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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1일 22시 56분 등록


되새 떼를 생각한다

 


류시화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바람을 신으로 모신 유목민들을 생각한다

별들이 길을 잃을까 봐 피라미드를 세운 이들을 생각한다

수백 년 걸려

불과 얼음을 거쳐 온 치료의 돌을 생각한다

터질 듯한 부레로 거대한 고독과 싸우는 심해어를 생각한다

여자 바람과 남자 바람 돌아다니는 북극의 흰 사슴과

히말리야 골짜기 돌에 차이는 나귀의 발굽 소리를 생각한다

생이 계속되는 동안은 눈을 맞을 어린 꽃나무를 생각한다

잘못 살아 있다고 느낄 때

오두막이 불타니 달이 보인다고 쓴 시인을 생각한다

내 안에서 퍼붓는 비를 맞으며 자라는 청보리를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보다

사랑하고 상처받는 사람을 생각한다

불이 태우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심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깃 가장자리에 닳은 되새 떼의 날갯짓을 생각한다

뭉툭한 두 손 위에는 아무 도구 없이

그해의 첫 연어를 잡으러 가는 곰을 생각한다

새의 폐 속에 들어갔던 공기가 내 폐에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겨울바람 속에 반성문 쓰고 있는 콩꼬투리를 생각한다

가슴에 줄무늬 긋고서 기다림의 자세 고쳐 앉은 말똥가리를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면서

둥근 테두리가 마모되는 동전을 생각한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곳에 왔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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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어김없이 잘못 살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애초에 계획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연초의 번호 매긴 계획은 어떤 옷도 걸치지 못한 채 와들와들 떨고 있다. 이렇게 잘못 살고 있다고 느껴질 때 나는 무엇을 이루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왔다가 돌아가노라고 읊은 시인을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것보다 사랑하고 상처받는 사람도 생각한다. 아마도 그 사람은 성숙한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사랑한 사람이리라.

 

예전에 스승님이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괜찮다, 다 괜찮다’는 그대의 말 한마디면 더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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