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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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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3일 03시 20분 등록

대학교 1학년 사진수업시간 이었다.

사진학 교수님이 다음주에 제출할 사진촬영 주제를 정해주셨다.

사회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오라는 주제였다.

그 날 1년 먼저 사진수업을 마친 선배와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선배님, 이번주 주제가 소외된 사람들을 담아오라는 것인데, 마땅한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니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하고 부탁하였다.

그 선배는 1년전에 같은 주제를 받았는데, 파고다 공원에 가서 소외된 노인들을 찍는 것이 좋게 평가 받았다고 하였다. 그 선배는 노인들은 사진 찍히는 것에 별 반응이 없으니 찍기도 쉽다는 팁까지 주었다.

선배의 얘기를 듣고, 신문을 조사해보니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된 갈 곳 없는 노인들이 파고다공원에 모인다고 하는데 이 들을 위해서 많은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는 기사가 여럿 있었다.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생각해 보자며, 방송에서도 자주 거론하기도 해서 내 눈으로 직접 소외된 노인들의 실상을 리얼하게 찍어보자는 마음으로 다음날 파고다 공원을 향했다.

파고다 공원의 입구에 다다르자 주변에는 많은 노인들이 돋보기부터 태극기등 쉽게 접하기 힘든 옛 물건등을 팔기 위해 입구 주변에 자리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파고다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얼마 걷자마자 이상한 느낌들이 나를 감싸왔다.

냄새였다.

예전 친구네 할아버지방에서 난 그런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미간이 찌푸려 졌다.

담배찌든 그런 냄새가 왠지 낮 선 오지에 들어선 느낌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내 눈에는 수많은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비쳐줬다.

모두 머리가 하얗고, 피부가 쭈글쭈글하며, 구부정한 모습들, 모두 나와 달랐다.

길에서 노인을 뵈었을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그것은 놀라움이자 두려움을 갖게 하였다. 나만 다른 종족일꺼라는 느낌마저 들자.

어서 어서 대충 찍고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의 눈은 가장 가까이에 모여있는 노인들을 향했다.

찰칵! 찰칵! 가까이 가서 찍기가 두려운 나는 노인들의 시선을 찍지 못하고, 뒷 모습만 담고 있었다. 왠지 호통을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했고, 잘못하다간 수많은 노인들에게 집단으로 야단맞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에잇! 까짓 거 그냥 빨리 찍어보자!라는 마음이 생기자

 

더 가까이 다가가 찍기 시작하였다.

찰칵! 찰칵!

그 순간 카메라 렌즈속에서 마주친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왜 맨날 젋은 놈들이 여기와서 찍어대는지 모르겄네. 미친놈들 허군

그러자 바로 옆 할아버지도 한마디 하는 거였다.

거 어디 방송사에서 나왔 수? 어제도 찍어가는디 왜 맨날 헛소리만 하는지 모르겄네

아니다 다를까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니, 몇일 전 방송에서, 소외된 노인네들을 돕자는 취지로 방송을 했는데, 이것이 영 맘에 안 든다는 것이었다.

한 노인은 그 방송 때문에 자식들이 파고다 공원에 가시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여기 있다간 이 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까봐 덜컥 겁이 났지만, 그냥 가면 더 큰 욕을 먹을까봐 가만히 부동자세로 말씀을 듣고 있어야 했다.

그때 나는 소설속에서나 볼 인자하신 할머님을 뵙게 되었다.

한참 손자뻘인데! 뭘 그렇게 야단들 치시나!~ 가만히 보니 숙제좀 하려 하는 것 같은데 어서어서 찍고 가 어여~

이건 정말~ 여하튼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웅성웅성 소리가 나는 다른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손엔 땀이 흥건하였다. 너무나도 긴장한 탓일까!

카메라를 살짝 가린채 노인들이 모여있는 곳에 이르렀다.
장기두는-할아버지들.jpg

그 속에서 두분이 장기를 두고 계셨다.

각자 자기의 수가 맞다며 훈수두는 노인들부터, 팔장을 끼고 넌지시 바라보는 구경꾼들등

여럿이 모여 두 노인의 장기판에 한 몫을 하고 있었다.

거기! 거기! 허허! 하며 외쳐대는 꾸경꾼들 속에서 입장이 난처해진 백발의 할아버지가 버럭 성질을 내는 것이었다.

이 판은 저 양반땜시 내 더 이상은 못두겄다! 에헴 하니

다른 할아버지가 요기다 두면 좋을 듯 헌데라며 훈수를 두니,

백발의 할어버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좋은 훈수로 차를 잡아버리는 것이었다.

이번엔 다른 쪽 할아버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다음 상황도 뻔하고, 사진찍을 꺼리도 별로 없는 듯 싶어 자리를 옮겼다.

 

그래도 파고다 공원을 처음 들어설때의 긴장감은 조금 없어진 듯 하였다.

호통치는 할아버지들의 순박함이 구수하게 느껴져서 일까?

 

그리고 주위를 빙 둘러보니, 더 많은 노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거기에는 턱수염 긴 할아버지가 자리를 쫙 펴고 멋들어진 붓글씨로 가훈 같은 것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모여 있는 할아버지들 마다 한껏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알아듣기 어려운 옛 고사성어부터 공자왈 맹자왈 하시며 심도 깊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이런 분들도 여기에 있구나! 하고 생각할 즈음

 

어디선가 판소리의 한 구절이 내 귀에 들어왔다!

그 소리를 향하여 보니, 한복을 입은 한 할머니가 모여있는 노인들을 향해 칼칼한 목소리로

판소리를 읖는데~

사랑 사랑 내사랑아 어허 둥둥 내사랑이지~

판소리 구절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신명나고 구슬픈 목소리는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잡아두었다.

판소리가 끝나자 장구 소리에 맞춰 노인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재미있었다. 구수한 고향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늘 밑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노인들을 향했다.

많은 노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난 사진기자처럼 옆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그 광경을 포착하였다.



치료해주는-할머니.jpg


한 할머니가 노인들의 맥을 짚어보고, 노인들의 상태를 살펴봐 주시는 것이었다.

사회봉사원 같지는 않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신과 비슷한 노인들을 치료해 주는 것 같았다.

이 곳은 언론이나 신문에서 본 그런 모습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파고다 공원을 들어설 때의 낯선 느낌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실 그 자체를 보기 시작했다.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할아버지, 운동을 하시는 할아버지 집안 얘기를 하는 사람들, 누군가 아픔이 있는지 상담을 하며 위로하는 분들등 너무나도 다정한 하나의 사회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좀 더 자신감있게 그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찰칵! 찰칵!



그 순간 갑자기 주변의 노인들이 공원안의 팔각정으로 향했다.

영문도 모른체 나 역시 뛰어가 보았다.


섹스폰할아버지.jpg


팔각정에는 한 검은색 제복을 입은 노인이 섹스폰을 들고 서 있었다.

70세는 넘어 보이시는 모습이었는데, 섹스폰을 들고 있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가 그 분의 앞에 설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팔각정 주변에는 파고다 공원의 노인들이 다 모였다 싶을 정도의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있었다.

여기 저기서 조용! 조용! 서로서로 고요를 외쳐댔다.

그리고 섹스폰이 연주되었다.

오드리햅번 주연의 타파니에서의 아침을~ 주제곡 문리버

 

~ 빠밤~ 빠바바바밤~ ~ 빠바바바담 ~ 빠밤

노인들은 쥐죽은 듯 고요하게 음악을 경청하고 있었다.

마치 작은 음악회에 서 있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계신 노인들에게 낭만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 노인들에겐 오드리햅번이 자기의 젊음과 함께한 스타였을 것이고, 그 낭만은 집에서, 거리에서 이 사회속에서 드러내기 어려운 갈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서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그것은 자유였다.

자식이 해줄 수 없는, 이 사회가 마련해 줄 수 없는 그런 자리를 파고다 공원은 조용히 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내가 외부에서 본 것은 본 것이 아니었구나!

진실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존재했구나!

누가 뭐라하든 노인들은 그 나름대로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또 다른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발걸음을 뒤로 하고, 공원을 나설 때 공원 끝 벤치에 술에 취해 누워있는 한 젊은이를 보게 되었다.

불쌍한 건 그들이 아니라,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우리들 자신들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파고다 공원을 나왔다.

웃음이 나왔다! 마치 깨달음을 찾아 절을 찾고, 깨달아서 나오는 그런 수행자의 느낌이었다.

 

노인들은 묵언으로 나에게 말해주었다.

 


관찰은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관찰을 통해 깨닫는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그것은 내 새로운 생각의 탄생이었다!


아래 그림은 내가 파고다공원을 나와서 인상깊었던 느낌을 그려본것이다.
노인들에게 아름다움을 낭만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식사하시는-할아버지-밑그림.jpg

IP *.52.9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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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03:26:35 *.52.96.15
2차 첫째주 과제를 제시하고 보니, 내가 무슨말을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멋드러지거나 보여주는 말보다, 그냥 내 경험상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네요.
갈수록 심해질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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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03:28:23 *.52.96.15
16년전 사진을 스캔받고 보니 상태가 너무 흐릿하여 당시의 느낌이 잘 날지 모르겠네요.
좀 아쉽지만, 그냥 빗바랜 사진을 그리고 16년전 그 때 노인분들의 모습을 잠시라도 느껴보시면 좋을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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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2009.02.23 06:48:27 *.111.241.42
재밌네요.^^ 파고다공원 가보고 싶었는데 젊은이는 가면 안될것 같은 그 무엇 때문에...
이제는 나도 젊은이가 아니니 선듯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진 솜씨도 그렇지만 그림솜씨도 수준급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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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2009.02.24 12:28:05 *.126.231.211
16년전 파고다 공원의 얘기라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현재는 대전까지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어, 대전에서도 노인분들이 친구들 만나러 오시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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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07:31:57 *.8.27.5
16년 전이면 디카도 아니고 클래식 아나로그 카메라 였을텐데 사진의 질감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잘 찍으시나봐요.

사진이야말로 관찰을 통해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을 깨닫게 해 주는 좋은 도구겠지요. 단, 촬영자의 영감과 운과 무엇보다도 1000장의 사진을 버리면서 1장을 얻는 무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요.

좋은 사진과 그림 감상,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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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2009.02.24 12:33:07 *.126.231.211
장성우님 안녕하세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16년전 니콘도 아닌 제니트라는 러시아 CIA가 사용한다는 그 귀한 카메라를 아버지가 60만원에 사가지고 오셨지요. 내 사진수업에 사용하라고. 사실 기능적으론 좀 많이 떨어졌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아날로그 카메라의 맛이 참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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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13:29:03 *.246.196.44
예술적인 감각을 지니신 분이시네요. 사진과 그림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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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2009.02.24 12:34:26 *.126.231.211
칭찬인가요? ^^
어느 정씨 이신지요?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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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
2009.02.23 15:45:13 *.188.231.79
사진도 그림도 글만큼이나 멋스럽네요.
저도 재미있게 잘 읽고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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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5 09:41:42 *.255.182.40
우리는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엇던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또 다른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마음에 와서 닿는 문구인데요...

책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정철님의 시각과 제 시각이 좀 달랐는데
이렇게 여기서 칼럼을 보니 또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
여하튼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세계를 접하는 그 자체가 즐거운 공부입니다 ^^*

힘내시고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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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ixiaozi
2010.10.09 15:01:52 *.141.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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