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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2일 23시 14분 등록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오늘 시집에서 이 시를 만나다니!  나도 나지만 나보다 오라버니들이 젊음과 지성과 막걸리 한 잔과 마주앉아 읊조리던 시. 주인을 버리고 가을 속으로 떠난 목마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숙녀를 그리며 이 시 한구절 정도는 암송해야 낭만적이라 할 수 있었지. 그런 오라버니를 위해 이 시를 낭송해 본다.

음악을 깔아야 제멋이다. 눈은 감는 게 좋겠지만 암송을 못한다면 실눈을 뜨자. 목소리는 약간 구슬퍼야 한다. 가운데 한 대목은 뜸을 들이고 두어 대목에서는 격하게 처절해도 좋겠다. 한껏 감정을 실어 낭송한다면 가슴속에 꽉 찬 가을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세월은 가고 오는 것, 문학과 진리를 몰라도 인생은 통속적이라 살만 한 것.




IP *.1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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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5 10:27:57 *.246.146.14

가을이 다 가서 그런지 사부님 책을 뒤적거리는 시간이 많네요.

며칠 전에 시집도 다시 보다가... 뒷장 정야의 글도 읽어보고.

여름부터 꾸준히 시를 올리시네요.

시처럼 살다 간 사부 생각이 더 나기도 하고...비도 오고 뭐 그러네요. ^^

프로필 이미지
2014.11.25 23:40:30 *.12.30.103

저도 그렇습니다. 아마 깊은가을이라 그렇지않을까요? 스승님 책, 컬럼 읽으면 대체로 전 혼쭐이 나곤 한답니다.  부산엔 비가 왔나보네요. 여긴 바람이 많이 불었답니다.

가끔 올라오는 형산님의 정감있으면서 깔끔한 후기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노을 사진과 갈대, 삼릉의 아름드리 소나무숲 사진도 참 좋았습니다. 글뿐만 아니라 사진도 수준급이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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