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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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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2일 12시 01분 등록

변화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는 이유는 뭘까? 

작가로서 작업을 하면서 비록 현실이 아닌 작품 안에서만 일지라도 내 작업이 현실이 그어놓은 한계를 뒤집는 모습을 볼 때면, 혹은 실재로 누군가의 가슴속에 이런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새롭게 발현 되는 것을 목격할 때면 나의 가슴은 늘 뛰었던 것 같다. 


나는 한 개인의 변화보다는 원근법적인 풍경의 변화에 관심이 있었다. 내가 즉각적으로 혹은 단 기간안에 이 변화를 일으킬 방법을 잘 알지 못했으며 당장 그걸 실현할 힘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내 마음속의 불만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의 내적 욕구는 나로 하여금 내가 보는 그 시선이 옳은 것이 아니냐고, 내가 꿈꾸는 풍경이 맞는 것 아니냐고 세상에 따지며 그 시선 자체를 드러내도록 충동질했다. 아마도 거창하지만 이 세상에 놓인 풍경의 변화, 풍경 뒤에 놓인 제도의 변화, 그 제도를 만들고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가끔 눈을 감고 어두운 풍경에 불빛이 들어오는 것을 본다. 지구 이곳 저곳에 작은 불빛들이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 풍경을 본다. 하나 둘씩 켜지는 불빛은 세상을 밝힌다. 어두운 곳에서 춥고 외로웠거나, 배고팠거나,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거나 갇혀있거나,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모르는 무서운 사건들의 위험에 두려워하며 불안해 하는 사람들을 본다. 나도 거기에 있다. 내 잘못이 아닌데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하고 어두운 곳을 본다. 이곳에 불이 켜진다. 


독소에 다 말라 죽은 풀들이 새롭게 녹색으로 변한다. 사람들이 갇혀 있던 어두운 공간이 샹들리에의 불빛으로 밝게 비춰진다. 오랫동안 부서진 채 버려졌던 건물이 새롭게 복원된다. 이 풍경은 진짜가 아닐지라도 이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진 현재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가능한 어떤 근사한 풍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눈 앞에서 보고 그것을 믿게 해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꽤나 이상주의자였다. 아니 이상주의자를 넘어서 무척이나 비현실적이었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늘 꿈을 꾸었고 그 꿈에 머물렀던 것 같다. 특별해지고 싶었고, 특별한 것이 좋았다. 그리고 특별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시절부터 아버지나 선생님 혹은 누군가 나에게 좀 더 현실적인 미래에 대해 제안을 하면, 나는 무턱대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없이 그 조언을 거절하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학교에서 주어진 공부나 숙제를 잘 하는 것과 현실은 다른 문제였다. 

단지 눈을 감고 몽상에 빠져 낭만적인 미래를 머릿속에 그리는 것과 현실에서 그것을 이뤄내는 것은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내가 믿는 것이 단지 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가져오는 무엇이 되려면 치열해야 했고, 목표를 세우고 그 곳을 위해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고 죽기보다 싫은 경쟁은 피할 수 없었다. 


프로모션은 나에게 너무나 힘이 들고, 누군가에게 내 일, 그리고 내가 믿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알러지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들며 당장 그게 어디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는 화가는 아니지만, 마치 이젤 앞에 앉아 내 앞에 놓인 스케치북과 연필로 무엇을 그리라면 나는 너무나 잘 할 수 있는데, 혼자서 그 고독을 즐길 수도 있고, 내 손과 연필이 그려내는 신비한 세계를 하루 종일 넘나들 수 있고, 무엇을 그릴지 결정하는 것이 나에게, 그리고 이 세계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수 있었지만… 나는 지금껏 그 그림을 혼자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의 풍경을 주어진 대로 보지 않으려는 나의 믿음을 믿는다면서, 그 시선이 세상에 무언가를 작더라도 의미있는 것으로 역할하기를 소망한다고 했으면서, 역설적으로 나는 또다시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에 갇혀 안으로 숨어들곤 했다. 또는 내 주변의 그리고 나의 내부에서 부여했던 과도한 성취에의 기대에 억눌려 무기력하게 도망치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그린 꿈의 풍경을 혼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으로 특별해지고 싶다. 꿈이 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사람들과 함께 이 그림을 볼 수 있는지 연구하고 실험해야 한다. 이제는 나도 나무가 되고 싶다. 구본형 선생님처럼. 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나의 눈과 손을 더욱 날렵하게 손보아야 한다.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깊이 뿌리내릴때까지…. 왜 나는 날개가 없어 이리 저리 날아다니며 씨앗을 뿌릴 수 없냐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하루 만큼의 성장으로 사람들이 찾아드는 아름드리 나무로 그렇게 뻗어나가고 자라나는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IP *.149.1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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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2 13:02:12 *.130.115.78

이제는 내가 그린 꿈의 풍경을 혼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으로 특별해지고 싶다.


진한 울림이 느껴집니다. 그 특별함이 익어가는 길을 깊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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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2 17:16:09 *.145.103.48

아름드리 나무, 멋지네요.

지금같이 꿈꾸신다면, 분명 가능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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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3 08:31:16 *.36.150.30
'손과 연필이 그려내는 신비한 세계를 하루 종일 넘나들 수 있다'는 말에 미소가 번지면서도, 묘하게 질투가 납니다.
이 공간이 세상과 따뜻하게 조우하는 터널이 되길 바래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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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5 12:15:13 *.124.22.184

어렸을 때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로 꾸셨던 꿈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네요~

꿈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특별해지고 싶다는 것.  11기를 마치고 동기와 선배님들을 만나 조금씩 그 '꿈'을 그려보고 있는 요즘 제 마음에 들어오는 특별함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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