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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7일 08시 06분 등록


쓰는 즐거움

 


구본형

 


언젠가 내가 이 세상에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을 때

나에게도 '내 마음대로 해 볼 수 있는 세상 하나가 있기'를 바랬다

그 후 마흔이 넘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마음의 희미한 등불을 따라 나섰다

결국 이제는 글쟁이가 되었고

나의 인생은 좋아졌다

 

왜 좋아졌을까?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하나,

그게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능력이 많이 모자라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은 나에게 주어진 것조차 모두 쓰지 못하고 가는 것이다

 

어제 누군가 하루 종일 울었다 한다

간혹 하루 종일 울 때도 있다

이유야 사라지면 그만 인 것이고

울 일이 생기면 울면 그뿐이다

 

글을 쓸 수 있으면 글로 맞서고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노래로 맞서고

사랑할 수 있으면 사랑으로 맞서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눈물로 맞서면 된다

돈이 없으면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눈깔이 빠지게 책을 읽으면 그것도 즐거운 하루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하나가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작아도 좋다,  두려워 마라

 

 

 

(2008.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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