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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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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8일 10시 50분 등록


희망찬 월요일입니다.
왜냐구요?
이틀만 일하면...
연휴가 계속되지 않아요.
하지만 왠 비는 이렇게 오는 지...
농촌 도시 할 것 없이
명절의 즐거움보다는 수심이
큰 것 같더군요...
어제 밤 9시뉴스 끝나고 방송되는
취재파일4321에서 한 노가다 아저씨
사연이 방송되더라구요...
비가 줄창 오니까 일거리가 없어서
하루 한끼밖에 먹지 못한다는데...
일이 없으면 3시간을 걸어서
종로 조계사를 찾아간다더군요.
그리고 내생에는 좀 좋은데에서
태어나도록 해 줍시사고 빈데요...
어찌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맘 먹기 따라서 바로 극락이라는데...
어쨌든 아래 얘기 좀 들어보세요...



북경어언대학 발행 중국어 교재에 실린 이야깁니다.

집안이 무척 가난한 농촌 출신 여학생이 북경에 와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슬픈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폭죽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느닷없는 폭발사고로 두분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갑자기 사고무친이 된 19살 난 이 여학생이 눈물을 머금고
퇴학원을 제출하고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어야 하게 된
것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교수 한 분이 이 여학생에게 학보사에 일자리가 있는 지
알아봐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학보사 편집부에는 마침 교정을 보는 직원 한 사람이
부족했고 이 여학생은 그곳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학보는 열흘에 한 장이 발행되는데,
학보사에서 그녀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월급은 꼬박꼬박 지급됐습니다.
그리고는 4년의 대학생활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습니다.
결국 그녀는 매월 그녀에게 지급되던 350원이라는 돈이
학교당국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편집부 직원 5명이
똑같이 추렴해 그녀에게 건네줬던 돈이라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학보사에는 교정을 보는 일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이 일이 그녀를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몰랐겠지요.
4년 동안 편집부 직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입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졸업을 하고 학교를 떠나갔습니다.
편집부 직원 다섯 사람은 왠지 허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누구의 제안이랄 것도 없이
자신들의 월급에서 다시 일부를 떼어 한데 모아서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농촌출신 학생 하나를 또 다시 교정을 보는 직원으로 고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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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읽고 중국인 선생에게 물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실화냐고...
그랬더니 당연히 실화가 아니겠느냐고 대답하더군요.
지어낸 얘기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주변에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 지어낸 얘기겠냐고... 말하더군요.
그리고는 중국은 농촌출신들이 도시에 와서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하면
보통은 고향에 돌아가 농촌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이렇게 농촌학생을 공부시키는 일은 곧 인민을 위한 일이
되는 셈이라고 덧붙이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중국이 한국보다 나은 나라"라고...
아직은 아름다운 중국의 이런 모습이 자본주의의 파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머지 않아 사라져 갈 것이란 점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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