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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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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1일 14시 41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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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았다. 스펙터클 위주의 사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별 기대없이 보았는데 꽤 볼만했다. 우선 모든 캐릭터가 생생했다. 지적이고 단아하면서도 성깔있어 보이는 문채원, 대사 몇 마디 없이 표정연기 만으로 존재감을 발산하는 류승룡, 키만 멀쑥한 책상물림으로 보이지만 내 여자를 위해서는 괴력을 발산하는  김무열 모두  자기 자리에서 빛났다.


스토리 전개에도 그럴법하다는 개연성이 있었다. 청족 왕자 역할의 박기웅이 칼을 뽑으며 저항하는 문채원에게  “음, 이번에는 꽤 재미있는 애를 데려왔구나” 하며 흥미를 느끼는 장면 같은 것이다. 병자호란의 자세한 정황은 모르지만, 한 판 제대로 싸워 보려고 단단히 각오하고 침입했는데 너무나 어이없게 항복을 받아낸 승자의 심리가 읽혔다. 주인공 남이가 호랑이를 불러낸다는 설정도 재미있었다. 같이 영화를 본 아이들은 컴퓨터그래픽이 너무 드러난다고 했지만, 나는 그만하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시종일관 활 하나를 가지고 이끌어가는 장면도 억지스럽지가 않고 초점이 있어서 좋았다.


외계인의 말처럼 낯선 만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배우들의 노고를 보나, 능선을 가득 메운 기마병의 위용을 보나 갈수록 정교하고도 거대해지는 영화산업이 피부로 느껴졌다.  바로 이것이 롤프 옌센이 말하는 ‘드림소사이어티’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미래사회에는 현실보다 ‘드림’이 더 중요해진다는 분석이고, 영화를 비롯한 연예산업의 고속성장이 그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어차피 드림사회가 추세라면 할리우드를 비롯한 수입품의 ‘드림’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을 터, 이 영화는 내게 코리안판타지의 가능성으로 소중하게 다가왔다.

 

우습게도 활극을 울면서 보았다. 주인공 남이 역의 박해일에게 감정이입이 된 탓이다. 언제부터인가 배우들이 목숨걸고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영화로 해서 박해일도 그 리스트에 올려야 할 것 같다. 박해일의 몰입과 헌신이 빚어내는 긴장감에 푹 빠져 있다가,  마지막 고비를 앞두고 높은 곳에서 산하를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떤 장면 어떤 과제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든 그처럼 온 몸을 던지는 사투를 벌인 자만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이제는 네가 자인이 애비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 하나에 목숨을 건 오빠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듯, 제각기 품고 있는 신념 하나에 온 생애를 거는 자만이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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