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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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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28일 18시 13분 등록
바빌론 제 1왕조 6대왕인 하무라비왕은 일명 탈리오 법칙이라 불리는 하무라비 법전을 만든다.
3731년 전인 B.C. 1728년의 일이다.
그 법전 본문 282개조 중 127조부터가 가족법인데 내용 중에는 버릇없는 젊은이에 대한 처벌 조항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70년 전, 인류 최초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수메르인들을 지배하던 우르 제 3왕조는 맷돌에 그들의 법전을 남긴다.
그 내용에 보면 ‘아비를 아비라 하지 않는 놈은 머리를 깎고 노예의 표지를 붙여 은과 교환하라… 어미를 어미라 하지 않는 놈은 앞머리를 깎고 시중을 끌고 다닌 다음 집에서 추방하라…’는 구절이 있다.

피라밋 안에도 ‘요즘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다.’는 낙서가 있다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이 든 이에게 젊은 놈들은 늘 버릇없는 존재였다. 이미 경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율성이 입증된 방식을 마다하며 색다른 방법에 호기심을 갖고 시도해보는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는 못마땅하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그 길은 위험하다는 것을 누누이 가르쳐주었는데 구태여 그 쪽에 희망을 걸고 도전하는 젊은이의 무리한 열망이 노인들에게는 너무도 답답하다.

그리스의 정치사상속에서도 ‘퓨시스(Phisis)’와 ‘노모스(Nomos)’의 지향이 그 대립을 이룬다.
‘퓨시스’는 본질적인 것을 뜻하며 ‘노모스’는 법과 제도를 의미한다.
사상가도 자신이 젊을 때는 본질적인 것,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전면적이고 단절적인 변화를 추구하지만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서 상대적이며 안정적인 균형을 중시하게 돼 법과 제도의 확립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도 젊을 때는 공화국론(Politeia)으로 지배계급의 공유사회인 이상국가론을 펼치지만 두 차례에 걸친 시라쿠사에서의 정치실험이 실패한 후 말년에 법률론(Nomoi)이라는 책을 쓰게 된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버릇없음’, 그것은 다른 말로 ‘자유혼’이며 일상성으로부터의 이탈이다.
안정보다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며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을 향해 가는 것이다.
맞닥뜨리게 될 위험보다 새로운 발견에 대한 호기심이 훨씬 강한 것이다. 노모스의 이성이 아니라 퓨시스의 정열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안정의 추구가 공동체를 유지시키고 연속성을 보장한다면 변화를 향한 의지는 발전을 가져오는 추진력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변화의 동력은 미미했다.
모든 것은 아주 천천히 변했고 변화에 대한 욕구는 너무 큰 제지와 억압을 받았다.
이미 개발되고 널리 사용되는 것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학습의 원리에 충실한 사람들이 칭찬받았었다.
그런데 이러한 오래된 원리가 깨지고 있다.
너무 많이 너무 빨리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가파른 변화가 일상이 되면서 우리가 쓰는 변화의 뜻마저 변하고 있다.
이제 변화는 특별한 것이나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며 모두가 당연히 수용해야 하는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이 골치 아픈 문제아가 아니라 변화에 뒤쳐지는 사람이 무능한 사람인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이가 젊다고 모두 변화에 능동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젊은이 중에서 몸보다 훨씬 마음이 늙어버린 애늙은이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학습된 대로 행동하는 데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가보지 않은 길은 아예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이들은 과거의 눈으로 미래를 본다.
이제까지 선호되어 왔던 직업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사랑하고 돈을 벌며 건강을 관리하고 즐기면서 살아가리라 믿는 것이다.
이미 지식과 정보의 경계선이 무너진 네트웤 시대에 조금만 노력하면 가까운 미래를 쉽게 읽을 수 있는 정보가 널려있는데도 더 이상의 자기 발전을 포기하고 결국은 다른 이가 만들 변화를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스펜서 존슨이 지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에는 치즈를 찾아다니는 네 명의 재미있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스니프와 스커리는 생쥐이고, 헴과 허는 꼬마 인간이다. 주인공인 이들 넷은 '미로 속의 치즈' 찾기에 나선다.
첫 번째 창고의 치즈가 바닥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냄새 잘 맡는 스니프와 잘 뛰는 스커리는 곧바로 다른 창고의 치즈를 찾아 또 다른 미로를 더듬어 나간다.
그러나 헴과 허는 새로운 미로를 찾는 여행을 꺼린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며 어리석은 질문과 신세한탄만을 거듭한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화를 내기도 한다.
바닥난 창고의 벽을 두드려보고 캐보지만 새로운 치즈는 나오지 않는다.
허는 뒤늦게나마 새로운 치즈 찾기에 나서지만 헴은 허의 충고마저 거부한다.
결국 변화를 깨닫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두 생쥐와 허, 그리고 과거의 향수에 집착한 헴의 앞에는 각각 정반대의 결과들이 기다릴 뿐이다.
전자의 셋에게는 새로운 치즈창고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헴에게는 굶주림뿐이었다.
헴은 그 자리에서 굶어 죽든지 뒤늦게 두 마리의 쥐와 허가 이미 그 영역을 차지했을 치즈 창고를 찾아가 그들이 흘리는 작은 치즈부스러기들로 연명해야 할 것이다.
조금만 냉정하게 자신의 미래를 분석해 보면 지금 누리고 있는 안정이 결국 한시적이고 그 후의 매우 혹독한 고난을 잠시 유예하고 있는 것이 뻔한데 '그래도 이만한 치즈창고를 어디서 찾겠어'라고 자위하면서 점점 치즈더미가 줄어가는 창고 구석에서 이제껏 누려왔던 일상의 안락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5년, 혹은 10년 뒤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 우리는 끝까지 남아 있으려 했던 치즈 창고를 더 이상 어쩔 수 없이 떠나 어떤 미로 속을 달리고 있지는 않을까?
혹, 이미 모두 떠나간 길을 뒤쫓다가 아무도 오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서 부스러기 치즈조차 못 구해 절망에 빠져있지는 않을까?

여기서 '바닥난 치즈창고'는 지금까지 우리가 소득을 만들어 내던 방식일 수도 있다.
각자가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활용하던 일상의 틀일 수도 있으며, 각각 속해있는 또 다른 크고 작은 조직 내에서의 생존 방식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예상하거나 혹은 전혀 짐작하지 못한 변화가 계속되는 그런 곳이다.
그 변화에 당당히 맞서면 새로운 치즈를 얻는 것이고, 주저앉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치즈는 바로 우리가 얻고자 하는 희망이다.
좋은 가정, 멋진 직업, 재정적 안정, 원만한 인간관계, 혹은 건강한 육체이고, 높은 교양이나 교육, 평화로운 영혼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두 마리의 생쥐 중 하나인가?
아니면 허인가?
혹시 헴은 아닌가?
당신은 디지털 시대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아나로그식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변화를 다짐하면서 부지불식간에 과거의 편안함에 집착하려 들고 있지는 않은가?
그만그만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고, 지금까지 써먹었던 방식으로 적당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현재의 스스로를 떠나는 것이 두려워,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이제까지 있었던 창고를 떠나지 못하고 있거나 비록 당분간이라도 그런 정도의 창고에 가 있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는가?

지구상에 가장 생존력이 강하고 오래 살아남은 다섯 가지 동물이 개미와 바퀴벌레, 돼지, 쥐, 그리고 사람이라고 한다.
모두 최고의 잡식동물이다.
생태계와 환경이 변하여 그때까지 주로 먹던 것들이 사라져도 바로 다른 먹이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늘 먹고 있는 치즈에만 집착하며 살면 그 치즈를 더 이상 구할 수 없을 때 급격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굶어 죽게 된다.

결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변화가 일상인 시대, 변화에의 시도가 ‘버릇없다’고 질책당하지 않고 변화가 오히려 격려 받으며 변화가 바로 힘인 세상을 사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행복하다.
변화를 즐기고 변화의 선봉에 서자.
이제까지 당연한 것으로 믿어왔던 당신 삶의 명제들을 따져보고 당신의 미래에 짐이 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라.
묵은 삶의 껍질을 버리고 나비가 되어 날아보라.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당신의 시간을 보내왔던 일상에서 벗어나라.
TV의 플러그를 뽑고 동료들과의 무의미한 대화와 오락에서 빠져나오라.
오늘부터 당신 자신과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점점 넓혀 나가고 그 시간을 당신의 미래를 위하여 투자해보라.
당신의 미래를 위해 매일 의식적인 발전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점검하라.

이제 당신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하고 있으며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변화를 강요당하고 미래가 비참해진다.
다가올 미래의 변화에 민감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바닥난 치즈 창고'의 망령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변화의 거대한 격랑 한가운데임을 그대는 아는가?

SMI Korea 드림빌더 대표 유 관 웅 (ykwoong@kornet.net)
IP *.73.3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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