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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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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5일 21시 27분 등록


연구원이 되고나서 아주 소중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책을 읽고나서 리뷰를 안 쓰면 마무리를 안한듯 찜찜하고 서운하여 다음 책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리뷰를 풀어나갈 방법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끙끙거려야 소용없다. 하루 정도 밀어놓고 아예 잊어버리고 다른 일을 하면 문제가 풀린다. 왜 고기양념을 재워놓는다고 하지 않는가. 양념 맛이 고기에 배어들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내가 읽은 책이 나의 경험에 배어들도록 하루 정도 재워놓는 것이다.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꼬투리가 풀린다.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뭐든 쓸 거리가 생기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오늘도 해질녘에 옥상에 가서 해지는 구경하다가, 혼자놀기 종합세트에 대해 써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쓸 것이 떠오르면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고 시간이 리드미컬하게 흘러간다. 함께놀기 종합세트에 대한 구상도 떠올랐다. 별로 함께 놀아본 경험이 없으므로, 그것은 미래를 과거형으로 기술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은 뒤로 아침에 꼭 세 페이지를 못 채우더라도 무언가 끄적거리고 있다. 저자는 모닝페이지가 문학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문학과는 상관없는, 자기치유적 성격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모닝페이지를 계속 하다 보면 문학적 성과도 무시못할 것 같다. 우선 저자도 말했듯, 글쓰기의 자동기술이다. 우리는 보통 특정한 기분이 되어야만 글을 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모닝페이지를 하다보면 글쓰기가 기분하고 상관없이 언제나 가능한, 이른바 자동기술이 된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조건 쓰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 모닝페이지를 계속 하면 쉬운 일이 되겠지만.

요컨대 혼자놀기의 진수에 읽기와 쓰기가 있다. 하지만 읽기는 몰라도 쓰기는 엄밀한 의미에서 혼자놀기는 아니다. 쓰기는 혼자 쓰되, 혼자 읽고 마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몇 개월 유화를 그린 적이 있다. 그림을 그리면 어찌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서 너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외로울수가 없었다. 외부와 모든 소통이 끊어지고 나의 내부로 침잠하는 기분, 절절한 고독이었다. 그 화실의 주인은 25년 이상 그림을 그려 온 사람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고독할까, 나는 그 속을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다분히 비사회적인 성격이었지만, 그림을 그려서 혼자 두고 보지는 않았다. 지역에서 한 번, 인사동에서 한 번 전시회를 가졌다. 결국 그린다는 행위는 외부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일기가 아닌 이상 쓴다는 것은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쓰기는, 내향적인 사람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통로이다. 여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는 표시이다.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저 쓰고 또 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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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6.09.26 20:14:18 *.99.185.254
^^ 같은 고민, 같은 해결책.
이럴때 참 반가워요. 한선생님의 내공을 슬쩍 한거 같기도 하고 ㅋㅋ

아~ 오늘 답글 많이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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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6.09.26 23:51:26 *.81.17.91

하하~~, 내가 좀 심심하다 보니 말이 많아져가지고 슬쩍 민망했는데, 경빈씨가 아는 척 해줘서 정말 고마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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