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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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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9일 01시 09분 등록
두달 휴직. 그리고 복귀.

그 두달 동안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배신감, 허탈함 조금 느끼고 깁스를 하게된 이유를 묻는 사람들 때문에 조금 당혹스러웠던 기억. 집에 들어 앉아 있다보니 집안 식구들과 사소한 말다툼이 자주 있었다는 정도. 그리고 오랜만에 학교에 찾아갔던 일 등..

그렇게 두달을 보내고 다시 농장으로 갔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곳 사람들은 나의 퇴직을 기정사실화 했다고 한다. 좋지 않은 일로 회사를 쉬게 되었고 급여 문제에 대해서도 별달리 신경을 써줄 수 없음을 통보했기에 그냥 홧김에 그만둘 줄 알았다고 했다.

기분대로 행동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집안 환경이 그다지 여유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곳을 그만둔다면 그 후에 아무런 대안도 서 있질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복귀를 한 것이다.

그런데 하루 이틀 일하다보니 내가 지금 왜 이곳에 와 있나 싶었다. 나의 직속 상관은 내가 마음을 굳게 다지고 다시 그곳에 온 줄 알았나 보다. 이따금씩 격려의 말을 해주곤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단지 대안이 없어 다시 왔을 뿐 일에 대한 열정은 전혀 생겨나질 않았다.

내 경우 열정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일하는 자세에서 너무도 차이가 많이 드러난다. 학창 시절에도 공부를 잘할 때와 못할 때 차이가 큰 편이었다. 모 아니면 도였던 셈이다. 일에 대한 열정이 없다보니 성과도 시원치 않았고 그 안에서 나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농장장 눈 밖에 나버리고 이전보다 훨씬 중요성이 떨어지는 일을 부여받았다. 그곳에 입사한지 1년 정도 되었을 무렵으로 기억된다.

퇴근 후 사택에 돌아와 혼자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내리는 평가는 합당한 것인가. 합당하다면 그것을 개선할 여지는 없는지. 개선을 했을 때 비전은 있을까? 10년, 20년 뒤에도 이 곳에 계속 몸 담고 있을 때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나 스스로도 나 자신에 만족하지 못했으니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당연한 것인데.. 문제는 그 상황을 그다지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었다. 양돈이라는 분야가 과연 내가 계속 그 분야에서 종사할 수 있는 분야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장래에 내가 직접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행복한 모습인가?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결국 시간을 두고 전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낮에는 주어진 일 열심히 처리하고 퇴근 후에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마음 먹으니 여유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흘러 서서히 적응이 되어 간 것인가.
점점 사람들과 융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작업에 대한 기술이 특별히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함께 오랜 시간 같이 지내다보니 어느 새 그곳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자연스레 인식되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곳 일의 성격상 모여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와 관련하여 사고가 적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는 술과 관련해서는 한번도 사고를 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그 점을 높이 사줬다. 어린 사람이 술매너는 좋다고 인정 받은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 나라에서 직장생활 잘 하려면 술을 요령껏 마시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곳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근무한지 1년8개월 정도 될 무렵,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곳에서 계속 일할 경우를 상상했을 때, 도저히 이상적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연초에 사업보고서를 작성할 때 그 안에서 유일하게 컴퓨터를 쓸 수 있었기에 보고서 작성을 혼자 맡아서 처리했고 그로 인해 직장에서 처음으로 능력을 인정 받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난 그쪽과 관련된 일을 해야되지 않나 싶었다.
원래는 취미로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했지만, 그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이곳(양돈장)에서 계속 근무한다면 승산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래서 결국 '과감하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한가지 다행스러웠 점은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는 점이다.


※ 기억 몇 가지

일하는 중에 잠깐 모여 막걸리 한잔씩 나눴던 기억. 안주로 농장 주변에 난 이름 모를 풀 뜯어다가 쌈을 싸먹곤 했다. 난생 처음 보신탕을 맛보게 된 곳도 그곳.

왠만한 사람들은 다 경운기를 운전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뒤에 타본 적은 있었지만 운전해 본적은 없었는데 재밌을 것 같았다. 남들 안볼 때 틈나는대로 시동 걸고 운전해봤는데 나중에는 물론 능숙해졌다. 언제 또 직접 운전해 볼 기회가 있을까..

처음 입사하자마자 회사에 사고가 터졌는데...
대학 부정입학 사건에 회사 사장이 연루된 것이었다. 당시 특정 대학에 뇌물을 주고 자녀를 입학시킨 사건이 매스컴에서 크게 보도 되었었는데 거기에 사장이 낀 것이었다. 그래서 한참 동안 수배를 피해 잠적해 있었다. 처음 입사한 회사의 사장이 그런 것에 연루된 것도 충격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아무 일 없이 경영에 복귀하는 것을 보고 또 약간 충격을 먹었다.

사장과 관련된 기억 또 하나. 사무실 옆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하나는 직원용 또 하나는 사장용이었다. 사장용 화장실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고, 청소할 때에만 사무실에서 열쇠를 받아 열고 청소 후에는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그곳에 1년 반 이상 근무하면서 사장이 그곳(농장)을 방문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첫 월급 37만원. 수습기간이었음을 감안해도 작은 액수지만, 그래도 그 돈으로 여러 사람 즐겁게 해줬던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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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12.19 07:37:54 *.118.67.206
92년 6월이었어요. 늦은 첫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 30만원이 너무 기뻐 와이프랑 돼지갈비먹으로 간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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