던 화살표의 방향을 안쪽으로 돌려야 하는 것이다. "

"살을 붙이고 시대정신에 맞는 언어로 각색하거나 재해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염려스러운 것은 ‘인간다움의 탐구’라는 인문학 본연의 목적과 기능을 망각하고 다시 상업적 논리나 유행성 패션상품, 치유 등의 부가적 기능(효능)으로 치우쳐 왜곡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와! 칼럼 멋지십니다. 글 속에 인문학에 대한 생각과 사랑이 묻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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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4 15:52:01 *.196.54.42
"인간은 똑똑하다. 그래서 비교적 신뢰할만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인류역사를 통틀어 가
장 ‘인간답게’ 사신 분들의 삶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처음 가는 길이 어렵지 누구 걸 베끼는 건 쉽지요. 똑똑한 분들 덕분에 우린 편하게 된 셈이네요 ㅎㅎ 다만 인문학과 친구가 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글이 반듯하고 단정하여 아주 모범적입니다. 경륜이 많으신듯.. 한 수 배워 갑니다.
마지막까지 파이팅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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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4 18:49:27 *.94.164.18

"풍요 속에 빈곤

 배만 부르면 다 해결 될 줄 알았지만 세상은 오히려 더 허약하고 난폭하다.

삶’은 우리 모두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누구도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서 ‘이거다’라고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것은

 ‘삶의 유일성’ 때문이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의 적합함이 마음에 와 닿네요.

사유한 흔적과 글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마주막 주도 신나게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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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5 09:00:12 *.124.98.251

와~정결한 느낌을 받고 갑니다..생각의 근육을 더욱 키울 수 있도록 배워갑니다..

남은 한 주도 즐거이 화이팅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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