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애호박
  • 조회 수 1624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8년 3월 4일 18시 16분 등록


비우고 싶다는 것은 뭔가가 가득차서 삶이 불편한 나머지 버리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거기다 가장 비우고 싶다는 것은 내 삶이 불편한 것으로 가득 찬 것 중에 하나를 꼽으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환갑을 넘어 살고 있는 내게 비우고 싶은 것은 사실 없다.

뭐 오래 산 사람으로서 도인이 되었다거나 나이 많아 이룰만한 꿈이 없어서가 아니다.

현재 인생 이모작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뭔가 가득차서 버리고 싶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나왔으니 답을 써야 해서 처음엔 쉽게 내 몸무게라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음식도 한식 위주로 먹고 술은 물론이요 빵, 국수 등 밀가루 음식도 거의 안 먹는다.

콜라, 피자, 햄버거는 초기에 나왔을 때 맛을 몇 번 본 것 이외는 먹질 않았다. 약도 안 먹는다.

드물게 감기에 걸리면 자연치유를 기다리며 조절한다. 외식도 즐기지 않는다.

어쩌다 배탈이 나면 엄마가 가르쳐 주신대로 된장국을 먹으면 금방 나았다.

일부러 절제하며 사느라고 그러기보다는 내 미각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매년 꾸준히 몸무게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바로 2키로 정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세상 풍조에 밀려 내가 살이 쪘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키가 작은 나를 배려하기 위해 몸이 알아서 스스로 하는 일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내 몸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나는 몰랐는데 몸은 살을 찌워 아주 왜소해 보이지 않게 해 주고 있다고 느꼈다.

살이 있으니 주름을 메워 다른 친구들보다 덜 늙어 보이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살이 통통한 할머니는 얼마나 푸근해 보이는가!

힘도 있어서 여행도 즐겁다. 나이는 있지만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 순 살로만 된 짧은 다리가 몸을 힘껏 받쳐주기 때문이다.

전에 승마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몸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픈 적이 있었다.

그때 교관은 척추의 4,5번이 부러졌을 거라 했지만 사진을 찍어본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내 살이 쿠션역할을 한 것이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그렇다.

내 젊은 시절이 날씬한 사람들의 시대였다면 누가 알아주건 말건 이제는 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또 나이 든 사람들이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각종 병이 내게는 없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우울증, 높은 콜레스테롤, 동맥경화 변비 등등 이런 병들은 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인 것이니

내 살을 못 버린다.

 

두 번째로는 이루지 못할 욕망이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은 버릴 만큼의 힘겨운 욕망이 내겐 없다.

내가 50대 때 변경연을 만났더라면 아마 이 문제에 쉽게 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자식들의 결혼문제에 골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엄마라도 그렇지만 온 힘을 다하여 키운 내 아들, 딸이 각자 개성껏 제 짝을 데려왔을 때부터

내 모든 욕망은 사라져 버렸다.

나로서는 당연한 생각을 아들은 욕심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었다.

뜻하지 않게 아들한테 완패한 나는 딸이 제 짝을 데려왔을 때 약간의 저항을 하다 곧바로 항복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항복은 기쁨을 가져왔다.

자식들이 각자의 인생에 스스로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자 심신이 아주 편해졌다.

그야말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를 확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차마 욕망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작은 소망만이 있을 뿐이다.

그 소망 중에 버리고 싶을 만큼 힘겨운 것도 없다.

 

그래도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내게는 어리석음이 가득 차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어리석음만 가득차서 버리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슬픈 일이다.

그동안 뭐하고 살아서 좋지 않은 것만 쌓아놓고 살았냐는 말을 들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리고 싶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고 스스로에게 항변하자니 그것도 낯간지럽긴 하다.

그래도 이 어리석음을 버릴 수 없는 것이 (버리고 싶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지만)

어리석었기에 이 나이까지 평범하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내 이 성격에 똑똑하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도리어 아직 채우지 못한 것이 많이 있기에 시간을 아껴가며 채워야 할 때가 되었다.

오늘 하루도 채워야 할 곳에 채우지 못하여 텅 비어 있는 데를 켜켜이 꼭꼭 잘 채우고 싶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버려야할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 인터뷰하고 싶은 저자 : 문 요한

* 선택의 이유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첫 책을 낸 후에도 책을 계속 쓰는 힘과 이유를 알고 싶고요

                            대학 졸업 후 약 40년간 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의 문제점도 조금이나마 알고 싶어요

                            종교, 약물치료, 상담, 남편의 지극한 희생과 사랑에도 그녀의 병은 낫지 않고 있어서요

                            바쁘실텐데 감사합니다    

IP *.48.35.89

프로필 이미지
2018.03.15 13:13:06 *.124.22.184

이제껏 잘 조절하시고 그때 그때 비우면서 사셔서 그런 것 아닐까요? 비울 것이 없다는 말씀이 부럽기만 해요. 전 비운다기 보다 빼기를 좀 해야하지 않을까 하고 있는 요즘이거든요. 일을 너무 벌려서 빼야 할텐데 그게 안 돼네요. 뵈면 비결을 알려주세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058 숫자의 의미 [3] 빈잔 2021.09.21 1817
4057 오래 사는 사람들. 빈잔 2021.07.17 1629
4056 노년의 수다는 약이다 빈잔 2021.05.09 1529
4055 재미로 플어 보는 이야기 하나. [3] 빈잔 2021.04.22 1650
4054 나를 변화 시킨 이야기 빈잔 2021.04.21 1594
4053 처음 올리는 글 ㅡ 첫 인사를 대신하여 [2] 빈잔 2021.04.21 1711
4052 나만의 북리뷰 #8 [아빠 구본형과 함께] 2 정승훈 2019.08.12 2332
4051 독서인 서평이벤트에 참여했어요 file 정승훈 2019.08.12 2571
4050 나만의 북리뷰 #7 [아빠 구본형과 함께] 구해언 정승훈 2019.06.14 2732
4049 나만의 북리뷰 #6 [운을 경영하라] 수희향 [1] 정승훈 2019.05.15 2627
4048 나만의 북리뷰 #5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김정은. 유형선 정승훈 2019.05.01 2390
4047 나만의 북리뷰 #4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정승훈 2019.04.18 2432
4046 나만의 북리뷰#3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정승훈 2019.04.11 2083
4045 나만의 북리뷰#2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정승훈 2019.04.02 2148
4044 나만의 북리뷰 #1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정승훈 2019.03.27 2216
4043 (서평)'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를 읽고 엄콩쌤(엄명자) 2019.01.05 2358
4042 (서평)나의 길을 선명하게 비추어주는 수희향의『진짜공부』 엄콩쌤(엄명자) 2018.12.19 1909
4041 [뽕공자연교감소풍]수확의 기쁨 file [1] 정야 2018.08.07 2438
4040 서평-"내 인생의 첫 책 쓰기" 다향(김봉임) 2018.08.06 2561
4039 <아빠 구본형과 함께>서평 [1] 어떤만남(유정재) 2018.08.06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