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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3일 19시 29분 등록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변화경영연구소 12기 예비연구원 이경종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타자(他者)에 대한 욕망이다. 

 라캉(Jacques Lacan)의 말한바에 따르면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보다는 사회에 의해 규정된 욕망을 따르려고 한다. 그 욕망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좌지우지하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멋진 외제차를 타면, 그 차의 TV 광고에 나오는 연예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 멋진 차와 넓은 집을 얻기 위해 매일매일 아둥바둥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적어도 본인의 나이와 같은 평수대의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남들에 비해 뒤처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속칭 먹방이라 일컬어지는 TV속 수많은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음식들이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먹고 싶어하는 것들인가? 주말 저녁시간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음식을 배달하기 위해  배달원들은 한숨도 쉴 틈이 없다. 주말이면 TV에서 소개된 맛집 앞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려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많은 젊은이들의 꿈이 화려한 연예인이나 CEO라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타자의 욕망에 몸을 맡긴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리석은 우리는 이성은 사라진 채 온통 거울뉴런(Mirror neuron)의 지시에만 순응한채 살아가는 원숭이와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또한 사회에 의해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역할이 자신 스스로라고 믿기도 한다. 정상과 비정상이 이미 규정되어 있는 이 세계에서 우리는 내면적인 욕망을 억압하고 타자가 강요하는 틀에 스스로를 억지로 맞추며 살고 있다. 라캉은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현재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신경증자들의 평균적인 경향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평생을 유생으로 살아오신 할아버지와 효를 으뜸으로 실천하셨던 아버지 밑에서 난 어린 시절부터 장남으로서 좀 달라야만 했다. 좀 더 부모를 생각해야 했고, 좀 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 장남은 장남다워야 하는 유교적 가르침이 나의 유년기를 지배했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할아버지와 겸상을 할 수 있는 특혜(맛있는 반찬을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를 포함해서 어느 정도 장남으로서 혜택을 누리기도 했지만, 어른들의 커다란 기대는 항상 무거운 부담감으로 나를 억눌렀다. 난 장남이 되고픈 욕망은 없었지만, 그렇게 태어났기에 어쩔수 없이 '지극히 유교적인 가족의 장남이라는 틀'에 나 자신을 맞추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나이가 들어 독립을 했고, 이제는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상황이건만, 난 여전히 타자의 의지대로 살아가며 사회적 기준치에 부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연봉과 집의 크기가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중요하다. 강요된 틀에 맞춰 살던 유년기 시절과 지금은 다른 것일까? 마치 아무도 강요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나의 삶과 나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싶은 욕망과 그것들은 내 욕망이 아니라는 내적 외침이 점점 더 많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것들이 내게 그렇게 중요한 것들일까? 그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나이가 점점 들면 들수록 이런 질문들은 더욱더 자주 나의 머릿속을 멤돌았다. 

 이제 미미하게나마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을 하나 둘 깨달아가고 있다. 비우지 않고서는 채울수 없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아닌 것들부터 비워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 동경하고 쫓으려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잘 나가는 친구의 연봉과 좋은 집은 부러움의 대상일뿐 욕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살아가면서 남들에 의해 강요된 꿈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 한때는 최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든지 능력있는 CEO/CTO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내 욕망이 아닌 타자의 욕망일 뿐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스타의 꿈은 대부분 그들의 꿈이 아닌 타자의 시선이 빚어낸 신기루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내 가치관에 음습하게 배어있는 모든 편협한 편견들을 비워야 한다. 성공하면 고급차의 뒷좌석에 앉아야 하고, 회사 직급이 부장이면 부장다워야 하고,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고루한 편견들은 이제 집어던지자. 많은 편견과 선입관 중 무엇보다 나를 한계짓는 것들을 벗어던지자. '할 수 없음'를 합리화하기 위해 타자와 사회에 의해 강요된 이유와 변명을 찾지 말고,  '할 수 있음'의 근거를 순수한 내 안의 욕망으로부터 찾아 내자.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 하고 붙들고 있기에 '지금 여기'에 살 수 없는 것이다. '큰 나'는 '작은 나'를 죽여야만 태어날 수 있다. 나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과거의 나와 먼저 결별해야 한다. 비우고 비우면, 진짜 나를 찾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다. 우선 먼지를 닦아내야지만 그릇에 먹고 싶은 것들을 담을 수 있는 법이다. 태국 출신의 고승 아잔 차 스님은 말한다. 

"조금 내려놓으면 조금 평화로워질 것이다. 많이 내려놓으면 많이 평화로워 질것이다. 완전히 내려놓으면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세상과의 싸움은 끝날 것이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은 생사의 깨달음이 없는한 불가능할 것이다. '정말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들부터 하나씩 하나씩 비워가다보면 가장 나다운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공간 또한 많아질 것이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을 만들어 보자.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거려도 이건 정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라고 스스로에게 감탄할 수 있는 내 것 하나 정도는 만들어 보자. 인생은 '남의 것'을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닌 '내 것'이 많을수록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4주차 선배님들의 책 리뷰는 오병곤 선배님의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로 하고자 합니다. 지금의 저와 업이 비슷하기도 하고, 방향은 많이 다르지만 제가 변경연 2년차에 쓰고 싶은 책과 비슷한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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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5 13:19:27 *.124.22.184

'나 자신이 가장 원하는 나의 모습', 내가 아닌 것을 하나씩 비워낸다는 것. 아닌 것을 찾다보면 내가 찾아지는 걸까요? 아님 나를 아는 것이 먼저일까요? 갑자기 글을 보며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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