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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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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4일 11시 34분 등록
졸업시즌입니다. 오전시간에 학교운동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뒷 베란다의
창문에 턱을 괴고서 동주중학교졸업식 진행과정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의 단계에서 몇 번의 졸업식을 통과의례로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연한 절차가 때로는 여러 이유로 좌절되어 생략되기도 하고 혹은 늦게 기회를 잡아 전력투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37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대학입학식을 치르면서 절실하게 와 닿는 말이 있었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온 행복처럼 모욕적이고 나쁜 것은 없답니다.
제대로 만족을 주지 못하면서 귀중한 권리를 박탈하고 마니까요.
욕설을 하거나 운명을 저주하는 권리를 말이요.
정말이지 철늦은 행복이란 고통과 치욕의 대가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러시아 작가의 『루우진』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 말이 어쩌면 “평생교육”의
시대에 역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 사회진출에 있어서 “나이 많음”이 장애인으로 둔갑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경험하지 않은 분들은 알 수 없을 테지요.

배운 것을 꼭 써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도구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자존감을 높이는 일은 한 사람의 사회구성원으로써 필요한 역할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도구주의”를 비평한 그 말의 숨은 뜻은 현실적인 결과물이 없더라도
배움으로 얻게 되는 “정신적 능력”을, 즉 사고력과 판단력의 신장과 가치관의
확립에 따른 신념획득(정신의 지주)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위의 견해”가 필요하듯 그러한 관점에서라면 적어도 노력은 했습니다.

배움이 정말 제 자신의 인격을 확장하고 보다 유능하게, 또는 인간성을 풍부하게 하는 내면의 성찰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적주의, 성과주의를 내세운 속도전에 맹목적으로 편승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자신을 점검하곤 했습니다.

이제 2월25일이면 졸업식을 합니다.
밤 늦은 시각까지 학교 열람실에 앉아 혼신의 힘을다해 교과서와 치열한 접전을 벌렸던 시험기간 그 시험이 끝나고 뒷풀이의 호프집에서 거침없는 음악소리와 스터디 친구들의 떠들썩했던 외침도, 경주의 남산 문화탐방 때 길을 잃어 숲을 헤맸던 일도, “교육인의 밤” 행사에서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으며 신나게 춤판을 벌리던 교수님의 몸짓도 벌써 환상으로 채색이 되어 돌이킬 수없는, 흘러간 강물을 바라 볼 때처럼 가슴 아릿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좋습니다. 배운 것을 실전에 활용을 못해도 누군가의 말처럼 병적인 천재보다, 오만한 수재보다 평범한 상식 인으로 남아 재미나게 살아가려는 제 졸업식을 축하해 주십시오.

어쩌면 또 다른 도전의 기회가 될 수 있게 격려도 해 주십시오.
책을 만권 읽은 만학도가 아닌 만학도 최정임의 바램입니다.
IP *.208.9.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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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
2006.02.24 13:00:56 *.254.184.123
최정임 님께서 인격 확장에 배움을 소중하게 여겨 늦게라도 선택하신 용기에 감탄을 보냅니다.
또한 뿌듯한 결실인 졸업도 거듭 축하드립니다. ^^
내내 행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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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임
2006.02.24 18:42:43 *.208.4.18
허희영샘. 감사합니다. 혼자만의 감상에 젖어 불쑥 축하와 격려를 주문하고서는 아무도 모른체 하면 얼마나 무안할까, 좀 그랬지요.
먼저 손내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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