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친척두 없이...

그리고 반골들...

자기가 밟고 있는 땅의 체제를 향해.

골수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는 아들과 문상온 선배와 선배의 아버지인 빨치산.

서로 자기 고향에 총부리를 겨누며 치열하게 살았던 냉전의 삶과 그 자식들의 대를 이은 반체제 액션스릴러물.

그리고 머나먼 통일의 길.





벌써 몇년전 일이다. 한여름 삼복더위 휴가철 한참때에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된 친구로 부터 연락이 왔다. 도깨비 같이 10년 가까이 되도록 아무 연락이 없던 친구. 아버지께서 돌아가셧다고. 가족과의 계획을 취소하고 황금시즌을 제껴버리고, 달려갔다. 어려서 죽마고우로 같이 자라고, 80년대를 거치느라 많이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청춘. 병원에 가보니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못일어 나고 돌이킬수 없는 피안의 세계로 가셧다고. 친척이라고는 아무도, 친구도 없이. 어머니와 친구만 있고. 친구 외삼촌은 사람을 모으느라 전화붙잡고 통화하느라 정황이 없었고, 나와 같이 온 친구에게도 재차 와줘서 고맙다고. 매형이 북에서 혈혈단신 남하하여 이렇게 갔다고. 황해도 출신으로 고향한번 더간다고 KLO활동하며 고향땅을 몇번 더 밟으셨는지, 어려서 친구집에 놀러 가면 그저 좋은 이웃집 아저씨로 받아주시던 웃음. 그래서 그런지 친구는 버르장머리 없게 자랐다. 중딩때 꿈이 서울시 지명붙은 동네란 동네에는 애인하나씩 박아 두는데 꿈이라고 하는 카사노바,루소,돈환,난봉꾼을 자처하는 귀엽고도 망가진 꿈을 가졋던 소년시절을 거쳐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다 운동권 형을 친구로 둔 결과로 근주자적, 근묵자흑의 길을 걸으며 사상적으로 외골수로 치달어, 박노해라인을 거쳤다. 그 운동권형과 동생인 친구는 손털로 자기 생업에 가벼렸는데 이친구는 첫끗발이 개끗발, 늦바람이 무섭다고 노가다 띤 돈으로, 놀러 갈때마다 방안에는 이념서적으로 사방을 차곡차곡 메웠고, 나를 회유했지만 나 또한 누구인가. 군대생활 거지같이 하고, 남들은 내게 파란만장하다지만 바람잘날 없이 보내고, 인생무상으로 조용히 머리식히고 취권영화의 소화자처럼, 영웅문의 거지 홍칠공처럼, 노숙자같이 허허실실 살아 가는 놈한테 그런 유혹은 하나의 사치였다. 그리고는 세월이 흘러 그친구도 잠수타고 내 기억속에 사라지고 각자 갈길가다 연락이 왔다

유가족이라고는 아줌마와 친구뿐. 썰렁한 장례식장. 외가집으로 친척에 친척까지 대동해 머리수 채우고 그렇게 저녁부터 날이 새고, 화장터로 떠나는길. 그 와중에 선배라고 한사람이 찾아 왔다. 대화하는 모습이 논리 정연하고, 해박한 지식과 설득력등 그런데 듣다보니 박노해라인의 같은 운동원이 었다. 아버지가 지리산 빨치산 출신이라고, 대를이어 반골이라면 편벽하고 치우친 표현일까. 활동을 하며 운동권 후배들이 고무되어 물어보는 부친의 빨치산활동에 대한 궁금증으로 영웅시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렇게 낭만적인 삶이 아니라고, 그냥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을 했다. 막 초입에 들어온 치기어린 학생들의 호기심이란게 그런거라고. 그 와중에 장례차는 벽제 화장터에 도착했다. 절차를 거쳐 대기하며 시간을 때우며 순서로 입관하고 기계방아 찧는 소리와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 가는 길을 삶처럼 비로 적시나 보다. 뇌리를 스치는 방아소리의 진동음과 충격. 화장터에 몇차례 오다보니 감각도 무뎌졌나 보다. 삶이란게 원래 그런건데 그걸 인정하냐 안하냐에 따라 고생의 바다냐 속편하냐라던 부처의 경구처럼 스트레스란게 받느냐 흘려버리느냐의 차이인걸로 여기며. 그렇게 한 줌의 가루를 보듬으며 화장터를 뒤로 했다. 차는 다시 절을 향해 떠나고 '용의 눈물'의 비운의 공주가 머리깍고 중이 되어 무기들아 잘있으라고, 왕자의 난을 뒤로 한채 이방원이 보기 싫어 등돌리고, 궁궐이 보이지 않는 절로 향해 떠난, 권력투쟁이 싫어 세상만사 뒤로한채 출가한 바로 그절로 유골은 그렇게 향했다. 교차하는 만감. 권력무상의 공주. 체제를 부정한 사람들. 대를이어 네부자가. 이토록 삶이 힘겨운 걸까. 조선시대초의 그 공주가 출가한 분위기의 절간은 조용한 적막만이 흐르고 다들 배례하기가 바쁘다. 말도 없고, 다른 이유도 없이 그저 잘 가시라고. 고향에 못갔지만 영혼은 이제 안식처를 찾았으니 편히 쉬시라고,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과 축축하고 습한 삼복더위의 비오는 어느 오후. 정신없이 극락왕생을 기원하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목탁소리도, 독경소리도, 빗소리도 멈췄다. 유골을 안치하고 돌아서는 발길. 친구는 묵묵했다. 담담했다. 철없이 자랐지만 홀로서기하고 혼자 장사하느라 지나간 세월처럼 말은 안해도 그래 그냥 그렇게 사는거야 하며 왕자의 난, 용의 눈물사를 그렇게 나왔다. 집에 까지 같이 가자고 했지만 차마 같이 갈수가 없었다. 나 그만 간다 중간에 도서관이 있어 거기서 책을 보며 머리좀 식히겠다고 했다. 잘가라. 여기서 헤어지자. 수고 많았다.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보았지만 책장의 글은 차라리 그 KLO대원 아버지의 삶을 줄거리로 삼아 읽는 듯 했다. 눈따로 읽는 마음 따로. 그리고 도서관을 나서며 지나던 또하나에 화장터. 벽제화장터가 활성화되기 전의 옛날의 화장터라고 했다. 지금은 공공시설로 바뀌었지만. 오늘은 화장터를 두개지나는구나. 삶이란 죽음이란 이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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